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정세랑(1984~ ) 작가는 편집자로 일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판타스틱』에 단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불꽃을 쫓다』, 산문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가 있습니다.
모 예능방송에 출연해서 정세랑 작가의 창작 원동력은 바로 ‘새 관찰’ 탐조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책에도 탐조에 열중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만, 방송에서 그녀는;
“새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랑의 다른 이름은 호기심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수만 킬로미터를 매년 오가는 철새의 감각을 궁금해하며,
영영 알 수 없을 것들을 그럼에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많은 것들이 시작되지 않는지 헤아린다.
놀라움으로 가득 찬 이 책을 통해 당신의 세계가 활짝 열리길 바란다.
그 틈으로 날갯짓하는 생명들이 날아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새 관찰을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주의 깊게 시선을 두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묘한 따뜻함과 설렘입니다. 현실적이지만 이상적이고, 일상적이면서도 기적 같은 순간들이 그녀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시선으로부터,』와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이러한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기억, 그리고 여성의 서사를 탐색합니다. 이 두 작품을 연결해서 읽으면, 정세랑 작가가 꾸준히 탐구해 온 세계관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시선으로부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한 가족의 역사와 한 여성의 삶을 탐색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심시선은 강렬한 개성과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 인물로, 그의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들이 그의 흔적을 따라가며 시선을 기억하는 방식이 주요한 서사적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선의 삶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남은 이들에게 영감과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개인의 기억이 가족과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반면,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 소설로, 남장 여인 설자은이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가 구성부터 완성까지 무려 5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작품인 『시선으로부터,』에서 작가는
“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루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싶었다.
쉽지 않았을 해피엔딩을 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는 심시선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유언에 따라 가족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나, 사후 10 주기를 맞아 큰딸 명혜가 하와이에서 제사를 모시겠다고 선언 같은 제안을 합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라고 큰딸 명혜는 말합니다.
시선은 6.25 이후 하와이로 이주했지만,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유럽계 남성으로부터 교육의 기회라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안받지만, 그는 폭력으로 그녀를 옭아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적 권력이 드러나는 예술계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던 심시선.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엔 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깨워, 날마다의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터져 죽지 않고 웃으면서 일흔아홉까지 살 수 있었느냐고.” --- p.15
“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으니,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또 죽을 것이다.
도중에 가슴이 터져 죽어버리지 않은 것은 어린 자식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와서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먼저 죽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텀벙텀벙 걸으면서도 다 놓아버리지 않은 것은,
내가 먼저 죽은 사람들의 기록관이 어서였다.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어떤 의미로는 친구들에게 져 술래가 된 것이다.
편을 먹고 내게 미룬 채 먼저들 가버렸다.” ---p. 239
“일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길들여지지 않는 괴물 늑대와 같아서,
여차하면 이빨을 드러내고 주인을 물 것이었다.
몸을 아프게 하고 인생을 망칠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조금만 사랑하자니, 유순하게 길들여진 작은 것만 골라 키우라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소소한 행복에서 의미를 찾자, 바깥의 평가보다 내면이 충실한 삶을 택하자는 요즘의 경향에 남녀 중 어느 쪽이 더 동의하는지 궁금했다.
내면이 충실한 삶은 분명 중요한데, 그것이 여성에게서 세속의 성취를 빼앗아가려는 책략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성취를 하려니 생활이 망가지고, 일만 하다가 죽을 것 같고.......” ---p. 248
고난과 역경이 많은 삶이었지만 자손들에게 하나의 긍지가 되어준 심시선여사의 제사를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와이에서 지내고자 모든 가족구성원이 하와이로 향합니다.
제사라고 해서 음식을 준비하고 절을 하는 형식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 동안 각자가 심시선 여사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싶은 순간들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배우거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면서 느끼고 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후손들은 심시선여사의 삶을 기억하고 기리면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이해하고 소통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저의 죽음을, 사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르고 우연히 세상에 나온 것처럼 흔적 없이 부재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싶습니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그 과정도 예전의 관습과 달리 이 시대에 적합하게 달리해야겠지요.
정세랑 작가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제목만을 보았을 때는 태양계의 2번째 행성인 금성(金星, Venus)을 생각하고 SF 소설인 줄 알았습니다. 이 책은 통일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남장 여인 설자은과 파트너이자 조력자인 목인권의 활약을 담고 있는 추리소설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정세랑 작가는 “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지나는 동안, 저는 미스터리 장르에서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언제나 원인이 밝혀지고, 답이 주어지고, 해결이 있는 이야기들이 때로 그렇지 못한 현실의 중압감을 잊게 해 주었습니다. 몇백 권을 읽고 나서, 한 권을 더하게 되었습니다.....(중략)....
장르문학의 근사함은 여러 시대의 작가들이 크고 높은 탑을 이어 쌓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작은 돌을 보태고 싶습니다.
