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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 위에서 떨다

by 윤재

26. 직선과 곡선의 긴장



<직선 위에서 떨다>

이영광


고운사 가는 길

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

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이다


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

이 먼 곳까지

꼿꼿이 물러나와

물 불어 계곡 험한 날

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

엎드려 받아주고 있다


문득, 발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신경림 외 지음,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창비시선 500 특별시선집



이영광(1965~ ) 시인은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노작문학상, 지훈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시인은 삶에서 일어나는 파문에 정직하게 괴로워하는 시를 써왔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양경언 평론가는 “오직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생과 겨뤄보고자 하는 이의 고아한 악력이 고스란히 시로 남았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그걸 먼저 하고, 그런 먼저의 시간이 시의 다른 문을 연다. 시인이란 말의 끝없는 의미는 이럴 때 새겨질 것이다.”라고 그의 시를 말합니다.



이영광 시인의 시 <직선 위에서 떨다>를 읽고 나니, 마치 내가 그 외나무다리를 직접 건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시인은 직선을 “수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 번 정해지면 되돌릴 수 없는 길, 마치 우리의 삶처럼... 그렇게 말합니다.


“직선"은 수정할 수 없는 운명적 길, 혹은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플라톤이나 데카르트가 말한 논리적이고 명확한 질서, 공자가 강조한 윤리적 도리처럼, 인간이 걸어야 하는 어떤 정해진 길을 상징한다면, 이 길은 분명하고 목표 지향적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단호하고 엄격합니다.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 가던 길이 떠오릅니다. 장마철이면 불어난 계곡물 위에 덩그러니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했지요. 다리는 삐걱거렸고, 아래로는 황토색 물살이 출렁였습니다. 지금이야 집 앞마당까지 차를 타고 들어가지만, 저 어릴 적에는 버스에서 내려 먼 길을 걸어가야만 했었지요.


이영광 시인의 시 "직선 위에서 떨다"는 삶의 길을 외나무다리에 비유하며, 인간이 마주하는 불안과 결단, 그리고 그 길을 지나가는 과정에서의 떨림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시 속에서 외나무다리는 "수정할 수 없는 직선"으로 묘사되며, 이는 인생의 불가역성과 운명의 필연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의 두 번째 연에서는 이 길이 단호하지만 무정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 엎드려 받아준다"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은 삶의 상처를 포용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 길이 단순히 두려움과 위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나고 나면 따뜻한 위로와 받아들임이 기다리고 있음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라는 구절에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크고 작은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다리를 건너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단호하게 뻗어 있지만, 그 위를 걷는 우리의 마음은 늘 흔들립니다. 직선 위에서조차 우리는 곡선을 그리며 떨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이 방향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만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닌가 하여 두렵고 막막하고 떨렸다는 - 긴 무명의 시간을 거쳐온 - 한 가수가 전하는 말이 울림이 깊었습니다. 그는 20대의 자신에게 ‘길게 걸릴 것이라고, 초조해하지 말라’고 울먹이며 전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 삶도 많은 외나무다리를 건너온 것 같습니다. 진로를 결정할 때, 낯선 도시로 떠날 때, 사랑을 시작할 때, 그리고 끝낼 때. 그때마다 나는 단호한 길 위에서 망설이고, 흔들리고, 두려워했지요. 하지만 떨리는 몸으로라도 한 발 내딛지 않으면, 반대편으로 갈 수 없습니다. 외나무다리는 단순히 길을 건너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내면적 갈등과 불안이 투영된 상징적인 공간으로 이해됩니다. 때로 삶 속에서 흔들리고 떨지만, 결국에는 그 길을 건너야만 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의 마지막 구절이 깊이 와닿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직선 위에서 흔들리는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니겠지요.

많은 이들이 같은 길 위에서 떨며 지나갔고, 그리고 내일도 또 누군가가 이 길을 건널 것입니다.



이영광 시인의 직선이 곧고 단호한 길을 의미한다면, 구스타브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건축가, 환경운동가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는 직선을 거부하고 곡선을 강조했지요.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을 "인간적이지 않은 선"이라 부르며 자연의 유기적인 형태를 반영하는 곡선을 옹호했습니다. 우리나라 제주 우도에도 훈데르트바서를 테마로 하는 훈데르트바서파크가 있습니다. 이영광 시인의 시에서 직선이 주는 긴장과 떨림이 강조된다면, 훈데르트 바서의 곡선은 조화와 유연함을 상징합니다. 만일 직선이 목표 지향적이고 필연적이라면, 곡선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것이 될까요.


