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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머물고 싶었던 코펜하겐

by 윤재


'빛과 침묵의 화가' 그로 인해, 더 머물고 싶었던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밤새 기침도 안 하고 잘 잤습니다.

오늘의 기항지는 제가 손꼽아 기다리던 곳의 하나이기에 제 몸이 벌써 알아챘나 봅니다.

어제 선내 shop에서 “CHESTY COUGH”란 시럽을 구입해 복용했는데, 그 효과가 있었네요.

다행이지요.



‘상인의 항구’라는 의미의 덴마크 수도인 코펜하겐에 기항하는 날입니다. 운하, 자전거 문화, 안정적인 경제, 행복한 지역 주민이 특징으로 살기 좋은 도시로 부러움을 사고 있는 도시입니다. 전에 코펜하겐을 방문했을 때 국회의사당 건물을 갔었는데 넓은 자전거 주차장과 국회의사당 건물 입구에 조각되어 있는 고뇌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인물 조각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릇 정치인들은 고통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국민들의 안위를 보살피고 현명한 정치를 하라는 메시지였겠지요. 우리나라 국회의사당 주차장에도 승용차 대신 자전거가 더 많이 있을까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전거를 이용하는 덴마크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은 특권층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들과 같은 삶을, 서민들과 같은 권리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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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이상의 주민들이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주민의 절반 이상이 일의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는 도시 코펜하겐.

코펜하겐을 처음 방문했을 때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휴대폰을 사용하고 능숙하게 손으로 교통 지시를 하는 것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었습니다. 차량 운행하는 사람들도 자전거 이용자들을 우선 배려하는 안전한 교통 환경이 부러웠습니다. 혼잡한 장소에 널브러져 있거나 쓰러져 있는 자전거를 반듯하게 정리하는 정리도우미를 두고 있으면서 자전거 전용 쓰레기통도 설치해 두고 있다고 하니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민들이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하여 자전거를 사용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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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를 하면서 친숙해진 두 커플, 우리가 애주커플과 조용커플이라고 별명 붙인 뉴질랜드에서 탑승한 4명이 크루즈터미널 앞에 있는 자전거대여소에서 자전거를 고르고 있습니다. 코펜하겐 시내를 자전거를 이용해 탐험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조용한 커플의 빨간 머리 여성 엘리자베스는 자전거 안장이 충분히 다리에 맞지 않아 고전을 하고 있군요. 코펜하겐 사람들이 대체로 키가 크다 보니 작은 체구의 엘리자베스를 위해 그녀의 남편이 안장 위치를 최대한 낮추려고 노력을 하고 있네요.



햇빛도 청명해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가는 길이 가벼웠습니다. 코펜하겐 역시 좋은 미술관들이 많이 있지만, 오늘 우리는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로젠보르크 성과 자연사 박물관과 함께 넓은 공원과 호수에 둘러 싸여 있는, 1896년 설립된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Statens Museum for Kunst(SMK)은 코펜하겐의 중심부에 있는 덴마크 최대의 미술관으로 14세기 미술품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덴마크와 해외 작가의 유명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1998년 현대미술 컬렉션이 확장되면서 건물 뒤편으로 모던하게 새로 증축하여 2층에서 다리로 연결되고 두 건물 사이는 유리 패널로 덮고 지상에는 조각 작품들을 설치해 놓아 ‘조각 거리’를 조성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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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1800년도 이전의 유럽 미술, 덴마크 황금기 시대 회화, 1900년도 프랑스 미술, 그리고 1900년도 이후의 덴마크 미술과 현대 미술 등 크게 4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건물 전면에는 야수파 창시자의 한 명으로 간주되는 앙드레 드랭의 <슈미즈를 입은 여인, Woman in a Chemise> 그림 현수막이 커다랗게 매달려있어 우리의 방문을 온몸으로 환영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빨간 불타는 듯한 머리를 한 여성이 오른손으로 턱을 만지고 앉아서 유혹적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은퇴를 한 후에는 머리 염색을 하지 않아 지금은 거의 반백 상태입니다. 가끔 주위 친구나 지인들이 슬며시 염색을 권합니다. 흰머리 상태가 늙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염색을 할 생각은 없으나 드랭 그림 속 여인처럼 화려한 색상의 가발은 써 볼 생각은 한 번쯤은 해보게 만드는군요. 어느 날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지거나 기분이 꿉꿉하면 또 모르지요, 가발로 튈지.... 그림 속에는 빨간색, 녹색, 주황색 그리고 파란색의 색상들이 어우러져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드랭은 “ 그림은 단순하게 색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며 그 색의 창조는 바로 영혼의 발산임을 깨달았다”라고 말하며 강렬한 장면들의 대비와 조화를 추구했다고 합니다. 드랭 그림 속의 여인과 눈 맞춤을 하면서 미술관 입구로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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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드랭, <슈미즈를 입은 여인>, 1906,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빛과 침묵의 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