시대 배경을 고르는 일은 고민스럽지 않았습니다. 고대사의 이야기와 역사가 아직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기록된 부분에 매력을 느끼곤 했고, 그 어떤 비극에도 안전한 심리적 거리를 가질 수 있는 점 역시 좋았습니다. 특히 신문왕 시대에 항상 끌렸습니다. 큰 전쟁이 끝난 통일신라는, 한껏 융성을 향해서 가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기 시작했지요. 풍요 속에 숨어 있는 붕괴의 씨앗 같은 것을 천삼백 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먼 시대를 거울삼아보는 일은 언제고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다.
첫 번째 이야기인 <갑시다, 금성으로>에서는 바람에 의지하는 나무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던 옛사람들의 용기와 막막함이 뒤섞인 내면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육두품 도당 유학생은 조금 더 뒷시대에 많이 찾아볼 수 있어서, 설자은은 드문 사례라고 설정해 두었습니다.....(하략)..
계절마다 경주에 가 다음 이야기를 건져오고 싶습니다. 이 시리즈가 세 권이 될지, 열 권이 될지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열 권을 넘어서면 좋겠습니다. 설자은과 함께 금성을 누벼주시면 기쁠 거예요.”
작가의 말을 읽으면 어느 순간 그녀와 내가 소통하고 있는 듯한 연대감을 느낍니다.
작가의 말 중 “ 그 어떤 비극에도 안전한 심리적 거리를 가질 수 있는 점 역시 좋았다는” 부분을 격하게 동의합니다. 제가 정한 이번 학기 자율적 커리큘럼이 대하소설과 함께 하는 우리의 근현대사인데, 그런데 읽는 과정이 알아가는 과정이 정서적 복잡함 때문에 힘이 듭니다.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것 같아 진도가 무겁게 나가고 있습니다.
육두품이라는 서열이 나오니 옛 학습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학과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동일하면 성골, 석사과정부터 유입되면 진골, 박사과정부터 진입하게 되면 6두품이라고 분류하던 어떤 선배의 말이 생각나서 말이죠.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시선으로부터,』로는 모계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삼대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가족상을 보여준 작가는 명랑 역사 미스터리 소설 ‘설자은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인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출간했습니다. 두 형의 죽음으로 갑자기 첫째가 된 셋째 호은의 요구로 설자은(본 이름은 미은)은 갑작스러운 손 위 오라비 자은의 죽음으로 그가 가기로 한 당나라 유학을 대신해 가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과 존재는 사라지고 그녀가 아닌 오라비 자은으로 살게 됩니다. 오랜 기간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공부를 마친 설자은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부터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사건들을 해결해 가면서 이야기는 진전됩니다.
“금성을 떠날 때는 허물을 벗어던지고 온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에 두고 온 쪽이 진짜이고 물을 건넌 자신이 허물인 것처럼 느껴졌다. 매미 껍데기처럼 색이 없고 안쪽이 텅 빈 무엇.... 어쩌면 배고픔을 지나쳐 언제나 살짝 발이 땅에서 뜬 듯한, 가시지 않는 어지러움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돌아가 확인하기 전까지는 짚어 말할 수 없을 터였다.” ---p. 13
“낭도였나, 낭도가 아니었나.
다섯째인가, 여섯째인가.
자은인가, 미은인가.
이름을 얻은 걸까, 빼앗긴 걸까.” ---p. 26
“얼굴이 꼭 닮았지. 자은이 크지 않았는데 네가 여자치곤 커서 키도 비슷하고.
그렇지만 키 같은 건 상관없어. 머리가 비슷하게 좋은 것이 너뿐이다.
다른 동생들은 나이도 어릴뿐더러 너처럼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송곳이 아니다.
어머니가 자은과 너를 낳으셨을 때 무엇을 달리 하셨는지....” ---p. 28
“우리가 글을 배울 때 스승님은 너를 그만 배워도 된다고 방에서 내보냈지.
그런데 너는 떠나지 않고 창밖에서 귀로 배웠다.
나중에 스승님이 너를 혼내려 불러 모질게 시험해 보았을 때 네가 써낸 것이 내가 써낸 것보다 나았다. 나는 그 일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진짜 칼을 받았을 때 너는 나무칼을 쥔 채, 네가 쓰이지 않으면 신라가 잃는 것이라고 했지. 자. 내가 네게 쓰일 기회를 주겠다. 너는 이제 어쩔 것이냐?
셋째의 특장은 도발이었다.
여섯째는 태어나서 셋째를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자신과 꼭 닮은, 그러나 죽음의 색이 짙어져 가는 다섯째의 얼굴을 내려다보면 긴 한숨을 쉬었다.
창밖에서 귀로 공부를 쫓아갈 때 몰래 책을 베껴줬던 것은 다섯째였다.
너와 나는 거의 같지, 하고 속삭이면서..... 다섯째에게 빚이 있었다.
다섯째로 살면 다섯째를 살린 것 같을까?
그리하여 병으로 죽은 것은 여섯째 미은이 되었다.
미은은 자기 이름을 묻고 자은이 되었다.
남자 옷을 입고, 한때 낭도였고 글에 밝았던 한 살 위 오빠의 삶을 이어 살기로 했다.”
---p. 29
“그 많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몸이 떨리게 두려웠는데, 왕과 독대하려니 돌바닥에
녹아들어 없어지고 싶었다.
