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초단편소설 3

by bony


아파트 창밖을 바라보다 익숙한 뒷모습을 보았다. 붕 뜬 단발머리에 군인 같은 발걸음.

반듯하게 다려 입은 셔츠가 경직되어 보였다. 고집스러운 독특한 스타일은 저 멀리서도 그녀임을 알게 했다.

재단가위처럼 벌어지는 그녀의 다리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4년 전, 우린 자주 만났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지훈엄마, 학부모 상담 갔다 왔어요? 혹시 학습능력검사 결과 보여줬나요?"

"뭐, 저번주에 갔다 왔는데, 전반적으로 보통상이네요."

"우리 애는 영재급으로 나왔는데, 담임선생님이 웅인이가 수학에 특히 재능이 있다면서 특목고를 추천하더라고요. 뭐, 시험만 보면 만점이니 당연한 결과지만요. 엘리트학원에서 그 어려운 수학, 과학시험도 모두 만점이에요."

"네에? 정말요?"

"내 말이 거짓말 같아요? 한 번 보실래요? 여기. 성적표."

내 두 눈은 휭둥그레 해졌고, 그녀는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아래로 쳐다보았다.


그 뒤로 그녀를 만날 때면 여전히 그녀는 입을 열기도 무섭게 웅인이의 자랑을 했다.

웅인이는 한 마디로 못하는 게 없는 아이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말하는 앵무새처럼 "좋으시겠어요. 웅인이가 최고예요!"를 남발했다.

그럼 그녀는 콧대를 더욱 높이 세우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입가의 번지는 승리감에 도취된 희미한 미소. 난 고개를 돌렸다.

이런 관계가 계속되었다.

지훈이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웅인이와 노는 것을 참 좋아했다. 둘은 여러모로 닮은 꼴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키가 좀 커지자, 지훈와 웅인이는 같은 농구교실을 다녔다.

어느 날, 난 혼자 농구교실을 참관하러 갔다.

그리고 뜻밖의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웅인이는 농구코치선생님께 혼이 나고 있었다.

"야! 너는 병신이냐? 이것도 못하고.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듣네. 아휴. 내가 너 때문에 암에 걸리겠다! 얘들아!

이제부터 웅인이의 별명은 신병이다. 알았지?"

웅인이는 속도 없는지 웃고만 있었다.

나는 바로 다음날,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녀의 눈빛이 바로 달라졌다.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살기가 느껴졌다.

드라마의 빌런의 표독스러운 표정.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살인마를 재판하는 판사처럼 날 대하기 시작했다.

"우리 애는 다 잘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뭐든지 잘한다고! 피아노대회에서 대상,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 대상, 렉사일 1200이라고! 지금 질투 나서 해대는 말이야! 뚫린 입이라고 짓거리기는 왜 짓거려!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


시간이 지나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화상수업이 시작되었다.

그후로 그녀를 지나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웅인이가 다니는 학원의 개수는 점점 늘어났다고 했다.

늦은 밤, 소화제를 사러 가다가 마스크를 쓴 웅인이를 보았다.

웅인이는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고개를 푹 숙이며 걸어갔다.

웅인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무언가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웅인이는 십 초 간격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고장 난 신호등처럼.

"안녕하세요?" 단물 빠진 풍선껌 같은 소리.

"어. 잘 지냈니?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구나! 힘들겠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


며칠 후 준수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얘기 들었어? 웅인이가 화상으로 하는 학부모 참관수업에서 눈을 심하게 깜빡거리고 욕을 몇 초간격으로 심하게 했대. 지금 난리가 났어.

난 그럴 줄 알았어. 그거알아?

우리 준수가 그러는데 웅인이는 백점을 못 맞으면 틀린 갯수대로 맞았대."

나는 한동안 멍했다. 그리고 그렇게

심난했던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소아신경정신과 김용식 교수님 진료실 안.

"좀 어때? 요새 기분은?"

"그냥 그래요."

"어머님이 보시기에는 어떠신 것 같아요?"

"아, 네. 헛기침은 이제 아예 안하고요. 감정조절이 전보다는 나아졌어요. 그런데 벌써 약 먹은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 언제쯤 단약 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으니 다음 주에는 ADHD검사를 다시 한번 해볼까요. 지훈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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