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길을 바꾸지 않았지만, 그 위를 건너온 나의 마음은 조금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그 외연이 다르게 보일 뿐이다.
우리의 내면이 침묵했을 때, 이 세상은 비로소 그것이 지닌 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 돈 후앙
실존 인물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 인디언 주술사인 돈 후앙(Don Juan)의 언어,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을 페루 출신 미국의 인류학자 카를로스 카스타네다(Carlos Castaneda)는 저서를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돈 후앙은 또 이렇게도 말했다고 카를로스 카스타네다는 전합니다.
“어떤 길이든 마음이 담겨 있는 길로 나는 여행을 한다.
그것만이 이 생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도전이다.”라고도.
이번 세계일주 크루즈 여행이 제 삶에서 유일하게 가치가 있는 도전이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크루즈 이야기도 마무리할 시점입니다. 110일간의 크루즈 기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씩 곱씹으며 그 시간들을 회상하게 되겠지요.
34,000 마일, 6 대륙, 28개국, 41개의 크루즈 기항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 중 첫 번째가 미술관이었고, 각 지역의 특색이 있는 도서관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그전 여행에서는 대학교를 방문하곤 했었는데 은퇴한 지금은 전처럼 대학을 찾지는 않았습니다. 그림을 직접 관람하는 것은 짧은 시간이지만, 깊은 아주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시는 앞을 못 보는 회화, 회화는 밝은 눈을 가진 시다.”라고 그림을 정의했다는군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사상가, 화가, 예술비평가인 존 러스킨은 그림을 통해서 “희미해지는 구름, 떨리는 잎, 변하는 그림자를 붙잡아 놓을 수 있다”라고 하면서 스쳐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보존의 기능으로써도 그림의 특성을 설명했습니다.
출발했던 지점인 시드니에 도착했습니다.
4월 30일 승선에 앞서 여러 날을 시드니에 머물며, 시드니와 근교를 찾았습니다. 호주를 대표하는 활기찬 해변의 도시 시드니에서 우리는 박물관, 미술관, 오페라 하우스, 보태닉 가든, 공원, 천문대, 바닷가 등 쉽게 잊지 못할 다양한 문화 명소를 방문하며 익숙하지 않은 평온 속에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거리는 이국적이고 치안 상태는 안전했습니다.
하이드 파크 아치볼드 분수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오렌지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덴마크 건축가 른 웃손(JØrn Utzon, 1918~2008)의 설계로 14년에 걸친 공사 기간을 거쳐 1973년에 완공.
시드니 뿐만 아니라 호주의 랜드마크로 부드럽게 휘어진 조각의 모양으로 설계
시드니 하버 브리지
퀸 빅토리아 빌딩
긴 여정을 마치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지금, 이 귀환은 단순한 종착이 아니라, 삶의 궤적 위에 새겨진 하나의 쉼표처럼 느껴집니다. 그 쉼표 앞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으로 조금 달라졌는가'라고 자문하게 됩니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지금, 그 감정은 단순히 끝맺음이 아니라, 되돌아보는 시간, 마음속에서 또 다른 출발을 준비하게 만드는 깊은 여운으로 다가옵니다.
