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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 희고 긴 구름의 나라

by 윤재

키위, 희고 긴 구름의 나라 - 뉴질랜드


키위(Kiwi)라는 단어에 이토록 따뜻한 울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크루즈 승객 중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적은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입니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항,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서 출항하는 이 여정에서 그들은 매우 편리하게 승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서울에서 시드니까지 항공편으로 가서 승선을 하게 되는데 반해 그들은 다양한 크루즈 일정을 선택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어 부러웠습니다.



크루즈 일정의 막바지에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 기항합니다.



크루즈 내에서 뉴질랜드인들은 “키위”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키위"라는 별명은 20세기 초,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뉴질랜드 군인들이 키위 새처럼 고유의 특성을 가진 존재로 여겨져서 "키위"라는 별명을 받게 되었고, 이 표현은 점차 뉴질랜드 사람들 모두를 지칭하는 용어로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키위"는 뉴질랜드 사람들을 부르는 친근하고 자랑스러운 표현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크루즈 승객 중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오씨(Aussie)'로 불립니다. 처음에는 키위? 오씨? 이상하게 들렸으나, 공식적인 표현보다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더 자주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Aussie'라는 별명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문화와 유머, 친근한 성격을 잘 반영하는 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뭔가 이렇게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가 있다면... 글쎄 '백의민족'이 될까요? 두 단어로 불릴 별칭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들이 “키위”라고 불리는 이유는 키위 새에서 유래합니다. 새로 분류되지만 날지 못하는 야행성, 뉴질랜드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길고 얇은 부리에 포근한 갈색 털을 지닌 키위새는 뉴질랜드의 國鳥인데, ‘키위, 키위’ 하고 울어서 ‘키위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키위 새는 뉴질랜드의 토종 동물로, 독특한 외모를 가진 새로 긴 부리와 복슬복슬한 몸이 특징인데, 이러한 특이한 모습으로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기 때문에 뉴질랜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키위새는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새이지만 최근 들어 개체 수가 크게 줄고 있습니다. 한때 뉴질랜드에서 1200만 마리에 달했던 키위새 수는 6만 8000마리까지 줄었지요.. 야생에서 태어나는 새끼 키위새의 95%가 성체(다 자란 몸)가 채 되기도 전에 족제비와 같은 포식자(다른 동물을 먹이로 하는 동물)들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에 뉴질랜드 자연보호부에 따르면 현재 키위새의 수는 매년 평균 2%씩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키위새의 평균 수명은 10~ 15년 사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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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New Zealand Trails



1970년대에 차이니즈 구스베리로 알려졌던 털북숭이 갈색 과일이 키위새와 비슷하다고 하여 뉴질랜드 식물 육종가들의 마케팅 움직임에 따라 '키위'로 이름이 변경되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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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사람은 키위라 부르고, 원주민은 마오리(Maori)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역사적으로 마오리 문화와 영국 식민 역사의 영향을 받았으며, 정치적으로 안정된 복지국가입니다. 경제적으로는 농업과 관광업이 핵심이며, 아름다운 자연경관 덕분에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나라입니다.



약 1,000년 전 남태평양 타히티 부근에서 카누를 타고 건너온 마오리족이 최초의 뉴질랜드인이며, 마오리 말로는 뉴질랜드는 ‘아오테아로아(Aotearoa), 희고 긴 구름’ 이란 뜻이랍니다. 마오리족은 별의 위치와 바람, 파도의 흐름을 보고 방향을 결정하는,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거대한 카누를 타고 뉴질랜드로 이주했습니다. 당시 마오리는 철기를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돌을 이용한 여러 가지 도구와 장신구를 만드는 세공기술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유럽인과 접촉하기 전까지 문자가 없어서, 그들의 역사와 전통기술 등은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왔습니다.


뉴질랜드에 상륙한 최초의 유럽인은 공식적으로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벨 타스만이었습니다. 그는 뉴질랜드 뿐 아니라 호주도 살펴보고 돌아갔는데, 이런 이유로 두 나라 사이의 바다를 태즈메이니아 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바틱부부라고 부르는 댄스커플도 태즈메이니아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뉴질랜드라는 이름도 네덜란드 해안지방 젤란드의 이름을 따 새로운 젤란드(Novo Zeeandie)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자연 풍광이 아름답고 웅장하여 많은 영화,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 호빗, 라스트 사무라이, 피아노 등의 촬영지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키위들은 우리보다 역사는 비록 짧지만, 자신들의 전통 언어와 음악, 댄스에 대한 자긍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자체적으로 키위 승객들이 다른 승객들을 위해 그들의 언어와 노래, 율동을 가르쳐주는 시간을 제공하고 하선일이 다가오니 그들이 함께 모여 발표회를 하더군요. 맨발을 하고 큰 목소리로 그들의 역사를 소개하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에서 자긍심과 즐거움이 뿜뿜 전해졌습니다.