티켓을 구입하는 카운터에서 ‘함메르쇼이’의 그림 위치부터 물었습니다. 함메르쇼이의 그림을 보러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여직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겼습니다. 국립미술관이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덴마크 출신의 빌헬름 함메르쇼이(빌헬름 하메르스회, Bjørn Vilhelm Hammershøi, 1864~1916)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함메르쇼이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상징주의 미술의 거장으로 ‘덴마크의 에드워드 호퍼’ 또는 ‘북유럽의 페르메이르’로 불리기도 한다는군요.


미술관 지도를 한 손에 쥐고, 우선 함메르쇼이가 있는 전시실부터 찾았습니다. 그의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한 가정의 거실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짙은 회색과 불빛이 스며드는 창문 등은 따스함과 그의 내면적 사색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은 덴마크의 국민화가인 함메르쇼이의 대표작들을 한 곳에 전시할 뿐만 아니라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성장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8살 때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고 15살에 덴마크 왕립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인물들은 어스름한 실내에서 뒷모습을 보이는 것이 많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 그림자, 촛불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특징의 그림은 그의 성격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극강의 내향적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 회고에 따르면, 두 살 때 동화를 듣고 괴물 그림을 그렸는데 자신이 그린 그림 속 괴물에 놀라서 울며 뛰쳐나간 일화도 있었답니다.


1905년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함메르쇼이는 재빨리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광범위하고 느리며, 어느 순간에 이해하더라도 항상 예술에서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기회를 제공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시 덴마크 미술을 대표하던 화가 페데르 세베린 크뢰이어르에게도 미술을 배웠는데 크뢰이어르는 함메르쇼이의 재주를 알아보고 “나중에 중요한 화가가 될 것 같아서 그의 작품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라고 했답니다. 동료 화가였던 피터 일스테드의 소개로 그의 여동생인 이다 일스테드와 결혼한 함메르쇼이는 아내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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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함메르쇼이, <Ida Ilsted 초상화>,1890,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유난히 집안에서만 생활했던 극 내향의 화가에게 집이란 공간은 ‘무한한 영감’을 주는 곳으로, 그는 섬세하고 고요한 실내 풍경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은 화려한 색채와는 거리가 먼 무채색의 부드러운 색조와 간결한 구성으로 특징지어지며, 고독과 고요한 내면의 성찰을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가족과 아내를 모델로 하여 인물화를 그렸으며, 빈 공간과 조명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의 그림은 고요한 정적과 함께 강한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의 작품 속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앞모습 대신 뒷모습으로 그려져 신비감과 침묵, 고요와 쓸쓸함을 갖게 합니다. 인물화 그림 검사에서 뒷모습 해석은 도피적이며, 타인과의 교류를 피하려는 경향, 은둔형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그의 그림 속 모델들이 뒷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짙은 회색과 단색톤, 거의 드러나지 않는 붓 터치를 통해 긴장감과 침묵이 감도는 실내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따스함을 전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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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메르쇼이, <스트란데 거리의 햇살이 바닥에 비치는 방>, 1901,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함메르쇼이는 수수께끼와 대기공간의 진정한 대가였다고 칭해지고 있습니다. 10여 년을 살았던 코펜하겐의 Strandgade 30에 있는 자신의 거실을 묘사한 그의 실내 장면은 그를 유명한 덴마크 예술가로 만들었습니다. 함메르쇼이는 자신이 단순해 보이는 몇 가지의 차분한 색상만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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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메르쇼이, <스트란데 대로, 화가의 아내가 있는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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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함메르쇼이, <뒤에서 본 여인>, 1888,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그의 회피적인 성향은 <자화상>의 시선 처리에서도 드러나는군요.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 시선과 살짝 아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조용한 외톨이지만 강인함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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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메르쇼이, <자화상> 1890,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유독 실내 그림에서 창문과 들어오는 빛, 그리고 반쯤 열려있는 문이 묘사되어 있는 그림이 많은 것으로 보아 비록 극내향형의 은둔형 외톨이로 볼 수 있는 생활 방식이었지만 외부로 향한 소통을 따스하게 기대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추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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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함메르쇼이, <실내, 인공조명>, 1909,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어둠 속에서 정적을 깨고 배치된 두 개의 촛불이 고요함을 전달합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묘사되는 촛불들은 쌍을 이루고 있어 균형과 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은은하게 비치는 불빛은 인물이 부재한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이어 등장할 주인공들의 정다운 대화가 기다려집니다.



