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귀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손과 가슴에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럼 밥은? 애들은?
가슴에 화상을 입었다는데 밥이 문제니?
애가 셋에 나이 사십이 넘어 뭔 가슴 타령 손이 급하지
중얼거리는데
병실 창가에 홍매화 두 그루가 예쁘다고
꽃 보려거든 한 번 오라고
친구의 왼쪽 손과 팔의 화상은 깊었다
빨래를 삶다가 펄펄 끓는 들통이 쏟아져 내린 것인데
얼굴에도 크고 작게 물집이 잡혀 있었다
멀쩡한 곳은 가슴밖에 없었다나
그런데 병원 와서 꽃을 보니 가슴이 제일 아프다고
꽃이 저렇게 뜨거운지 처음 알았다고
너무 뜨거워서 가슴에서 자꾸 진물이 흐른다고
홍매화 꽃그늘에 서서 가만히 손을 대 본다
앗 뜨거워, 실은 흠칫 놀랄 만큼 차가왔다
애 셋을 키우느라 손이 너무 차가왔던 거야
이제 붉고 뜨거운 손이 피어날 텐데
그 손으로 빨래만 삶지 말고 친구야
꽃구경 가자
가슴에 피는 꽃 산에 피는 꽃
시절 저 밑바닥에 등 구부리고 피웠던 꽃들 옆으로
우리도 꽃피우러 가자
이제 네 손은 꽃손이잖니
--정귀매, 『퀼트하는 여자』, 예서, 2023 중에서,
정귀매 시인은 오월문학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산행 일기>와 <퀼트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시인은 야생화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으며 우리 산하의 사라져 가는 꽃들을 만났고, 얼마 전부터 양평의 구석진 산골로 터전을 옮겨 야생화를 키우고 수놓으며 촌부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시인의 말에서는,
"빈방이 있다.
빈방은 공간보다는 시간적 개념이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그리움
크고 작은 연민들이
빈방에서 나를 안아주었다.
퀼트, 자수, 야생화
이들은 간혹 시가 되기도 했다
결국 빈방은
시인 동시에 나의 삶, 나였다."라고 전합니다.
시를 쓰게 하는 힘은 '그리움'이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스친 인연에 대한,
경험했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자연과 존재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이 그 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홍매화는 이미 피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바다 건너 저쪽 어느 곳에서는 누군가가 다시 왔습니다.
그가 널뛰듯 매일 정하는 결정과 정책으로 온 세계가 흔들흔들하고,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누군가도 다시 또 온다고 모자를 쓰고, 주먹을 허공에 휘젓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요즘의 날씨 변화를 보면
또 어느 순간
갑자기
홍매화가 우리들 곁에 다시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당치 않은 생각도 해봅니다.
정귀매 시인의 시 <홍매화>는 육체적 고통과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과 회복, 그리고 여성의 삶에 대한 깊은 연민과 따뜻한 위로를 담고 있습니다. 시는 친구가 겪은 사고, 즉 끓는 물에 덴 화상으로 시작되지만, 곧 단순한 신체적 상처를 넘어서는 정서적이고 상징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친구의 손과 가슴, 삶과 마음은 모두 '화상'이라는 상처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습니다만 시인은 그 상처를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치유와 변화의 가능성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육아와 살림에 치여 "손이 너무 차가웠던" 친구는 이제 뜨거운 상처를 입고서야 비로소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시인은 그 뜨거움을 꽃의 뜨거움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홍매화’는 바로 그 상징이지요.
겨울 끝자락, 가장 차가운 계절이 끝나가면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매화처럼, 친구의 삶도 상처 이후 다시금 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시인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인, "그 손으로 빨래만 삶지 말고 친구야 / 꽃구경 가자"라는 문장은 단순한 권유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 존재의 태도, 그리고 여성으로서 자신을 회복하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일상에 갇혀 있던 친구의 삶이 이제 ‘꽃손’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시인의 진심 어린 기도이자 다짐인 것이지요. ‘가슴에 피는 꽃, 산에 피는 꽃, 시절 저 밑바닥에 등 구부리고 피웠던 꽃들’이라는 표현에서는, 그동안 감내해 온 삶의 무게와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생명력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홍매화>는 한 여성의 삶의 단면이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상처는 아프지만, 그 상처를 통해 우리는 다시 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어남은 외롭지 않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 곁에는 함께 꽃을 보러 가자고 손을 내미는 친구가 있으니까요. 이 시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제 네 손은 꽃손이잖니”라고 말하며, 조용하고도 깊은 위로를 건넵니다.
