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아침, 아르후스의 문턱에 선 나는 이미 이 도시가 품은 온기와 이야기에 휘말릴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아르후스(Aarhus, 오르후스, 아루스 등의 발음으로 사용)에 기항하는 날입니다. 도착이 가까워지자,살짝 가는 비가 흩뿌리네요. 아름다운 아르후스를 걸어서 경험해 보려고 했는데, 비가 얼른 그치기를 바랄 수밖에요.
크루즈에서 내리고 보니 지역 주민들이 대니시 쿠키 상자를 들고 시식을 권합니다. 아르후스 입항을 환영하는 그들의 미소가 온화합니다. 쿠키의 따뜻한 온기와 담백한 맛은 아르후스의 사람들의 친절과 따뜻함을 그대로 전해줍니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혀에 감깁니다. 친절하고 세심한 아르후스 thank you!
아르후스의 첫인상이 온기로 스며듭니다.
아르후스는 31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덴마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현대와 전통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도심에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활기찬 거리들이 펼쳐져 있어, 거리를 거닐다 보면 아기자기한 카페와 산뜻하고 독창적인 색상의 건물과 상점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대학교 캠퍼스 앞에는 아이러니하게 성인용품 가게가 영업 중인 모습도 눈에 띕니다.
아르후스에는 세계적인 박물관과 갤러리도 많습니다. 특히 ARoS 아르후스 현대미술관은 그 독특한 옥상 컬러 원형 구조물로 유명하며, 멋진 도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예술과 문화가 숨 쉬는 공간에서의 체험은 그 자체로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북유럽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하나로, 10층에 자리하고 있는 ‘Your Rainbow Panorama’를 걸어서 아르후스를 전망할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극 사실주의 조각가인 론 뮤익의 작품 ‘The Boy’는 다음 우리 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거리를 걷다 보면 “Ask Me”라는 patch가 부착된 빨간오렌지색 재킷을 입은 관광 안내 도우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따뜻한 미소로 관광객들에게 Aaruhus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인 미셸은 덴마크인이 아닌 프랑스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미셸입니다.”라며 한국어로 인사도 건넵니다. 그녀는 한국 노래와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다음 생에는... ’이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진한 아쉬움이 전해졌습니다. 부디 그녀가, 이번 생에, 한국을 그녀가 좋아하는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되기를 기원하게 됩니다.
우리는 비틀스의 “미셸” 노래의 일부를 함께 부르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의 노래가 아름답다고 말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BTS, 뉴진스, 아이유 등 K-Pop 특정 가수보다는 한국어 노래 전반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그녀의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어 노래는 마치 하나의 시 같아요,”라고 그녀가 말했을 때, 그 진정한 감정에 저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녀의 한국어 사랑 덕분에 우리의 자긍심도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관광 안내 자원봉사 가이드를 운영하고 있지요. 이 제도는 관광 안내와 언어 소통을 조력하는 순수 자원봉사 활동으로 가이드들은 일정한 외국어 구사 능력과 봉사 정신을 소유한 주부, 대학생, 정년퇴직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친절성과 이타주의가 발휘되는 중요한 현장이 바로 자원봉사 활동이 되겠지요. 자원봉사 활동은 개인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미국의 경우 국가의 초창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합니다. 자원봉사는 단순히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여 기부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연대감을 형성하고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중요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신건강에도 순기능의 요소가 매우 강하답니다. 특히 고령의 성인일수록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정신적 건강을 더 많이 얻고, 조기 사망 위험성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친절성은 유전적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연구 결과들이 제시되고 있는데요, 그중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결과 중에는 외동으로 자란 사람들보다는 많은 형제들 속에서 자란 사람의 이타주의 성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겠지요. 공감과 연민은 친절한 행동을 촉진시키는 주요한 요인이며, 도덕적 추론능력이 친절한 행동의 실현성을 높인다고 합니다. 또한 사회적 책임감이 이타적 행동을 촉진한다는 결과는 우리가 함께 더불어 성장하는 사회를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산책하는 젊은 부모를 보았는데 2살쯤 되었을 것 같은 아기가 자신이 마신 물컵을 유모차의 컵 홀더에 본인 손으로 의젓하게 끼워 넣는 모습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아기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아기의 올바른 성장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지요. 도서관에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 있었습니다.