함메르쇼이는 돈을 받고 초상화 그려주는 것을 기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잘 아는 굳이 아름다움을 추가해서 그려줄 필요가 없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그렸다고 합니다. 내향적인 성격의 함메르쇼이는 말년에 자신이 주고받은 편지를 비롯해 개인적인 기록들을 모두 불태워 없앴다고 합니다. 기록이 남아 있다면 그의 그림 주요 모델인 사랑하는 아내이다와의 관계와 일상에 대한 것들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쉽지요.


찬란한 햇빛과 바람의 계절, 봄, 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이 찾아오는 계절에 진부한 일상 속에 놓여있다면 따뜻한 공간에서 차 한잔과 함께 고요하고 차가운 계절을 닮은 함메르쇼이의 그림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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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메르쇼이의 그림들을 보면서 저는 에드워드 호퍼나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아닌 우리의 박수근 화가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간결하고 직관적인 형태를 통해 인물과 자연을 표현하고, 일상적인 장면과 평범한 사람들을 주제로 하여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를 표현한 박수근의 그림.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관람객에게 사색의 여지를 제공하며 빛과 그림자의 조화로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게 하는 함메르쇼이.

둘의 기법은 다르지만 제게 전달되는 단순한과 친근함, 그리고 따스함은 비슷했습니다.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함메르쇼이의 방을 지나 색과 빛의 화가 라울 뒤피의 그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28년 정치가 요하네스 럼프가 자신이 평생 수집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215점을 미술관에 기증해 이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앙리 마티스의 조각을 포함해 많은 마티스의 그림 25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티스 부인의 초상>과 <줄무의 티셔츠를 입은 자화상>은 야수파 작업이 시작되기 전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법을 공부했던 마티스(1869-1954)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머니가 선물로 준 물감 상자를 받고 “내 두 손에 물감 상자를 쥔 순간, 나는 이것이 내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회상을 했으며. “정확성이 진실은 아니다.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라고 했답니다.


결혼 후 마티스가 무명화가 일 때 아내 아멜리는 모자를 팔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며 마티스의 그림 활동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가 그린 <마티스의 부인, 초록색 선> 속 아멜리는 입을 꼭 다물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몸은 약간 왼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초상화의 형태는 단순하고, 두껍고 거칠게 칠한 물감은 역동성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녀의 짙은 눈썹은 강인함을 전해주고 있으며 이마 끝에서 코끝까지 초록색 선이 굵게 칠해져 있고 그 선을 중심으로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을 다른 색으로 구분하여 표현한 색채 속에 숨은 양가적인 의도가 무엇인지 헤아려 보게 됩니다. 부드러움이나 온화함과는 거리가 있는 초상화를 뒷바라지하고 있던 아내가 만족스러워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저라면 좀 서운했을 것 같네요. 그림이 완성될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이 그림은 마티스가 그린 부인의 초상화 중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정에 아멜리의 불편한 마음이 좀 수그러들었을까요. 후일에 마티스가 그린 아멜리의 초상화를 보면 더 이상하게 그려져 있어,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의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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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마티스 부인, 초록색 선>, 1905,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디에고 리베라, 모딜리아니, 피카소, 브라크의 그림에 이어 사생아로 태어나 화가들의 모델에서,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인생을 주체적으로 개척한 여성화가 수잔 발라동의 그림들을 지나,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그림 스승이었던 덴마크 대표 자연주의 화가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의 그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만을 위했던 그의 붓, 페데르 세베르 크뢰위에르

