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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 예술가들의 낙원

by 윤재

예술가들의 낙원 - 탕헤르



오늘은 탕헤르에 기항하는 날입니다. 한때 스파이들과 예술가들의 천국이었으며 다양한 문화가 용광로처럼 녹아 있는 탕헤르의 눈부시게 투명한 햇빛은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탕헤르는 모로코 최북단의 도시로 지브롤터 해협과 최단 거리에 있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주요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근현대에는 유럽 열강들이 손에 넣기 위해 목표로 하는 군사적 요충지이고요. 그래서 탕헤르는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고, 유럽과 이슬람, 베르베르의 문화가 공존하지요. 스페인에서도 배로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어 탕헤르의 여객선 터미널은 분주합니다. 중세 이슬람 세계의 유명한 여행가이자 탐험가 여행가인 이븐 바투타(1304-1369)의 무덤이 탕헤르에 있으며, 그곳은 많은 관광객과 역사 애호가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탕헤르, 이 신비로운 도시는 꿈과 진실이 얽히는 곳으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꿈을 추구하는 양치기 소년의 여정과 멧 데이먼의 “본 얼티메이텀”에서 펼쳐지는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 교차하는 매력적인 장소입니다. 벽과 대문들은 선명한 블루색이나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느끼는 햇빛과 향신료의 풍미는 이 도시가 가진 독특한 매력을 한층 더합니다. 히잡을 두르고 길고 풍성한 전통의상 차림의 여인들과 현대적인 서양식 옷을 입은 여성들이 지나갑니다. 풍성한 모로코의 전통 의상은 덥고 햇볕이 뜨거운 이곳에서 몸은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한 실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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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는 과거 식민지 시대 동안 유럽 국가들의 관심을 받으며, 여러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도시입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의 영향을 받아 다채로운 건축 양식과 문화가 존재합니다.


탕헤르의 구시가지인 메디나는 좁은 골목길과 줄무늬 차광막이 드리워진 상점들로 가득 차 있어 가능하다면 서둘지 말고 오감을 충분히 열어 느끼면서 감각하면서 천천히 걷고 싶은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지역의 수공예품과 향신료, 그리고 신선한 해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데 낯선 여행자는 길을 잃기 쉽겠습니다.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에는 전통 의상을 파는 상점들이 많이 있는데, 이곳 전통 의상은 젤라바(djellaba)와 간도라(gandora)로 나뉘어 있지만, 여성들만 입는 고급 드레스는 카프탄(kaftan)은 화려한 끈, 구슬 및 스팽글로 만들어져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화려할수록 무척 비싸, 왕족이나 되어야 입을 수 있다고 농담합니다.






여기서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고대의 매력이 가득한 메디나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의 대화가 마치 연금술처럼 변화의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탕헤르에는 모로코 전통 양식을 따르며 화려한 타일 장식이 특징인 카스바(성곽으로 둘러싸인 구역)의 건축물과 같은 역사적인 건물과 박물관이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예술가와 작가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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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되는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는 탕헤르를 “화가들의 천국”이라고 했다는군요. 위대한 색채 예술가 마티스는 창문을 즐겨 그리기도 했습니다. 창문은 환경과의 간접적인 접촉 및 상호작용을 하는 매개체로 인간의 ‘눈’과 같은 역할을 의미하지요. 그림은 인간의 ‘기본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주위 대상들에는 그 대상을 인지하여 개념화하는 사람의 성격 발달과 연합되어 있는 독특한 정서적, 표상적 경험이 녹아들면서 상징을 형성하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영혼을 사랑했던 마티스는 탕헤르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그곳의 원시성에 매혹당해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술이란 ‘편안한 안락의자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바이올린 연주로 영혼과 손가락의 긴장을 풀었다고 합니다. 부유한 곡물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법률을 공부하고 법원행정관으로 근무했지만 뒤늦게 그림에 대한 열정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독특하고 이국적인 옷차림과 아라베스크 문양, 강렬한 햇빛에 매료된 그는 탕헤르를 두 번 방문하고 이십여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창을 즐겨 그렸던 그는 탕헤르에서도 역시 창문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의 <탕헤르의 창문>을 보면, 선명한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습니다. 창틀에는 꽃병이 놓여있고, 저 멀리 하얀색 깃발이 날리는 궁전이 보이고 그 앞에는 녹색 지붕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마도 녹색 지붕은 종교 시설인 듯 보입니다. 오른쪽 노란색 길에는 당나귀를 타고 가고 있는 흰옷 입은 사람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호텔 창가에 앉아 바라 보이는 풍경을 그리면서 마티스의 가슴은 벅차올랐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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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탕헤르의 창문> 1911-1912, 모스크바 푸쉬킨 미술관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그윽한 커피를 음미하며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을 바라보면, 이곳에서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한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느껴집니다. Grand Cafe de Paris는 탕헤르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상징적인 카페 중 하나로, 프랑스식 카페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예술가와 작가들이 방문했던 장소로 유명하며, 모로코의 문화와 유럽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공간입니다. 이 카페에 자주 머물렀던 인물들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화가인 헨리 밀러,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문체로 현대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비트 세대의 상징적인 인물인 잭 케루악, 피카소 등이 있습니다. 영화 <본 얼티메이텀>에는 Grand Cafe Central 카페가 등장합니다. 선량한 눈빛의 투어 가이드는 이 카페에 대해 제가 아는 척을 했더니 반가워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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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는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합니다. ‘최후통첩’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영화 <본 얼티메이텀>에서 제이슨 본(멧 데이먼 주연)이 쫓던 진실이 숨겨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의 과거와 기억,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고뇌가 이 도시의 벽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좁은 골목에서 펼쳐지는 긴박한 상황은 탕헤르의 역사적 뒷골목과 맞물려, 시청각적으로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탕헤르 메디나의 건물 옥상과 집과 집 창문을 넘나들며 숨 가쁘게 추격전이 벌어졌던 그 촬영 현장에서 건물들을 바라보니 영화 속보다 작은 규모에 약간 실망을 하였습니다. CIA의 비밀 프로젝트인 "Treadstone"과 그에 따른 암살 작전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본은 여러 국가를 거치며 과거의 동료들과 적들을 마주하게 되지요. 본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며, 그의 추적자이자 CIA 요원인 노아 빈스(데이비드 스트래자언)와의 긴장감 넘치는 대립이 펼쳐집니다. 결국 본은 자신의 기억과 정체성을 회복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과거와 결별하려 합니다. 영화는 스릴 넘치는 액션과 긴장감 있는 전개로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본 시리즈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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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자에 권총의 앞부분 이미지가 붙어있는 영화 007 시리즈 중 <007 스펙터>의 장면 중에 탕헤르의 메디나 골목길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뿐인가요, 우리나라 드라마 <배가본드>에서도 탕헤르가 배경으로 나오지요.


오늘도 선사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메디나와 카스바(성채) 지역, 박물관 그리고 몇 군데를 방문했습니다. 만일 개인적으로 탕헤르를 방문했다면 아마 더 깊숙이 천천히 들여다보았을 텐데 제한된 시간에 일행들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아쉬움이 많았던 투어였습니다. 이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며 남겨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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