부두 근처에는 아르후스 메인도서관인 DOKK1 이 있습니다. Dokk1은 단어와 숫자 조합으로 영어로는 Dock One의 뜻이고, 바닷가 항구 옆에 있던 전 산업체의 위치를 의미합니다. 코펜하겐의 블랙 다이아몬드 도서관을 비롯한 다수의 도서관 디자인 설계로 유명한 슈미트 해머 라슨 건축사무소에서 설계한 이곳은 북유럽 지역에서는 가장 큰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넓게 설계된 열람실에서는 유모차를 끌고 다녀도 편리하며, 어린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장난감과 놀이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도서관 바닥에는 ‘Gaming Street’와 ‘TV 스튜디오’가 있어, 아이들이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저도 슬며시 다가가 참여해 보았습니다. 수유실과 유모차 주차 공간도 별도로 구비되어 있어 도서관 안팎으로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기구들이 있어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도서관과 친근해질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음을 보고 세심하게 설계하고 공간배치를 한 과정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Family Lounge에서는 가족들이 앉아 TV모니터를 보면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거나, 보드 게임들을 하기도 하고 책을 자녀에게 읽어 주기도 합니다. 1층에 있는 cafe에서는 책을 두고 열띤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도서관 외부 야외놀이터에는 러시아 곰 형상의 거대한 미끄럼틀을 비롯한 다양한 놀이 기구들이 있어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 도서관이지만 도서관 본래의 목적보다 모든 연령대를 아우르는 문화시설이자 휴식공간인 시민 복지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르후스시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이 도서관에서는 커다란 청동 종이 울린답니다. 종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환영의 시간을 갖게 되고요. 아름답지요!
이 종의 이름은 “The Gong”라고 합니다.
‘공’이라... 빈손으로 오는 생명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도서관 내부에는 또 하나의 독특한 구조물이 있습니다. 대도시의 건물들이 길쭉하게 매달려 있는 형상을 한 구조물의 이름은 ‘마술 버섯’이랍니다. 마술처럼 전 세계를 아우르며 계속 번져나가는 아르후스 도서관의 영향력을 내포하는 의도일까 혼자 속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서관 로비 한쪽에는 한국에서 입양되어 덴마크인으로 살고 있는 분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사진과 글로 구성되어 전시되고 있으며 그들을 응원하는 메모들이 붙어 있습니다. 한국 아동의 덴마크 입양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가장 많았고 그 후 대폭 줄어들어 2023년에는 2명의 한국 아동이 덴마크로 입양되었습니다. 덴마크는 한국 아동을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이 입양한 국가지만 최근 입양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금전 거래 의혹으로 해외 입양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금발 머리에 하얀 피부를 지닌 현지인들 사이에서 이방인의 모습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어땠을지 전시되어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덴마크 입양아 출신인 말레나 최가 감독한 영화 “조용한 이주”의 장면들이 오버랩되어 오래오래 사진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거대한 건초더미 앞에서 주인공인 칼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에서 칼의 진한 외로움이 전해졌던 먹먹하고 아렸던 영화의 한 장면. 해외 입양아들의 성장 과정에서 인종 차별과, 사회에서 겪은 갈등으로 인해 심리적 아픔을 갖고 있는 그들이 행복하길,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길 기도하면서 방관자로서의 한계를 느끼며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쾌적하고 깨끗한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고,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간단한 식사도 해결할 수 있으며, free wifi도 제공됩니다. 넓고 여유로운 도서관 서가와 쾌적한 휴게 공간이 어우러진 토요일 오후의 도서관 풍경은 정말 부러웠습니다.
이 도서관은 편리한 접근성을 위해 1층에 경전차(트램)가 운행되고 있어 이용자들이 기후 조건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군요.
