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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명예라니.........

by 윤재

36. 잃어버린 명예



1980년 알란 파커 감독이 만든 영화 <Fame>은 뉴욕예술학교를 무대로 젊은이들의 꿈과 노력, 좌절과 희망을 그린 영화로 아이린 카라(Irene Cara, 1959~2022)는 연기와 주제가를 불렀습니다.




Fame.png



Fame의 가사를 들여다볼까요,

Baby, look at me

And tell me what do you see?

You ain’t seen the best of me yet

Give me time, I’ll make you forget the rest


I’ve got more in me,

And you can set it free

I can catch the moon in my hand

Don’t you know who I am?

Remember my name


Fame

I’m gonna learn how to fly high

I feel it coming together

People will see me and cry


Fame

I’m gonna make it heaven

Light up the sky like a flame


Fame

I’m gonna live forever

Baby, remember my name


Remember, remember, remember..............





반복적인 기억 하라(remember) 멜로디는 경쾌하고 열정적입니다.

마치 기억 안 해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많이 들어보신 노래일 거예요.


노랫말은 명성을 얻어 역사 속에 남고 싶다고 하면서, 자신을 다 보여준 것이 아니니

시간을 주고, 믿고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손에 달도 쥘 수 있다고

내 이름을 부디 기억해 달라고.

영화는 음악적 재능으로 성공과 명성을 얻고 싶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원하던 성공과 명성을 얻었을까요?

그래서 행복했을까요?


누군가의 말인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유명해지기보다는 유용해져라 “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유용이 우선이어야 할 세상에 무용한 것들이 넘칩니다.

그래서 쓸쓸하고 외면하고 싶고,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유명해지는 것이 성공의 잣대일까요?


우리는 종종 유명한 사람들을 동경하며 그들의 화려한 삶을 부러워합니다. 안타깝게도, 명성을 얻은 후에도 불안과 외로움,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명성은 결국 타인의 인정에서 비롯됩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고, 칭찬해 주고, 주목해 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외부의 인정은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사람들은 금세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끝없는 인정 욕구에 시달리며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반면, 유용한 사람은 다릅니다.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면의 가치로 스스로를 채우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세상에 기여하며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충만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유용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명성은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지만, 유용함은 누군가의 삶 속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반복되는 노랫말의 remember, remember, remember.... 가 귓가에 맴돕니다.

기억하라는 기대와 요청이, 듣다 보면 부담이 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명성(Fame)과 혼동되는 것이 명예(Honor) 일 것입니다. 이 둘은 비슷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외부의 인정에서 부여되는 명성은 종종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 의해 형성됩니다. 반면 명예는 개인의 도덕성과 신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내면의 가치를 지킨다는 점에서 명예와 명성은 차별화됩니다. 명예(Honor)는 마음속에 저절로 새겨지는 자의식 같은 것으로 의도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습니다. 명예와 명성을 혼동하다 보면 수치심이나 죄의식이 자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관용도 없으니 '좋아 빠르게 가는 거야'라면서 선동하기도 합니다.

무용한 사람들의 폭력적인 명성과 책임감 없는 권력 행사에 괴로움이 큽니다.




최근에 다시, 주인공 블룸의 살인은 보이는 폭력이지만, 언론의 인격 살인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는 주제의 책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었습니다. 책의 부제는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입니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png


저자인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1917~1985)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나치군에 징집되어 6년간 프랑스, 소련, 헝가리 등 여러 전선에서 복무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 쾰른에 정착했습니다. 군 복무 중 “히틀러를 위해 죽을 수는 없다”라며 수차례 탈영한 경험을 통해 “어떤 사람도 무의미한 승리를 위해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깨닫고 한평생 사회적인 약자의 편에 섰던 작가입니다.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를 넘어, 행동하는 지성이자 ‘국가의 양심’이라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하인리히 뵐은 이 책에서 언론의 책임과 그 위험성을 강조하며, 특히 선정적이고 왜곡된 보도가 한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의 모델은 당시 독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언론의 피해자인 페터 브뤼크너교수라고 합니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언론의 보도로 교수직에서 해임되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명예를 빼앗긴 인물로 나중에 무혐의 판결을 받고 복직했지만 이미 그의 명예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성실하고 정직한 젊은 여자가 신문기자를 사살한 사건을 분석하고 있는데, 당대 독일인의 가치관뿐만 아니라 현대 언론의 윤리까지 공격한 작품으로 대단한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언론과 대중의 여론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카타리나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로 인해 명성이 실추되었지만, 그녀의 내면적 명예는 끝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명예가 단순한 사회적 평가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본질적인 요소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 지도자들에게 명예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는 단순히 인기나 명성을 좇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신념과 책임을 바탕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대중의 관심과 언론 보도로 인해 명성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명예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는 자신의 행동이 사회 전체에 미칠 영향을 깊이 고려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도덕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언론과 SNS를 통해 명성이 손쉽게 형성되고, 동시에 빠르게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순간적인 인기와 여론에 휩쓸려 원칙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이익이나 대중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공공의 이익과 정의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명예로운 지도자는 단순한 인기인이 아니라,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명성이 얻는 것이라면 명예는 지키는 것이다(Fame is something which must be won;honor is something which must not be lost).”라며 ”명성을 잃는 것은 이름을 잊는 소극적인 것이지만, 명예를 잃는 것은 치욕적이며 적극적인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회가 보다 정의롭고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고, 책임 있는 행동을 실천해야 하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뉴스를 보는 것이 괴롭지 않아야 하는 사회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카지노에는 거울, 시계, 창문이 없다고 하지요.

