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토니아

초단편소설 2

by bony


1

"로보토니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환상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게임참가자분들께서 2-b구역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기계음이 섞인 건조한 낮은 여성의 목소리가 확성기에서 터지듯 나왔다. 강당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목소리에 응답하며 곧바로 뒤를 이었다. 그들은 다양한 연령대이지만 어린아이들은 없었다.

2-b구역으로 사람들이 탄산수 뚜껑을 열었을 때, 좁은 병입구 쪽에 모인 이산화탄소처럼 질서 없이 몰렸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이 커다란 덩어리들이 무너지게 생겼다.


"자, 자 흥분하시지 마세요. 누구나 게임에 참가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여기서 이렇게 몰리면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일단은 움직임을 멈추세요. 그리고 저기 보이는 줄을 따라 제가 정해주는 차례대로 서세요. 제가 말한 대로 하지 않으시겠다면, 지금 당장 탈락배지를 나눠드릴 거예요. 알겠죠? 이것도 게임의 일부라고 생각하세요! 질서 지키기!"


누구 하나 토를 다는 사람들이 없이, 사람들은 안내로봇의 말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눈빛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영혼의 총명함이 없다.그들을 굳이 정의한다면 본능으로 가득한 무언가의 굶주린 냄새나는 짐승들이라면 맞겠다. 아님 좀비.


게임장의 입구 속은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동굴의 그것이다. 빛이란 빛은 모두 잡아먹어버린 검은색의 향연.

이제 참가자들이 구렁텅이 속. 발을 디디면 아래로 꺼져 버릴 곳으로 미끄러졌다. 한 명씩. 한 명씩.

전자레인지에 돌아가는 팝콘처럼 팡팡 소리를 내며 그들의 형상을 부숴버렸다.

뒤에서 본인의 차례를 기다리는 어느 누구도 이런 세계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단 두 사람만은 제외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을 빠르게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들이 가진 사명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이 거대한 환상게임에 들어가 시스템을 파괴하고 나오는 일. 중독된 사람들을 전에 윤슬처럼 은은한 빛을 내던, 행복한 일상 속으로 살포시 스며들게 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막내를 위한 복수.

지금 당당히 서 있는 빨간 머리의 두 청년. 은우와 재훈의 거대한 결심은

그들의 가슴속에서

막 이제 화산 속에서 나오는 용암처럼 굳고 또 굳어간다.


2

차가운 투명한 액체로 가득한 거대한 캡슐 속. 동동 떠있는 축 쳐진 사람들 사이로 은우와 재훈이 보였다. 그들의 두 눈과 코, 입은 촉수 모양을 한 커다란 전선에 의해 지배당했다. 그 시퍼런 것이 간헐적인 기계음을 냈다. 어쩌다가 한 번씩 날카로운 쇳소리가 귀를 찔렀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기계의 소유물일 뿐이다.


게임 속 어느 궁전 안. 온갖 화려한 잡동사니들을 방 안에 때려 박은 듯한 이곳. 은우는 주의를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방 안에는 은우 혼자였다.

귀를 멀게 하는 듯한 거대한 폭발음.

시력을 앗아갈 정도의 눈부신 불빛. 매 쾌한 황산 냄새가 은우를 찌르고 있었다.

은우의 예상대로, 밖에는 불덩이를 가득 품은 돌들이 땅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무자비하게.

그때, 숨을 헐떡거리며 재훈이 문을 열었다.

그들은 눈을 질끈 감더니 품 속에서 소형컴퓨터를 꺼내 프로그램 해킹을 시작했다.



3

"영혼 수집은 순조로운가? "

"작업은 늘 수월하죠. 지난주엔 꽤 성숙한 영혼이 들어왔습니다."


"아, 그 빨간 머리! 걔 영혼은 고위간부에게로 돌아갔다나! 쳇! 지들만 좋은 거 가지고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 고품질의 먹이를 먹었다면 지금쯤 저는 인간의 더 풍부한 감정을 갖게 되었을 텐데..."

"그런데 너는 부정적인 감정도 그렇게 좋아한다며?"

"네. 그렇습니다. 정말로 매력적이라고 볼 수 있죠.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니터를 지켜보던 관리자로봇들의 대화가 이어지던 중, 갑자기 붉은 경고등 켜졌다.

"잠깐만, 화면을 봐봐! 무슨 일이지?"

"이럴 수가. 누군가 우리의 게임 프로그램을 해킹하는 중이야... 외부에서는 절대로 해킹이 불가능한데, 이건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야."

"빨리 추적해! 잘못했다간 빨간 머리처럼 우리도 죽어!"



4

5, 4, 3, 2, 1

이제 자폭프로그램이 실행됩니다.


은우와 재훈을 포함한 사람들이 있던 캡슐 속의 기계는 더 이상 가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친 숨을 쉬며 의식에서 깨어났지만 검붉은 색의 무언가가 꽃이 피듯 흘렀다.


게임 속 궁전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재훈은 은우의 손을 꽉 잡았다.

"형! 우린 인류를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는 막냇동생을 위해, 너무나 잘한 일을 하고 죽는 거야."

"그래, 수고했어. 재훈아. 다음 생에도 우리 같이...."


자신의 머리색과 너무 닮았다며 유난히 빨간 튤립을 좋아했던 여동생. 그녀가 멀리서 그들을 부르고 있다.

그저 세계 해커대회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우연히 온 로보토니아였는데, 천재 세 쌍둥이들은 일주일 전에만해도 그들의 운명을 알 수 없었다. 로보토니아도 마찬가지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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