유난히 길고 혼란스러웠던 겨울을 보내야 했던 우리들에게 이 시 <홍매화>가 위로를 보내고 있습니다.
시인의 시가 우리에게 보내는 위로라면 그 위로를 바탕으로 함께 피어나는 사랑의 따스함이 최지윤 화가의 작품 <사랑하놋다 2303>와 만나고 있습니다.
최지윤, <사랑하놋다 2303>, 2023, 작가 소장 (사진 출처: 연합 뉴스)
화면 속 매화와 비둘기는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단 한 번도 언어를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모든 감정을 나눈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이 장면은 단지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화에 대한 간절한 희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계성에 대한 선언으로 다가옵니다.
전통적으로 매화는 고결함과 절개, 그리고 겨울을 이겨낸 생명력을 상징해 왔습니다. 특히 조선의 선비들이 탐매(探梅)를 통해 추구했던 정신적 고양은 한층 무거운 사유의 세계에 가까웠지요. 그러나 작가는 그 세계를 여성 화가의 시선으로 전복하면서, 매화를 찬란한 생명으로, 고립된 자아의 상징이 아닌, 누군가와의 ‘함께 있음’을 전제로 한 꽃으로 다시 피워내고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의 상징적 반대편에 선 존재, 평화의 대변자인 비둘기는 영롱한 보석을 물고 매화를 향해 머리를 들고 있습니다. 서로를 향해 사랑이란, 평화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닐지요?
"함께 바라보는 것,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듯합니다.
혼자 피어난 꽃은 오래가지 못하고, 혼자 나는 새는 쉽게 길을 잃을 수 있겠지요.
“사랑한다”가 아니라 “사랑하놋다”라는 말은, 방언의 느낌을 살려 더욱 정감 있고 진심 어린 말처럼 다가오며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놓아둔 다짐처럼 들립니다. 숫자 ‘2303’은 2023년 3월이라는 시간의 흔적일 수도 있고, 언젠가 오기를 기다리는 미래의 좌표일 수도 있겠지요.
"함께 일 때 피어나는 꽃"
‘꽃의 화가’로 알려진 최지윤(1962~ ) 화가의 감미로운 한 편의 서정시 같은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그림 속에서 꽃과 새의 관계성이 잘 어울려 있습니다. ‘사랑하놋다’는 ‘사랑하는구나’를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인간의 복잡 미묘하고 아름다우며 어려운 감정인 ‘사랑’에 대하여 꽃과 화려한 보석을 품은 새들을 담백하고 절제된 구성으로 만들어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그리게 합니다.
병실 창가에 피어난 홍매화 두 그루.
화상을 입은 친구는 가슴이 제일 아프다고 말하고 있지요.
뜨거운 꽃을 보니, 차가웠던 자신의 손이 아린다고.
정귀매 시인의 시 〈홍매화〉는 상처 입은 여성의 삶에서 피어나는 회복과 연대의 꽃입니다. 이 시에서 홍매화는 단순한 식물이나 계절의 상징이 아니라, 그것은 오래도록 눌려 있던 감정이, 차가워진 손끝과 굳은 마음이 마침내 다시 피워낸 존재의 선언인 것입니다.
“그 손으로 빨래만 삶지 말고 친구야, 꽃구경 가자.”
이 말은 삶을 다시 시작하자는 속삭임이자, 나와 너, 고통을 건너온 사람들이 건넬 수 있는 연대의 문장입니다.
꽃은 결국 혼자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길, 목소리,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지요.
시의 감정은 놀랍도록 닮은 결을 지닌 화가의 그림 속으로 스며듭니다.
시 속 홍매화가 “너무 뜨거워서 가슴에서 자꾸 진물이 흐르는” 고백이라면, 그림 속의 매화는 “그래도 우리는 다시 바라보자”는 위로에 가깝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가슴에 피는 꽃, 산에 피는 꽃, 우리도 꽃피우러 가자.”
그리고 화가는 대답합니다.
“사랑은 혼자 피는 게 아니잖아요, 함께 피어나야 해요.”
<사랑하놋다 2303〉이라는 제목은 정제되지 않은 사투리로, 사랑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보다 더 오래된 말, 더 깊이 묻힌 말.
마치 시 속 친구가 꾹 참고 있다 흘린 눈물 같은 말입니다.
숫자 ‘2303’은 특정한 연월이기도 하고, 어쩌면 누구도 모르게 사랑을 묻어둔 시간의 은닉처이기도 합니다.
최지윤 화가의 매화는 혼자 선 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시와 그림은 하나의 문장을 완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