함메르쇼이가 부유한 집 출신인 반면 P.S. 크뢰위에르의 출생과 성공, 파란만장한 일생은 드라마틱합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심각한 정신질환자로 정신병원에 입원 중 크뢰위에르를 출산한 어머니를 둔 그는 친척 집에서 성장했지요. 그는 태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수십 년이 흐른 후 덴마크의 ‘국민화가’로 자리매김을 하고, 37세 때 파리에서 만난 마리의 빛나는 젊음과 아름다운 외모에 반한 크뢰위에르는 불같은 사랑에 빠졌답니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1년간 신혼여행을 한 다음 스카겐에 큰 집을 마련했습니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가 덴마크 최북단에 위치한 스카겐을 찾은 것은 1882년입니다. 평범한 어촌이었던 이곳의 신비로운 바다와 하늘에 매료되었습니다. 북해와 발트해가 만나는 지점으로 서로 다른 염도의 바닷물 덕분에 스카겐 앞바다는 서로 다른 색의 두 물결이 일렁이곤 하였답니다. 그는 “스카겐의 대낮은 끔찍하도록 지루하지만, 해가 지고 달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 수정처럼 맑고 매끄러운 물이 빛을 반사한다. 나는 그 모습을 사랑한다”라고 했답니다.


덴마크 미술계의 핵심 인물이 된 그에게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부유하고 존경받는 화가와 아름다운 그의 아내, 단란한 가정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받았으나, 그 결혼 생활도 시간이 지나며 갈등과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는 40대에 들어서면서 시력이 나빠져 말년에는 거의 시력을 잃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빌 어거스트 감독의 영화 <마리 크뢰위에르>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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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여름 오후 수영하는 스카겐의 소년들>, 1899, 덴마크 국립미술관



스카겐의 소년들은 여름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습니다. 두 소년은 서로 대화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그들의 표정이나 몸짓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행복감입니다. 해 그림자와 소년의 그림자가 물 위에 반사되어 어른거리는 묘사가 좋습니다. 모래 백사장에 다가와 사라지는 물결도 잔잔합니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의 탁월한 색채 감각과 빛의 사용을 잘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물의 푸른색과 하늘의 밝은 색, 그리고 소년들의 피부색과 수영복의 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시각적으로 시원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물결의 반짝임과 햇살이 만들어내는 빛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하여, 작품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크뢰위에르는 인상파 화법을 활용하여 순간의 빛과 색을 포착하려 했습니다. 그는 대체로 사실적인 세밀함보다는 빛의 변화를 강조하고, 그 순간의 감각을 그대로 담아내려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그 특유의 기법이 잘 드러납니다. 물결의 흔들림, 햇살의 밝기, 바람의 움직임이 모두 색과 형태로 표현되어, 마치 관람자가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자연과 사람들의 관계를 세심하게 그려내며, 그 순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스카겐 바닷가를 배경으로 그린 그의 그림들은 이곳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전시 중입니다만 잠깐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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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 (1893). 스카겐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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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겐 해변의 화가와 그의 아내(1899). 히르슈슈프룽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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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개를 데리고 있는 화가의 아내(1892). /스카겐 미술관 소장



안나 안세르(Anna Ancher, 안나 앵커, 1859~1931)의 그림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의 그림이 전시된 곳을 찾아가다가 그림 수업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한 방에서는 그림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진지하게 각각의 대상을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수강생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지시하고 나서, 선생님은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한 자세로 책을 보고 계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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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적인 엄마의 지원으로, 안나 안세르