시드니 미술관에서 만난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은 단지 어머니의 형상을 넘어, 인간 존재를 지탱하는 관계의 거미줄과도 같았습니다. 삶은 늘 보이지 않는 실로 얽혀 있고, 그 실은 우리를 기억 속으로, 타인 곁으로,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이끕니다. 나를 지켜준 관계들, 나를 흔든 기억들, 나를 일으킨 순간들이 그 실 한 올 한 올에 걸려 있는 듯했습니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조각 <마망>은 존재를 지탱하는 은밀한 힘, 말 없는 연결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브리튼 리비에르의 <Compulsory Education>에 등장하는 소녀와 개는, 우리가 이 여정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질문과 감정의 비유처럼 느껴졌습니다. 스스로를 밀어 넣어야만 하는 어떤 필연적인 배움의 길. 그 길은 낯설고 고요하며, 때로는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의 외연을 조금씩 확장해 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드니 art gallery(뉴사우스 웨일스 주립 미술관)의 정문 앞에는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 2010)의 작품 <마망 Maman>이 특별 전시 중이었습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프랑스 출신의 미국 현대 조각가입니다. 파리에서 태어나 예술가이자 태피스트리 복원가였던 부모 밑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깊은 유대감, 아버지의 외도, 전쟁 등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 모더니즘과 페미니즘, 추상과 상징주의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 왔습니다. 특히 여성의 신체, 기억, 가족, 트라우마, 심리 등을 주제로 한 조각과 설치 작품으로 세계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80세가 넘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2000년대에는 생존 작가로서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루이즈 부르주아, <마망>, 1999, 뉴사우스 웨일스 주립미술관
<마망>은 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으로, 루이즈 부르주아가 어머니를 기리며 제작한 9m에 달하는 대형 청동 조각입니다. 1999년부터 제작되었으며, 거대한 거미의 모습은 어머니의 보호적인 성격과 동시에 복잡한 감정, 여성의 힘, 창조성과 같은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러 점이 제작되었고, 주요 미술관 및 공공장소에 영구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호암미술관에 설치되어 있어 작품의 웅장함과 섬세함을 볼 수 있습니다.
“거미의 다리 아래, 나는 나의 어머니를 본다”
검은 철골 같은 다리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거미의 형태로,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기억과 모성애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미의 배 부분에는 32개의 대리석 알이 들어 있는 알주머니가 있어, 생명과 보호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망>의 첫인상은 불편했고 잠시 침묵했습니다. 너무 크고, 너무 검고, 너무 낯설었습니다. 마치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생물이, 조용히 시간을 지키고 있는 듯한 위압감. 하지만 그 아래에 서자 감정이 서서히 반전됨을 느꼈습니다. 거미 다리의 곡선과 곧음 사이를 지나며, 나는 어릴 적 기억 속 어머니의 손길을 떠올렸습니다. 그 무게감 있는 육중한 존재가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아래에 섰을 때 이상하리만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그것은 기억이자 고백이며, 여성성과 모성애에 대한 시적 선언입니다. <마망>은 어머니라는 존재를 넘어, 삶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그 조형물 앞에서, 긴 항해 동안 내 삶을 짜고 있던 보이지 않는 실들—사람들과의 만남, 기억, 관계—을 떠올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거미는 호의적이기보다 거리 두고 싶은 존재이지만, 루이즈에게 거미는 다른 의미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태피스트리 복원가로 섬세하게 실을 다루고, 무엇보다 자식들을 보호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거미는 실을 뽑고, 자신의 공간을 짓고, 생명을 잉태하며, 그 어떤 동물보다도 독립적입니다. 즉, <마망>은 단순히 ‘엄마’가 아니라 ‘여성’의 총체적인 상징이자, 그 힘과 연약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조형물입니다.
강인하고, 날카롭고, 하지만 동시에 섬세하고 끈기 있는 존재.
“어머니는 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작가는 그렇게 말하며, 거미를 헌사하듯 조각했다고 합니다.
이 거미 아래 서 있을 때, 왠지 모르게 보호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날카로운 다리 아래 숨어 있는 듯한 안도감, 그리고 머리 위로 펼쳐지는 어머니의 존재가 나를 덮고 있다는 위로.
동시에, 무의식 속에 숨겨진 두려움, 상처, 그리고 이해받고 싶었던 유년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는 거대한 ‘심리의 거울’ 같았습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미술관의 실내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의 다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브리튼 리비에르의 그림 〈Compulsory Education〉.
브리튼 리비에르의 <Compulsory Education> 속 소녀의 눈빛은, 어쩌면 우리가 이 여행에서 마주한 수많은 낯선 풍경과 순간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닮아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계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 그러나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성장의 통로. 그 그림은 단순한 교육의 의무를 넘어,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내면의 여정’과도 같았습니다.
브리튼 리비에르, 의무교육(compulsory education), 1887, 뉴사우스 웨일스 주립미술관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소녀가 개의 목을 끌어안고 책을 읽고 있습니다. 개는 얌전히 앉아 있지만, 어딘가 슬픔을 담고 있는 듯한 눈빛입니다. 볼 빨간 소녀의 손길은 애정 가득하지만, 그 읽힘이 정말 필요한 건 누구였을까요? 리비에르의 그림은 부드럽고 따뜻한 장면 속에서 어쩌면 ‘교육’이라는 이름의 일방성을 꼬집는 것은 아닐까요.