60개의 서로 다른 화산으로 인해 형성된 좁은 지협에 걸쳐 있는 뉴질랜드의 옛 수도인 오클랜드는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적 명소, 국제적인 상점, 레스토랑, 박물관, 미술관, 정원을 자랑합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활기찬 도시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 경제의 중심지이며, 인구의 약 3분의 1 이 거주하는 대도시입니다. 이곳은 ‘도시 위의 항구(City of Sails)’라는 별명답게 수많은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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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는 2017년 <Mercer>의 연간 설문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3위로 뽑혔다고 합니다. 1840년 초대 뉴질랜드 총독인 윌리엄 홉슨에 의해 건립된 도시로 도시 이름은 당시 인도 총독이었던 오클랜드 백작 조지 이든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한때 뉴질랜드의 수도였으나, 수도는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야 한다는 오랜 논쟁 끝에, 국토의 중앙에 가까이 위치한 웰링턴으로 수도의 지위를 넘겨주었습니다.


우리는 어젯밤에 오클랜드에서 하선하게 되는 조셉과 젠을 마지막으로 만났습니다. 그 둘은 다이내믹하게 자유롭게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눈에 들어왔었는데 어느 포멀나잇에 우리가 생활한복을 입었을 때, 조셉이 다가와서 예쁘다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제 빨간 치마와 꽃무늬 저고리가 멋지다면서 한국에 대해 좀 안다고 반가워했습니다. 조셉의 옛 피앙세가 한국여자였답니다. 살짝 귓속말로 제게 말하길 젠이 들으면 싫어하지만 옛 한국여자 친구가 가끔 그립다고도 했습니다. 조셉은 한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어 서울도 종종 방문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오클랜드에 내리자마자 친구의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슬퍼했습니다. 그 친구는 이번 크루즈를 함께 하기로 했었는데, 최근에 암으로 진단받아 같이 오지 못했는데 엊그제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고 애통해합니다. 젠은 자신의 부모가 일주일 간격으로 돌아가시고 남편도 먼저 가고 자기는 굉장히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삶은 내일을 알 수 없으니 그저 서로 아끼며 살아가라고 저를 꼭 안으면서 조언을 합니다. 우리가 매우 lovely 한 사람들이니 잘 살 것이라고 믿는다고 하면서 말이죠.



부두에서 도심으로 나가는 양 옆에는 대형 쇼핑몰, 상점, 식당들이 가득하며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있어 활기찹니다. 그 거리를 걸으며 오클랜드를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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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최고의 번화가인 퀸 스트리트에서 한 블록 떨어진 앨버트 파크 맞은편에 위치한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아트 갤러리(Auckland Art Gallery Toi o Tāmaki)를 방문했습니다. 아트 갤러리는 유럽 고전 미술부터 현대 뉴질랜드 예술까지 17,500여 점의 폭넓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어, 문화적 감성을 자극하는 장소입니다. 마오리 언어로 ‘토이 오 타마키’인 아트 갤러리는 2011년 신축되었고, 2013년 월드 아키텍처 페스티벌에서 ‘올해의 건축상’ 선정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일부 리모델링이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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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내부는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과 현대적인 전시 공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다양한 기획전과 워크숍도 열려 예술 애호가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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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투자자 줄리안 로버트슨(Julian Robertson)이 폴 세잔,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피에트 몬드리안, 살바도르 달리, 조즈로 브라크, 앙드레 드렝 등의 1억 1,500만 달러 상당의 미술품을 기증하여 유럽 회화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매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며 마오리 및 태평양 섬 예술가들의 뛰어난 작품과 11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국제 회화, 조각, 판화 컬렉션을 둘러볼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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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스튜어트, <Portrait of a woman in red>, 1930



미술관에서 찰스 프레데릭 골디(Charles F. Goldie, 1870-1947)의 작품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골디는 마오리 원주민의 초상화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화가로, 그의 작품들은 뉴질랜드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찰스 프레데릭 골디는 뉴질랜드 출신의 화가로, 마오리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사실주의 기법을 익혔으며, 뉴질랜드로 돌아와 마오리 원로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집중하며, 마오리 문화가 서구화되면서 점점 사라져 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사실적인 표현과 세밀한 묘사로 유명하며, 특히 마오리 원로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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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프레데릭 골디, <Woman in the bath>, 1898, 오클랜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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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프레데릭 골디, <Patara Te Tuhi>, 1908, 오클랜드미술관


마오리 원주민의 깊은 사색을 담아낸 초상화로, 인물의 표정과 세밀한 주름, 전통 문신(모코)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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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프레데릭 골디,<Reverie: Pipi Haerehuka>, 1939, 오클랜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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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프레데릭 골드, <고귀한 종족의 고귀한 유물>, 1910, 오클랜드 미술관