덴마크 최북단 어촌 스카겐에서 나고 자란 안세르가 국제적으로 성공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건 희생적인 엄마 덕이었는데, 여섯 자녀를 낳은 엄마는 유독 막내딸 안세르에게 헌신적이었다고 합니다. 딸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사립 미술학교에 보냈고, 안나가 남성 화가들처럼 파리 유학도 갈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지원 덕분이랍니다. 동료 화가 미카엘 안세르와 결혼하고, 출산을 한 후에도 붓을 접지 않고 꾸준히 그림을 그렸는데 친정 엄마가 가사와 육아를 조력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거나 자아 성취를 위한 활동에는 주변의 조력이(특히 친정엄마)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우리나라나 서구나 모두 같은가 봅니다. 안나 안세르는 마리 크뢰위에르와 친구 간이어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의 그림에도 안나 안세르는 등장합니다. 아름다운 바닷가를 배경으로 산책하는 뒷모습으로. 안나 안세르의 그림에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합니다. 코펜하겐에서 안나 안세르의 그림이 전시되는 곳은 이곳 국립미술관뿐이라니 참으로 다행인 오늘입니다.



그녀의 동상도 실제 크기로 만들어 전시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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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안세르는 덴마크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상파 화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현대성과 거리를 두고 작품을 그리며, 대개 시선이 직접적인 접촉을 피합니다. 그 덕분에 관객은 그녀의 작품이 만들어낸 공간을 감상하면서도 자신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안나 안세르의 작품에서 흔히 나타나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분위기 속에 빠져드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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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안세르, <엄마>, 1890,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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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안세르, <푸른 방에 있는 화가의 엄마>, 1909,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83세의 엄마가 푸른 방에서 독서를 하고 계시는군요. 단정하게 머리를 감 싸매고 두툼한 외투로 따뜻한 차림을 하시고, 양손으로 책을 조심스럽게 잡고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장 집중해서 읽고 계십니다. 무슨 책을 이렇게 몰입해서 읽고 계시는 것일까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라고 프랑스 작가 외젠 다비는 책 속에서 찾아가고 알아가는 세상과 자신의 의미를 전했듯이 현명하고 미래지향적이었던 화가의 엄마는 지금도 독서를 하고 계시네요. 화가의 엄마처럼 저도 독서의 끈을 놓지 않고 일상에 매몰되지 않게, 의식이 깨어 있어 내가 나의 주인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시인 이정록은 <머리 경작>에서 어머니의 입을 빌어, "공부도 농사도 때가 있어/콧구멍에 풋대추 들이밀어서 안 들어가면, 그해 모내기는 끝난 거여...(하략)... "라고 하지만, 어디 제 인생 공부가 끝이 있겠습니까. 머리 경작을 위해 안나 안세르의 <푸른 방에 있는 화가의 엄마>처럼 83세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 책을 읽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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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안세르, <장례식> ,1891,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장례식(1891)>은 고요하고 묵직한 감정을 전달하는 작품으로, 그녀의 독특한 화풍과 심리적인 깊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 그림은 19세기말 덴마크 스카겐에서 있었던 한 장례식을 묘사한 것으로, 인상파 화가답게 빛과 색을 활용하여 감정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장은 낮고 화면의 중앙에는 고인의 관이 놓여 있고, 그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방 안에는 부드러운 자연광이 들어오고, 그것이 공간을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채웁니다. 안나 안세르는 이 빛을 활용해 색의 대비와 조화를 강조하는데, 특히 파란색, 분홍색, 초록색의 색조가 돋보입니다. 이러한 색들은 단순히 미적 요소로서만 사용되지 않고, 감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파란색은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분홍색은 여성성과 부드러움을, 초록색은 자연과 평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안나 안세르는 테오도르 필립 센(1840-1920)과 함께 덴마크 인상파 화단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이 현대의 삶과 깊이 연관된 반면, 안나 안세르는 스카겐이라는 덴마크의 가장 외진 곳에서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녀는 바쁘고 덧없는 현대 삶에 맞서 싸우는 대신, 그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그려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페테르 한센

페테르 한센의 그림 앞에서 유년 시절의 놀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릴 적에 조금 병약했던 저는 친구들과의 놀이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함께 놀기보다 지켜보곤 했지요. 페테르 한센의 아이들 그림이 잠시 저의 유년시절로 돌아가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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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한센, <영하베 광장에서 노는 아이들> 1907-1908, 109.5X151.5CM,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하는 놀이가 기억나는 그림입니다.

