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자
책상 앞에 꼿꼿이 앉아 있는
딸아이 시선이 먼 데 가 있다
아직도 근무 중인가 독서대에 세워진 책을 투과하여
벽을 째려보는 것 같다
열린 문틈으로 가만히 들여다봐도
서울에서 온 달마는 미동도 없다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가 물을 개의치 않듯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가 허공을 문제 삼지 않듯
한국사와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를 편집하고 교정하고, 문제를 만드는 선생들과
상사와 상사의 상사에 둘러싸여, 이미 나왔던 문제와 아직 안 나온 문제, 적당히
풀지 못할 역사의 문제와 문제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던 딸은 시방 면벽(面壁)
수행 중, 무한대(∞)를 눕혀놓은 듯한 8년 8개월, 문제만 만들다 어느 날 갑자기
문제를 때려치웠다
텅 빈 벽,
벽관(壁觀)을 마친 달마가 벽을 향해 모로 누웠다
이불에 친친 감긴 그는 와선 중
방문 반쯤 열어두고 창문도 활짝 열어둔 채
지붕 아래선 갓 깨어난 참새 새끼 삐악대는 소리
꾸욱꾸욱 방점 찍어 산비둘기 울고 간 뒤
새끼 없는 뻐꾹새도 이따금씩 울어대는데
아무 소리가 없다 시계를 벗어던진 딸아이는
아무래도 나보다 한 수 위
시간을 공처럼 굴리며 노시는가
--안희연, 황인찬 엮음, <이간 다만 사랑의 습관>, 2024, 창비시선 500 기념시선집 중에서,
천안 광덕에서 농사짓고 시 짓는 김해자 시인은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조립공, 미싱사, 학원 강사, 학습지 배달 등 여러 일을 하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시를 썼습니다.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하여 마흔 살 늦깎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 『무화과는 없다』 『집에 가자』 『해자네 점집』 『니들의 시간』 , 산문집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등을 펴냈으며, 만해문학상, 구상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백석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가난한 영혼이 고통을 받는 모든 곳에 김해자의 시가 있다”(문동만, 『축제』 추천사)라는 추천사를 받은 김해자 시인의 시는 쓸쓸하고 외롭고 가녀린 영혼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의 노래라고 출판사는 전합니다.
이 시집을 엮은 안희연 시인은 “김해자의 시는 아프다. 그는 한 손에는 현미경을, 다른 한 손에는 망원경을 들고 세상의 병든 부위만 골라 보겠노라 작정한 사람 같다. 때론 미시적으로 때론 거시적으로 삶과 세계의 비극을 증언하려는 시인의 두 눈은 조용하지만 맹렬히 타오르는 촛불을 닮았다. 시집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숨통을 조여 오는 현실이, 가혹한 매질을 견디는 존재가 보인다. 그러나 그 있음이 무력하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비루하더라도 비천하다고는 끝내 말하지 않는 자존(自尊)이 그의 시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수차례 ‘시간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다. 내 것이 아니라고 너무 쉽게 단정해왔던 세상을 “육독(肉讀)”하는 법을 배웠다. 온몸 온 마음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있어 이곳의 내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이 투쟁의 언어들은 화살처럼 나아간다. 시여, 무엇을 뚫으려는가. “늘 희푸른 말”(「당신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웃었다」)을 향한 시인의 염원이 형형한 사랑으로 빛난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김해자 시인은 ”시는 아무도 말을 가로채지 않는 대화 같다. 글자에 수많은 얼굴이 비치는 종이거울 같기도 하다. 거울 뒤란에서 잠자고 있던 이름들이 불려 나올 때마다 다시 태어나는 종이거울 안에서, 나는 나무이자 벌목꾼이고 사슴이자 사냥꾼이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공습이 이어지고, 세계가 극단적인 비대칭을 향해 폭주하고 있는 지금, 나는 맞아 죽은 자이자 때려눕힌 자이고 독재자이자 야만적인 인류사다. 절망해야 할 이유가 아흔이라면 희망할 근거는 서너 조각에 불과했다. 그래서 썼는지도 모른다. 더듬거리며.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 시절에 시라니? 그래도 썼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가 아닌 것이 떨어져 나가고 바로 너인 것이 내가 될 때까지 “라고 시를 쓰는 이유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김해자 시인의 시 「시간을 공처럼 굴리며」는 한 개인의 삶을 관통하는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서 경험하는 노동, 지침, 해방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특히, 시 속에서 묘사되는 딸아이의 모습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겪는 고된 노동과 그로 인한 내면의 변화, 그리고 궁극적인 해탈의 과정과 맞닿아 있다고 보입니다.