훈데르트바서는 '색채의 마술사'라 불릴 정도로 색 조합능력이 뛰어났고 전통적인 색 조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대담한 색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특유의 색감을 통해 생명의 다양함과 무한함을 표현하고, 강렬하고 빛나는 색을 선호했고 보색을 함께 쓰는 것을 좋아했지요.


훈데르트바서 그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나선'의 형태로,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돌고 있는 나선은 우리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직선을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하며, "직선은 부도덕하며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본명은 프리드리히 슈토바서(Friedrich Stowasser)지만 후에 ’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물‘이란 뜻의 이름 훈데르트바서로 개명을 했습니다. 그가 설계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쿤스트하우스 빈>,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등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고 있습니다. 주요 회화작품으로는 <대성당 1>, <노란 집들>등이 있습니다.



노란 집들.png

훈데르트 바서, <노란 집들-함께 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픕니다, Yellow Houses- It hurts to wait with Love, if Love is somewhere else>, 1966, 사진 출처: 훈데르트바서코리아



훈데르트바서가 1966년 7월 15일부터 1966년 8월 4일까지 작업한 작품입니다. 다른 시기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상징과 여성의 얼굴이 있습니다. 밝고 화려한 색감으로 가득 차 있지만 작가는 당시 자신이 겪었던 고통의 구체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 역시 태피스트리(1967)와 판화(1971)로 제작되어 다양한 예술 장르에 걸쳐 있는 그의 작품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합니다.


건물의 주 색상이 주는 따뜻함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랑에 대한 실망의 슬픔을 담은 작품으로 보입니다. 세 채의 건물 주변을 배경으로 채도를 이용하여 대비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사랑이 다른 곳에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기다리는 것은 괴로운 일”이라는 설명을 통해 효과적으로 관객을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묘한 문학적 힘까지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화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노란 집에서 자신의 슬픔이 크게 강조되었고, 창문마다 흘러내리는 푸른 물방울은 사랑을 잃은 후의 눈물을 상징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눈물을 통해 슬픔을 공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붉은 탑은 그녀가 살았던 곳 근처인 비엔나의 웨스트 기차역에 위치해 있다고 훈데르트바서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아마 이 당시 그는 불행한 사랑에 빠져있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의 이 그림을 보면서 훈데르트바서의 비극적인 가족 배경을 읽는 것 같아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으로 훈데르트바서의 외할머니와 친척 69명이 몰살당하고, 그와 어머니가 유대인 구역인 게토로 강제 이주당한 성장 과정의 가슴 아픈 상실의 기억이 투사된 것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201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 훈데르트바서 한국특별전‘이 전시되었습니다. 당시 독창적이고 친환경적인 작품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건축물 블루마우.png

건축물 <로그너 바트블루마우 리조트>



블루마우 .png

<로그너 바트블루마우 리조트>


로그너 바드 블루마우.png

<로그너 바트블루마우 리조트>


사진 출처: 블루마우 홈 페이지





Kunst house.png

사진 출처: KUNST HAUS WIEN(Museum Hundertwasser) 홈 페이지





훈데르트바서의 곡선적 사고에 따르면, 인생은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인생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보여주지요.

이영광 시인의 시와 훈데르트 바서의 예술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삶은 직선처럼 단호한가, 아니면 곡선처럼 유연한가?

어쩌면 우리는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받아들이면서, 때로는 직선을 걷고 때로는 곡선 속에서 흘러가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삶은 직선과 곡선의 긴장 속에서 존재합니다


“혼자 꿈을 꾸면 꿈에 그치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다”

“당신은 자연에 초대된 손님입니다. 자연에 예의를 갖추십시오” --- 훈데르트바서



시인은 말합니다.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습니다.

저도 한 걸음 더 내딛어야겠습니다.

두려움에 떨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떨리는 발걸음으로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마음과 응원을 말을 전해야겠습니다.

어차피 직선 위에서도 우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름다운 하모니로 60년대 ~ 70년대 최고의 듀오로 환호를 받았던

사이먼과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노래 "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들으며

오늘을 채워갑니다.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

When tears are in your eyes

I will dry them all

I'm on your side

When times get rough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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