소녀는 사랑을 담아 순수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지만, 그 시선의 방향과 이해의 속도는, 개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보살핌은 언제나 선한 것일까요?
교육은 항상 정당한 것일까요?
<Maman>이 말하던 모성의 양면성은
<Compulsory Education>에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때때로 강제이고,
보호는 때때로 억압이며,
성장은 때때로 침묵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두 작품은 시대도, 표현 방식도 다르지만 하나의 본질을 마주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보호 아래에서,
또는 누군가의 품 안에서
길러지고, 가르쳐지고, 지켜지며 자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기억의 무늬를 스스로 읽어낼 차례입니다.
강철 같은 다리 아래의 고요함도,
조용히 책을 읽어주던 그 손길도,
내 안의 세계를 만든 문장들이었음을 인정하면서요.
브리튼 리비에르 (Briton Riviere, 1840–1920)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동물화로 특히 유명합니다. 그는 동물의 감정과 인간과의 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며, 그의 작품은 당시 대중과 비평가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리비에르는 예술가 가문에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기본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의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졌습니다. 런던 동물원에서 정기적으로 스케치를 그리며 보낸 시간은 동물에 대한 그의 사랑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리비에르는 20세가 되기 전부터 왕립 아카데미에서 전시를 시작하며, 평생 꾸준히 전시회에 참여했습니다. 리비에르는 런던 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가축과 야생 동물에 대한 그의 깊은 지식은 철저한 해부학적 연구와 해부 관찰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교육과 공감의 따뜻한 시선"
브리튼 리비에르의 <Compulsory Education>은 단순한 교육의 장면을 넘어, 인간과 동물 간의 깊은 교감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품 속 소녀는 책을 읽으며 지식을 전달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개는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듯한 자세로 응답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이해와 공감의 과정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작품은 교육의 강제성에 대한 은유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제목인 <Compulsory Education>은 의무 교육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소녀가 개에게 교육을 '강요'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교육의 본질과 그 방식에 대한 작가의 질문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여행이 끝날 무렵,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이 자리를 잡습니다.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설렘과, 여행 과정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려는 무언의 몸짓.
리비에르의 소녀처럼 누군가는 나를 위해 읽어주었고,
부르주아의 거미처럼 누군가는 나를 품어주었습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낯선 것을 통해 나를 다시 읽기 위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끝냈지만, 그 모든 여정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관과 박물관, 도서관에서의 시간, 각 기항지 명소를 방문하면서 쌓은 시간들.
그 모든 것이 내게 남겨진 궤적이자, 새로운 나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귀환은 멈춤이 아니라 순환이고, 예술은 보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임을.
나는 다시 이 자리에서, 새로운 질문 하나를 꺼냅니다.
“나는 무엇으로 돌아왔는가?”
프랑스의 철학자, 비평가인 이폴리트 텐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여행한다”라는군요. 이 여행을 통해 저는 얼마나 생각이 바뀌었는지 가늠해 봅니다.
그렇게 시드니에서의 <마망>은 ‘연결’의 상징으로, <의무교육>은 ‘깨달음’의 문으로—이 두 작품은 내가 경험한 여정을, 단지 세계를 둘러본 여행이 아닌 ‘내면을 성찰하는 귀환의 여정’으로 정리하게 해 주었습니다.
마무리 글을 준비하며 주저하고 미적거리는 저를 보았습니다. 아마도 문을 닫기 싫어하는 밑마음이 핑게를 찾고, 마무리를 미루게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 긴 항해는 단순히 바다를 건넌 일이 아니라, 마음의 결을 하나하나 만지며, 내면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는 나를 건너온 시간이었습니다. 돈 후앙의 말처럼, 세상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우리가 내면의 소음을 잠시 내려놓았을 때에야 가능하니까요. 귀환이란, 달라진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일, 결국 또 다른 출발임을, 이 여정은 조용히 가르쳐주었습니다. 삶이란 그렇게, 질문과 기억, 관계와 성찰로 이루어진 하나의 커다란 원일지도 모릅니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밀물과 썰물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