노래를 부르며 두 줄로 서서 마주 본채 옆 친구들과 손을 잡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동작을 하면서 가위바위보를 해 한 명씩 자기편으로 데려왔던 전통놀이지요. 그런데 이 놀이가 일본군 ‘위안부’ 놀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림으로 들어가 볼까요.

햇빛 좋은 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광장에서 즐겁게 놀고 있군요.

긴 겨울을 지나 밝은 햇빛이 좋은 초여름 쉬는 시간이니 오죽 신이 났을까요?



손에 손을 잡고 방어하려는 팀의 즐거움과 그들의 연대를 깨고 진입해야 하는 공격팀의 긴장이 보이는 역동적인 모습이 예전 우리들의 놀이 문화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그림은 어린이들의 놀이와 자유로운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센 특유의 색채와 빛의 사용이 돋보입니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으며, 그들의 모습은 밝고 활기차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서로 뛰어 놀거나 게임을 하며, 그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즐거움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만듭니다.



그림의 중심에는 아이들의 놀이가 펼쳐지고 있으며, 일부 아이들은 공을 차거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다루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그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고 현실적입니다. 어린이들의 옷은 비교적 간단한 옷차림으로, 그 당시의 일반적인 어린이 복장을 잘 보여줍니다. 한센은 이 작품에서 밝고 따뜻한 색감을 사용하여, 어린이들이 노는 광장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햇빛이 가득한 날씨 속에서, 어린이들의 얼굴과 옷은 밝은 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이는 그림에 생동감을 더하고, 관객에게 기분 좋은 느낌을 전달합니다. 또한, 그림의 배경은 밝은 톤의 색상으로 처리되어 어린이들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어집니다. 하늘의 푸른색, 땅의 노란색, 그리고 아이들의 의상의 색상이 잘 어우러져 한 편의 여름날의 활기찬 풍경을 완성합니다. 한센의 독특한 색감과 빛의 활용은 이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며, 관객에게 당시 덴마크의 일상적인 풍경을 생동감 있게 전달합니다.



최근 개봉한 <오징어 게임 2>에 우리의 옛 놀이 “공기놀이, 제기차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등이 등장하는군요. 앞으로 <오징어 게임 3, 그 이후> 등이 나온다면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대문놀이 등도 나오려나요? 우리의 놀이 문화까지 전 세계로 전파되니 그야말로 K 열풍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덴마크 화가 페테르 한센(Peter Maarius Hansen, 1868~1928)은 Funen 섬 출신이며 주로 Funen섬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여 ‘Funen화가’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Funen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페테르 한센은 주변의 일상생활에서 직접 가져온 예술적 주제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주제는 구성, 공간, 빛 및 색상 측면에서 이미지가 제공하는 회화적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표현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피터 한센의 장남 David Shane Hansen이 190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총파업의 주동자 중 한 명으로 군대에 의해 살해되었고, 아들을 잃은 고통이 이후 그림에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인상주의와 빈센트 반 고흐에게서 영감을 받은 그의 그림은 이탈리아를 자주 방문하였고, 이 방문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미술은 속임수?

그 외 덴마크 화가들의 그림을 지나 눈속임 trompel’oeil 그림들을 보았습니다. 트롱프뢰유(trompel’oeil)는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정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을 뜻하는 프랑스어입니다. 그림의 대상과 꼭 닮게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실재와 그림 사이의 경계를 오가며, 순간적인 착각을 유도하는 것이지요.



