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한낮, 아이슬란드의 심장부 레이캬비크에 발을 디딘 순간, 차갑지만 뜨거운 시간들이 내 안에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아이슬란드의 아큐레이리(Akureyri)와 이사피요르드(Isafjordur) 기항을 거쳐 세 번째 기항지인 레이캬비크(Reykjavik)에 도착합니다. 7월과 8월이 가장 따뜻한 날씨로, 비가 오락가락하여 우산을 준비해 나갔지만, 날씨는 대체로 좋았습니다.
오래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무명에서 동고동락하며 스타로 발돋움한 네 명의 친구들이 꼼꼼한 준비 없이 무작정 떠난 즉흥여행지 아이슬란드. 굳이 드러내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 속 깊은 마음이 통하는 네 명의 좌충우돌 여행 과정을 그린 <꽃보다 청춘> 그들의 여행은 진정 꽃보다는 청춘이었지요. 그들을 통해 한 발 더 가까이 아이슬란드를 접했습니다.
북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바위섬인 아이슬란드는 곳곳에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폭포들로 유명합니다.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한 겨울과 시원한 여름을 형성하고, 해안에 위치해 있다 보니 바람이 많이 불며, 특히 겨울에는 강풍이 많이 붑니다. 여름은 시원하고 평균 기온은 10~15도이며, 20도를 넘는 경우는 드물지요. 아이슬란드는 화산과 빙하, 용암 지대와 푸른 목초지, 끓어오르는 온천, 연어가 가득한 얼음처럼 차가운 강이 있는 땅입니다. 자연환경이 깨끗하고 빙하와 백야, 오로라로 유명한 아이슬란드는 9세기 후반과 10세기 초에 주로 노르웨이에서 온 바이킹들에 의해 정착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정치 투명성과 공공 신뢰가 높은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부패가 적은 나라 중 하나로 자주 평가됩니다. 최근 몇 년 간 아이슬란드는 성평등의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여성의 정치 참여가 매우 높습니다. 민주적이고 부패가 적으며 공공 신뢰가 높고 여성의 정치 참여가 높다니........... 여러모로 부럽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추운 이름의 아이슬란드가 최근에는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도한 관광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빙산, 온천, 간헐천, 여전히 활동 중인 화산, 눈으로 덮여 있는 산 정상, 흘러내린 용암으로 덮여 있는 황무지 들판 등 자연적인 아이슬란드만의 독특한 경관 때문이지만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섬나라인 아이슬란드는 모든 생필품들이 수입되기 때문에 고물가로 유명합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은 ‘연기 나는 만’이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바람과 지열 때문에 ‘연기 없는 도시’가 되었답니다. 레이캬비크은 하얀 목조건물, 밝은 색의 콘크리트 건물 등 현대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시의 중심지인 구시가지는 잔디 공원, 맑은 호수, 시장, 박물관등이 함께 어울려 있으며 깨끗하고 조용한 전원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바람 때문인지 지면 가까이 낮게 피어 있는 꽃들이 아기자기 귀엽고 산뜻하게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는 듯합니다.
크루즈 터미널에서 도심은 약 4km 떨어져 있으며, 유료 셔틀버스가 운행됩니다. 크루즈 터미널 내에는 로컬 여행사들이 제공하는 투어들이 있지만, 우리는 선사에서 운영하는 골든 서클 투어를 신청했습니다. 골든 서클은 싱벨리어 국립공원, 굴포스, 게이시르 등 세 곳을 포함하는 명칭입니다.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골든 서클 루트를 보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항지인 레이캬비크에서 접근하기 쉽습니다. 종일 버스로 이동하게 되는 투어지만 가치 있는 여행으로 만족했습니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유라시아대륙판과 북아메리카대륙판이 매년 2cm씩 벌어진다고 합니다. 첫 번째 싱벨리어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초록의 대지와 작고 귀여운 꽃들, 맑은 하늘이 우리의 출발을 반기고 있었습니다. 지각운동의 결과로 지금과 같은 신비하고 웅장한 광경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대지가 벌어진 틈을 볼 수 있어 세계적으로 특별한 곳이지요. 전망대에서 보면 왼쪽이 유라시아판, 오른쪽이 북아메리카판입니다. 아이슬란드 인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중회의(Althing)가 열린 장소로 세계 최초의 의회가 열린 곳이고 여름에는 야생화로, 가을에는 붉은 그림자로 물드는 곳입니다. Althing은 분쟁을 해결하고 법을 제정하는 곳으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자국의 자치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노르웨이 왕을 법적으로는 존중했지만 실질적인 자치와 독립적인 법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웅장한 협곡을 지나면 오른쪽 멀리 평원 위에 하얀색 총리의 여름 별장과 공원 관리인의 집이 보입니다. 우리의 투어가이드는 총리의 초청으로 그 여름 별장에 다녀왔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공원의 멋진 전망을 즐기고 산책을 하였습니다.
계단식의 3단 폭포인 굴포스는 가장 높은 곳의 낙차가 32m이고 웅장하게 떨어지는 낙차 소리는 멀리서도 들리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땅 속으로 떨어지는 굴포스의 장대한 풍광은 거침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폭포를 오래전 댐을 만들어 수력발전을 하려는 계획에 맞서 “나는 나의 친구를 버릴 수 없다” 라며 댐을 건설하면 투신하겠다고 막은 소녀(굴포스 인근의 농장 브라트홀트에서 살았던 농부의 딸인 시그리두르 토마스도 티르)로 인해 굴포스는 지켜졌고, 지금은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폭포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접근성이 좋았던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 조금만 더 바라본다면 필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강력한 흡인력을 갖고 있던 남미의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난 뒤라 폭포의 규모가 대단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개발 논리보다 자연환경을 지키고 보존하려 했던 그들의 노력을 지지하게 했습니다.