시간 경과를 가늠할 수 없고, 외부와의 소통을 막고, 눈은 충혈되고 모습은 초췌한 자신을 비춰볼 수 없게 하여 가능하면 긴 시간을 카지노에 있게 하려는 마케팅 전략이라고도 하지요.



신해철 님이 부른 노래 중 ‘내일로 가는 문 Part1 “의 가사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는 것은

내 마음 때문일까 거울 때문일까....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거울 속에는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명예를 지키는 자는...... 거울 속의 자신과 직면하는 것이

두렵지 않겠지요. 자신을 제어(制御) 하기 위한 내면의 근력뿐만 아니라 유해하거나 무용한 환경이나 상황에 놓이지 않는 판단력과 결단력이 명예를 지키는 방법의 하나이겠지요.



사진기가 없었던 시절, 존경하는 스승, 그리운 부모, 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진(御眞), 자신의 모습을 남기기 위한 방법으로 초상화 또는 자화상을 그렸지요.

<윤두서 자화상>을 ”윤두서 자신이 평생 쌓은 학문적·예술적 성취와 자신감의 근원을 자화상에 담아내고자 했으며, 자신의 머리(얼굴)에서 기가 발산되는 듯한 모습으로 수염을 표현함으로써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라고 이성훈은 그의 저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형형하면서 우리를 직시하고 있는 강렬한 눈빛은 ’나 이런 사람이야‘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긍심과 고결한 명예가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그림이지요.


<강세황 자화상>은 그의 나이 70세 때 그린 것으로, 내면 의식이 강하게 드러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림의 상단에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수염과 눈썹이 하얗구나. 오사모를 쓰고 양복을 걸쳤으니 마음은 산림에 있으면서 조정에 이름이 올랐음을 알겠도다. 가슴에는 만 권의 서적을 간직하였고 필력은 오악을 흔드니 세상 사람이야 어찌 알리. 나 혼자 즐기노라. 옹의 나이는 70이요, 호는 노 죽이라. 화상을 스스로 그리고, 화찬을 스스로 쓰네. 임인년(1782)”라고 적혀 있어, 강세황의 강한 자아와 해학이 전해집니다. 지식과 예술적 재능에 대한 자부심을 담은 글이 과장이나 허황됨이 없이 당당하게 다가옵니다.

타인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혼자 자율성을 지키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긍지와 즐거움!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일차적인 준거인 얼굴은 내면과 심리 상태를 반영합니다.




강세황 초상.png

강세황, <자화상>, 1782,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590호)




부와 명예를 누린 진주강씨 가문에서 늦둥이로 태어난 강세황은 정선의 화풍을 이었고 다른 화가들을 후원하기도 했으며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사람의 그림을 평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문인 출신이지만 글씨와 서화에 능해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등의 한국화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강세황에게 7세 때부터 가르침을 받은 제자인 김홍도도 농담에 능했고 음악부터 시문서화(時文書畫)를 두루 설렵한 것이 스승인 강세황의 지도와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명예라는 말은 의무를 뜻한다.’ 고도하지요.


파렴치한 명예가 아니라, 야비한 명성이 아니라, 고고하며 자긍심이 내포된 명예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강건하고 넓으며, 정의를 사랑하고, 남을 겸손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명예가 존중되는 아름다운 동네에서 살고 싶습니다.

명성을 탐하고 궤변과 거짓 신념으로 염치없이 표리 부동하는 자들의 거짓 명예가 더 이상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공명한 동네이면 좋겠습니다.

명성과 명예보다 가슴에 만 권의 서적을 간직한- 진정 유용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 꽃보다 아름다운, 그런 동네를 그립니다.



가능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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