Dokk1은 책을 소장하고 도서와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람과 미디어의 변화 둘 다를 포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지식을 교환하고 공유하며, 사람과 문화를 이어주는 지역공동체 공간의 모범, 평생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 교육과 놀이가 결합된 공간입니다. 도서관 이용자들의 협력과 네트워킹으로 새로운 시민 문화를 창조하는 무한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21세기의 시대적 요청은 평생교육 및 평생학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 중요한 요인일 될 것이고요. 오늘날 OECD의 선진국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평생학습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국가와 정부의 중요한 기능과 역할의 하나로 “모든 사람을 위한 평생학습이라는 교육복지(educational welfare)”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생 교육은 개인의 삶의 질 향상과 수준 높은 시민의식의 형성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지닐 것입니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 또는 열린 지역사회 중심의 복지사업이 평생교육 및 평생학습의 현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교 안팎의 교육과정에서 평등이 이루어지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현재 집 근처 도서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지속되는 학습의 과정에 즐겁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UN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상위에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덴마크.
그들의 행복 비결을 취재한 오연호 기자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꼽은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의 핵심 요소를 생각합니다.
로스킬데 대학의 벤트 그레베 교수는, “행복이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 그건 주로 좋은 관계를 맺는 데서 나온다. 덴마크 사회는 시장의 힘을 이용하지만, 사회정의라는 관점을 놓치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자본과 높은 수준의 신뢰가 결합돼 있다. 신뢰와 평등,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감소를 덴마크 사회의 강점으로 만든다”라고 덴마크의 행복을 논했습니다.
덴마크 국민은 어떤 상황에 처해도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 소득이 보장되어 있답니다. 이러한 안전망이 행복 사회의 배경이 되는 것이지요.
문화와 예술, 환경, 디자인, 건축 등에서 뛰어난 수준과 감각을 자랑하고 있는 젊고 활기 넘치는 아르후스.
배를 타고 떠나면서 건너편 항구 주거 단지를 바라보았습니다. UN studio, BIG 등과 같은 세계 굴지의 건축가 그룹들이 오래되고 쓸모없게 된 컨테이너 터미널을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재생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를 활용하여 설계한 집합 주거 단지. 빙산처럼 희고 삐죽삐죽한 외관으로 ‘iceberg(빙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위층으로 갈수록 색이 연해져서 그러데이션을 느낄 수 있게 한 파란색 발코니 유리창은 차가운 빙하의 느낌을 매력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덴마크의 어둡고 추운 겨울에 대비하기 위한 충분한 일조량 확보와 수변공간으로 충분한 조망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뾰쪽한 모양의 iceberg 형태의 주거단지. 하얀 대리석과 파란 유리 발코니로 외부를 마감해 멀리서 보면 항구에 빙산이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려는 의도가 잘 반영된 주거단지. 그 안에서 자연과 체육 활동과 문화 활동 그리고 교육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인근 해변에는 ‘infinite bridge’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커다란 원형의 목제 수상 산책로.
시원한 바닷바람과 맑은 바다 위를 걷게 만들었는데 안전을 위한 난간이 없습니다. 사람과 해변을 이어주는 철학의 길 같습니다.
그 다리를 보면서, 우리 영주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도 그려 보았습니다.
무섬마을로 들고 나는 시작과 끝.
무섬마을의 안과 밖을 잇는.
오늘 우리는 무엇과 무엇을 잇고 있을까요
시인 김수복 님은,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사이가 참 좋다
나와 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새들과 새들 사이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
도착하여야 할 시대의 정거장이 있다면 더 좋다 “고 <사이> 이것과 저것의 사이를 우리에게 전했습니다.
또한 안도현 시인은,
”이것과 저것의 간격을 사이라고 한다. 또한 이것과 저것의 관계도 사이다.
간격이든 관계든 둘 다 거리 조정이 필수적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심리 상담에서는 심리적 안전 거리로 난롯불 거리를 예로 들기도합니다.
난롯불 거리?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옷이 타거나 신체는 화상을 입기도 하겠지요.
너무 멀리 떨어지면? 온기가 전달되지 않겠지요.
적절히 온기가 전해지면서 소상을 입지 않는 안전한 거리.
덴마크의 도시 아르후스를 떠나며, 좋은 관계, 적절한 거리를 통해 행복 사회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그들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아르후스에서의 이 특별한 경험은 두고두고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