“너의 이름을 두 번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잊고 두 번째에는 새겨두었지.”
바닥에 이마를 댄 채 그게 언제였을까.
자은은 추측해 보았다. 사신단으로부터 한 번, 소판댁으로부터 한 번일까?
“너를 직접 보자 세 번째는 내가 부르게 되는구나.”
왕이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설자은”
자은의 이름을 불렀다. 자은이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형편없게 나와 혀를 깨물었다.
“나의 흰매가 되어라.”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들자, 칼이 하나 자은 앞에 놓였다.
단검보다는 길고 장검보다는 짧았다.
소매 속에 숨은 자은의 팔을 재서 만들어진 것 같은 길이였다.
칼자루의 형상은 하늘에서 사냥감을 향해 화살처럼 내리 꽂히고 있는 매였다.
손을 뻗어 그 칼을 드는 순간, 뒤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것을 명하시는 것입니까? 밝지 못한 저에게 일러주십시오.” ---p. 283-284
소설은 흥미진진하면서 유쾌하고 경쾌하게 전개됩니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기존 작품이
드라마화되어 많은 화제와 인기를 얻은 것을 기억하면...
이 멋진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역할을 누가 맡아서 하게 될까요?
탐정 영화가 많이 있지만 역시 명랑한 영화가 떠오릅니다.
2020년에 출시한 영화 <에놀라 홈즈>는 ‘낸시 스프링거’의 탐정 소설 중 <The Enola Holmes Mysteries>의 ‘사라진 후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영국입니다.
천재 가문인 ‘홈즈’ 가문의 막내딸인 Enola(밀리 바비 브라운 역)의 이름은 엄마(헬레나 본헴 카터 역)가 지어준 것으로 에놀라 이름을 거꾸로 보면 ‘alone’으로, 여성의 인권이 종속적이었던 당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살기를 원하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이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의 참정권은 물론 보장되지 않았던 당시
진취적인 의식을 갖고 있던 에놀라의 엄마는 막내딸인 에놀라에게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현모양처의 수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호신술, 활쏘기, 칼 쓰기 및 운동을 직접 가르치고
서재의 책들을 읽게 하고, 수수께끼를 풀면서 문제 해결 방법과 전략을 학습시킵니다.
당시 에놀라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두 오빠들은 집을 떠나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환경이 가능했습니다.
둘째 오빠(헨리 카빌 역)는 유명한 탐정 ‘셜록 홈즈’이지요.
어느 날 엄마가 사라집니다.
그동안의 학습으로 찾아낸 단서로 엄마가 남긴 문장과 돈을 발견합니다.
단서를 배경으로 에놀라는 남장을 하고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타게 됩니다.
그 후의 전개는 생략하겠습니다....
2022년 출시한 <에놀라 홈즈 2>에서는 날카로운 추리력과 당찬 의지로 가득한 에놀라 홈즈가
탐정 사무소를 열고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 속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시선으로부터,』의 심시선은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인물이며,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의 설자은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신의 지혜와 용기로 사회의 억압을 넘어섭니다. 심시선의 삶이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하나의 유산으로 남듯이, 설자은 역시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결국 이 두 인물은 모두 ‘자신이 머물 곳’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나아가는 존재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기억과 관계의 힘을 탐색하는 『시선으로부터,』와 한계를 넘어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는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며, 우리 역시 ‘시선’이 머무는 곳과 그 너머를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경주를 가게 되면 정세랑 작가가 탄생시킨 설자은 먼저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설자은을 쓸 때 작가는 영감을 찾아 박물관을 많이 갔다고 합니다.
못생긴 토기를 보고, 이걸 만든 사람이 예쁜 것도 만들었을텐데 하필 이것이 제일 오래
남아서 박물관에 전시되었지 하는 생각과 함께 달라지는 것과 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목적지 없이 산책을 가거나 아무 버스나 타고 멀리 가보기도 한답니다.
일상적인 관습적인 행위에서 벗어나 다른 경험을 해보고 달리 생각해 보는 관점의 전환이
풍부한 소재의 근거가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저도 다음에 박물관에 가면 다른 관점으로 유물들을 흥미롭게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날처럼) 분열과 화합이 화두였던 시기라 마음이 끌렸고, 신문왕은 재위 기간(681~692년)이 짧지만 국학 설립, 천도 시도 등 합리적인 시도와 성취가 많아 다룰 내용이 풍부하다”며 “경주박물관 신라천년서고의 소장자료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작가는 인터뷰에서 전했습니다.
작가는 더불어 “설자은의 미래는 알아요. 모든 일을 겪고 아주 나이 든 모습을 그리고 싶거든요. 자은이 장수한다는 전제하에, 신문왕과 효소왕을 거쳐 성덕왕까진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자은이 사건 사고로 단명하지 않고 장수한다니 안심이 됩니다.
판타지 소설로 등단한 뒤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을 오가며 넓은 스펙트럼으로 기량을 펼치는 작가의
다음 시리즈도 기다리면서 발칙한 상상을 글로 전개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