굴포스 서쪽에는 온천이 분출하는 간헐천 중 최고인 게이시르가 있습니다. 마그마에 의해 데워진 뜨거운 물이 분출되는 것으로 “마그마의 호흡”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기둥 간격과 높이가 일정하지 않아 계속 머무르게 됩니다. 활발한 화산 활동 때문에 아이슬란드 곳곳에 온천을 비롯한 간헐천들이 있다고 합니다. 수만 년 된 빙하와 뜨거운 간헐천이 공존하고 있어 아이슬란드의 별명이 불과 얼음의 나라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분출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기다리게 되지만 불규칙한 상황을 기다리면서 환호성을 질러 보는 즐거운 시간도 가졌습니다.
여정에서 또 하나 큰 인상 깊었던 경험은 바로 지열 발전소를 방문한 일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세계적으로 지열 에너지 사용이 매우 발달한 나라로, 그들의 에너지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열 에너지를 뽑아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정교하고 과학적이었다. 아이슬란드는 풍부한 지열 자원을 활용해 거의 모든 전력과 난방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를 넘어,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는 자연과의 조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이슬란드는 지열 에너지 외에도 풍력과 수력 등 다양한 청정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산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도 모범적인 국가로 평가받고 있지요. 이를 통해 경제는 안정적이며,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활 수준과 복지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하고 짜릿한 모험을 원한다면 이 영화가 대리 만족을 해 줄까요?
투어를 마치면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2013년에 개봉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은 ‘라이프’ 잡지사에 사진 현상 업무를 16년째 담당하고 있습니다. 월터는 상상을 많이 하는데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상상에 빠지고, 미래를 생각하며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폐간을 앞두고 마지막 발간되는 잡지의 표지 사진을 실어야 하는데 사진작가가 자신 인생의 정수를 담았다면서 25번째..... 사진을 표지로 써 주길 당부합니다. 월터는 그 사진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사진작가를 찾아 나섭니다. 평생 외국을 나가본 적이 없는 월터는 사진작가를 찾아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을 넘나들며 거대한 모험을 하게 됩니다.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선물로 월터에게 준 지갑에는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라는 라이프지의 모토가 적혀 있었습니다. 월터가 많은 고난 끝에 히말라야에서 숀을 만났을 때, 숀은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아.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라고 말하며 기척에 예민한 산표범을 응시합니다. 때로 그 순간에 머물며 아름다운 순간을 즐기던 경험을 떠올려 봅니다.
아름다운 자연 상태의 장면을 만났을 때 온몸의 세포가 반응하며 깨어나는 것 같은 순간들을 영화 속에서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전하고 있습니다. 대상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숨 막히는 순간들. 네팔의 히말라야 산 등성이에서 지켜본 일출, 발리 해변에서 바라본 일몰, 거칠고 역동적인 아이슬란드의 자연 등 그 순간에 머물며 아름다운 순간을 만나는 경험은 참으로 최승자 시인의 시어처럼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입니다.
영화 속 월터의 모험 중에는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양손을 감싸고 좌우 방향과 균형을 잡으면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질주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합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외에도 많은 영화들이 아이슬란드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독특한 자연경관과 검은 모래 해변, 빙하 계곡 등뿐만 아니라 여름이면 백야 현상 때문에 일출과 일몰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카메라에 담기에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서랍니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연습한 곳이 아이슬란드라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연 풍광이 멋지다”라고 아이슬란드 영화인은 말했답니다. 더군다나 아이슬란드 정부는 영화 촬영지로 아이슬란드를 선택하면, 촬영 경비 환급을 다른 나라보다 높게 책정해 주어 영화제작진들에게 매력적인 장소로 부상하고 있답니다. 이색적인 풍광과 경제적 이득을 함께 취할 수 있으니 제작진에게는 유익한 장소임에 틀림없겠지요.
영화에서처럼 현실과 상상이 만나는 곳, 아이슬란드의 골든 투어 방문은 바로 그런 장소였습니다.
투어가 끝나고, 잠시 레이캬비크 도심을 걸어 다녔습니다. 레이캬비크는 생각보다 작고 아담해서 더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작은 나라지만, 그들은 문화와 전통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그들의 언어인 아이슬란드어는 여전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자연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살아가며, 마을 사람들 간의 결속도 매우 강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 정신은 아이슬란드의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평등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겠지요. 땅 밑에서는 지열이, 지상에서는 대형 폭포와 빙하가 곳곳에 있는 대자연 자체가 아이슬란드 친환경 에너지의 비결이지요. 가스나 지진 등 화산 폭발 징후가 여전히 존재하여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아이슬란드.
저녁식사를 마치고 극장에서 공연하는 아이슬란드 민속 음악을 보았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민속 음악은 주로 스토리텔링과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민속 음악은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와 자연을 반영하는 중요한 예술 형태입니다. 평소에 자주 접하기 어려운 아이슬란드이기에 공연에 거는 기대가 높았었는데 지루하단 느낌을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단순한 악기와 목소리로 연주되며 그 속에서 하모니와 리듬을 통해 고요하면서도 심오한 감정을 전달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감수성이 부족해서인지 공연자들의 준비 부족인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차거움과 뜨거움을 가진 아이슬란드, 차갑고도 뜨거웠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내 안에 조용히 피어난 꽃이 되어, 아이슬란드의 기억을 영원히 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