<고귀한 종족의 고귀한 유물 (The Noble Relic of a Noble Race)>은 마오리 원주민 노인의 깊은 주름과 사색적인 표정을 세밀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마오리 원주민이 겪어온 역사적 변화와 문화적 소멸에 대한 은유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림 속 노인의 눈빛에는 세월이 담겨 있으며, 그의 존재 자체가 마오리 문화의 고귀한 유산임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마오리족에게 있어 문신은 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바라보면서 한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이 얼굴의 주름과 표정 속에 얼마나 깊이 새겨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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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Masochistic Instrument>, 1934, 오클랜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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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Fantin Latour, <Roses>, 1875, 오클랜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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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티소, <The holiday>, 1874-1875, 오클랜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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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The Road(The Old Wall)>, 1875-1876, 오클랜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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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뒤랭, <Estaque Landscape>, 1906, 오클랜드 미술관






저녁 시간, 극장에선 마오리 원주민들의 전통 춤 공연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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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를 지나 다음날에는 베이 오브 아일랜즈에 도착했습니다. 베이 오브 아일랜즈는 144개의 크고 작은 섬들과 숨겨진 무수한 아름다운 자연의 해변들이 가득한 곳으로 주로 뉴질랜드 현지인들과 영국, 캐나다 미국 같은 영어권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하고 아름다운 관광지이자 뉴질랜드 초기 이민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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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오래전부터 파이히아(Paihia)와 인근 와이탕이(Waitangi) 주변에는 마오리 정착촌이 있었습니다. 1769년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이 지역을 방문하여 베이 오브 아일랜즈(Bay of Islands)에 현재의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1823년에 선교사들이 파이히아에 도착하여 뉴질랜드 최초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파이히아(Paihia)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에 대한 유명한(그러나 입증되지 않은) 이야기는 선교사 헨리 윌리엄스(Henry Williams) 목사가 마오리어로 '파이'(좋은)라는 단어를 몇 개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 장소에 도착했을 때 가이드에게 '여기 파이'라고 말했고 그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하는군요. 1835년 윌리엄스는 마오리어 성경을 인쇄하기 위해 뉴질랜드 최초의 인쇄기를 설치했습니다. 몇 년 후인 1840년에는 와이탕이 조약의 사본을 인쇄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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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이후 파이히아의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포경업과 카우리 목재 산업이 계속해서 성장했습니다. 1930년대가 되어서야 미국의 소설가이자 열정적인 낚시꾼인 제인 그레이(Zane Gray)는 베이 오브 아일랜즈를 낚시의 중심지로 유명하게 만들었고, 전 세계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은 카와카와와 파이히아 사이에 도로를 건설하여 그곳으로의 여행을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호텔, 휴가 캠프, 해변 주택이 여행객들의 방문을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원시 자연과 마오리 문화가 그대로 배어있는 뉴질랜드 북섬 최고의 휴양지.

뉴질랜드의 한려수도인, 베이 오브 아일랜즈(Bay of Islands).

뉴질랜드 최북단에 위치한 이곳은 많은 섬과 파이히아(Paihia), 와이탕이(Waitangi), 러셀(Russel), 케리케리(Kerikeri) 네 도시를 묶어서 일컫습니다. 수많은 섬들이 코발트 빛 바다에 떠 있는 풍경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수상 활동은 이곳을 뉴질랜드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144개의 섬이 있는 베이 오브 아일랜즈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파이히아(Paihia)입니다. 베이 오브 아일랜즈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해변을 끼고 늘어선 호텔들과 쇼핑센터, 음식점들이 늘어선 다운타운을 한 바퀴 도는 데 느린 걸음으로도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만 같은 작은 도시입니다. 베이 오브 아일랜즈 일대는 뉴질랜드의 최북단인 만큼 가장 수온이 높아 돌고래가 이동하는 경로여서 돌고래 크루즈가 인기입니다. 크루즈에서 판매하는 기항지 관광에도 돌고래 보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지 투어 회사들도 낚시, 세일링, 섬 일주 등의 투어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베이 오브 아일랜즈엔 비수기도, 겨울도 없습니다. 서브 트로피컬 지역이라 아무리 추워도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는, 1년 내내 방문하기 좋은 곳으로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겨울이지만 어떤 사람은 바닷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파이히아의 해변길을 산책하며 뉴질랜드의 자연이 주는 평온함을 만끽했습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파이히아에서는 뉴질랜드의 역사와 자연을, 오클랜드에서는 현대적인 도시와 경제 발전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뉴질랜드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때 더욱 깊이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는 곳임을 깨닫게 되었지요. 이 여정을 통해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고, 자연과 도시,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곳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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