책상 앞에 꼿꼿이 앉아 있는 딸의 시선은 책이 아니라 먼 곳을 향해 있으며 이것은 어떤 깊은 사유 속에 빠져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서울에서 온 달마’라는 표현을 통해, 딸아이의 모습이 달마대사의 면벽 수행과 겹쳐집니다.
세 번째 연에서 ‘이미 나왔던 문제와 아직 안 나온 문제’ 속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결국 ‘문제를 때려치우는’ 결정을 내린 곳은 단순한 직업적 전환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사고와 고민 끝에 내린 자기 해방의 선언으로 읽힙니다.
그녀가 문제를 내려놓은 후, 벽을 향해 모로 눕는 장면은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입니다. ‘벽관(壁觀)을 마친 달마가 벽을 향해 모로 누웠다’는 표현은, 오랜 수행 끝에 도달한 깨달음의 경지를 암시하지요. 여기서 ‘벽관(壁觀)’은 달마대사가 9년 동안 벽을 보고 수행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말로, 깊은 성찰과 수행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이 단순한 좌절이나 절망이 아니라는 점은 곧이어 등장하는 자연의 소리에서 드러납니다. 열린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참새, 산비둘기, 뻐꾹새의 울음소리는 그녀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과거의 시간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그녀는 이제 열린 방문과 창문을 통해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지막 연에서 ‘시계를 벗어던진 딸아이는 아무래도 나보다 한 수 위’라는 화자의 말은, 결국 그녀가 시간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것을 다루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의미합니다. "시간을 공처럼 굴리며 노시는가"라는 마지막 문장은, 이제 그녀가 시간에 쫓기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자기 손 안에서 굴리는 존재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예술은 시대와 장르를 초월하여 공명하는 순간이 있지요.
김해자 시인의 시 「시간을 공처럼 굴리며」와 조선 후기 화가 김명국(金明國, 17세기 활동)의 「달마도(達摩圖)」는 바로 그런 만남을 보여줍니다. 한 편은 현대 시, 다른 한 편은 조선시대 회화이지만, 두 작품 모두 ‘달마’라는 상징을 통해 깊은 사유와 깨달음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김명국, <달마도>, 17세기경, 국립중앙박물관
김명국의 <달마도>는 호탕하고 거침이 없는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 듯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농도와 두께를 달리해서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대담한 생략과 절제, 여백의 미가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달마도’란 중국에서 6세기 무렵 활동한 선종의 초대 조사 달마대사를 그린 선종화입니다. 달마대사는 인도 남쪽 지방 출신답게 눈이 움푹 들어가고 코가 갈고리처럼 생겼으며, 눈썹은 매우 짙고 수염도 수북하게 많습니다. 귀에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다는 특징도 있는데 무엇을 꿰뚫어 보려는 듯 커다란 눈으로 매섭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화가들이 달마대사를 그릴 때는 섬세하고 꼼꼼하게 그리지 않고 먹을 듬뿍 찍어 ‘휙’ 재빨리 그렸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림에 강한 힘을 불어넣고 ‘일체의 허식을 버리라’고 한 달마대사의 정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출처: 우리 문화신문)
정확한 출생과 사망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회화사의 3대 기인 중의 하나인 17세기 인조 때 연담 김명국은, 말술이었던 탓에 이와 관련하여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유작 중에는 취필 醉筆의 흔적이 많고 호를 아예 취옹 醉翁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대담한 필치와 개성적인 화법으로 조선 화단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1636년 조선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을 처음 방문하면서 그의 그림이 알려지고, 1643년에는 일본 측의 간절한 요청으로 조선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두 번째 방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의 그림은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러 온 일본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으며 통신사의 부사로 갔던 김세렴이 쓴 <동명해사록>에는
“ 병자년(1636) 11월 14일
글씨와 그림을 청하는 왜인이 밤낮으로 모여들어 박지영, 조정현, 김명국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였다. 김명국은 울려고까지 하였다”
그림 요청이 너무 쇄도하여 연담은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다고.... 전합니다(유홍준 저, 명작순례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에서)
일본에서는 달마도가 액운을 막아주는 효능, 합격, 출세의 기원 등의 이유로 집집마다 소장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서 필선이 당차고 자신감 있는 김명국의 그림을 원하는 수요가 많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 한류‘의 시초가 아닐까 하는 성급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김해자의 「시간을 공처럼 굴리며」와 김명국의 「달마도」는 각기 다른 시대와 매체 속에서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무엇인가?
노동과 몰입, 그리고 면벽의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
김해자의 시 속 딸은 더 나아가 수행의 과정을 놀이처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김명국의 달마가 거친 필선과 강렬한 응시로 깨달음을 향한 길을 보여줍니다.
두 작품은 모두 시간의 무게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예술이 시대를 넘어 공명하는 방식을 잘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