눈속임 그림은 얕게 튀어나와 입체감을 주기 쉬운 것, 질감이 대비되는 것들을 배치해 대조 효과를 극대화해서 그리거나, 주변에서 보기 쉬운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눈속임이 성공적이려면 관람객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군요.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그림 대결이 있었는데 제욱시스는 새들이 날아와 쪼아댈 정도로 사실적인 포도 그림을 내놓았고, 자신이 이겼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내기 상대인 파라시오스의 그림에 드리워진 커튼을 젖히려고 손을 뻗쳐보니 그 커튼 자체가 그림이었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승패는 결정되었겠지요. 새를 속인 자신의 그림보다 자신을 속인 파라시오스의 솜씨가 더 낫다며 패배를 인정했답니다. 영리한 파라시오스가 포도보다 더 평면적인 커튼이 착시효과가 더 뛰어남을 알았을까요?



이들의 대결을 듣다 보니 우리 신라시대 화가 솔거가 자연스럽게 생각나는군요. 솔거가 그린 황룡사 벽의 소나무 그림에 새들이 앉으려고 날아왔다가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는 이야기말이죠. 솔거의 그림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까움이 크네요.



코르넬리스 N. 헤이스브레흐츠(Cornelius Norbertus Gijsbrechts, 1630년경 ~?)는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역 출신의 화가로 말년에 4년간 덴마크 왕실 화가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1600년대를 전후해 북부 유럽에서 유행했던 눈속임 그림의 거장으로 헤이스브레흐츠의 눈속임 그림이 예술적, 기교적, 지능적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던 시기에 덴마크 국왕은 선출 군주제를 폐지하고 국왕 위의 세습을 포함한 절대 군주제로의 변환기에 강력한 왕권의 상징으로 국립미술관을 조성하였답니다. 연구자들은 과학과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덴마크 국왕 프레데릭 3세의 취향에 부합했을 뿐 아니라, 국립미술관에 소장된 수집품의 일부로서 국왕이 당면했던 정치적 상황에 활용됐다고 연구자들은 추론하고 있습니다. ‘원근법의 방‘에 전시된 헤이스브레흐츠의 그림들 앞에서 우리는 몸까지 바빠졌습니다. 실제 그림 속의 물건들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도, 캔버스를 뒤집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니까요. 원근법 방의 목적은 왕의 손님을 초대하여 예술과 기술의 최신 발전을 잘 알고 있는 통찰력 있는 군주로서 왕을 소개하는 현대적인 속임수를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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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 헤이스브레흐트, <트롱프뢰유-편지꽂이와 악보가 있는 판자 칸막이> 1668,

28.2X111.9cm, 덴마크 국립미술관



칸막이를 배경으로, 그 위에 편지와 악보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칸막이는 실제로 물리적으로 분리된 공간을 의미하며, 그림 속에서 이 칸막이는 여러 가지 물건을 보관하는 기능을 가진 것처럼 묘사됩니다. 편지와 악보가 그려진 부분은 매우 현실적으로 보이며, 마치 이 물건들이 실제로 칸막이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통해, 작품은 일상적인 물건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물건들이 실제인지 아니면 그림인지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림의 질감과 세부 묘사가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관람자는 실제 물체와 그림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작품은 일상적인 물건들을 그린 것으로, 당대 중산층이나 상류층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물건들을 조명합니다. 당시 사람들의 문화적 배경과 일상적인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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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 헤이스브레흐트, <트롱프뢰유-그릇장>1665, 85.1x74.9cm, 덴마크 국립미술관



눈속임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방을 벗어나면서 혹시 일상에서 또는 정치적 상황에서 눈속임을 당하는 일은 없는지? 결정이나 선택에서 착각이나 편향, 오류를 포함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았습니다. 눈속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현명한 판단력뿐만 아니라 그에 앞선 정확한 정보가 전제되어야겠지요. 뉴스마저 정치의 영역에서 또는 기업의 이윤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일 때는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고요.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은 풍성한 보물창고 같았습니다. 뭉크의 그림도, 렘브란트의 그림도, 밀레, 루벤스, 푸생의 그림도, 페테르 한센,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 둥 덴마크와 북유럽 화가들의 그림 모두 모두 시선을 잡아 끄는 매력적인 그림들이었습니다.



보물창고에서의 시간을 더 갖고 싶었지만 폐관 시간과 배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적 한계로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후일을 기약하면 또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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