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치며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을 만났다. 성실하고 예의바른 학생들이 있는 반면, 속칭 '금쪽이'라 부르는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학생들도 있었다.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 하고, 숙제는 언감생심, 교재도 챙겨오지 않은 채 교실에서 쿨쿵대며 잠만 자는 학생들 말이다.
대학교 어학당이라는 공간에서 나는 교사로서의 권위와 친절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학기, 유독 내 마음을 흔들어놓은 한 학생 때문이었다.
그 학생은 수업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마치 스위치를 켠 듯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핸드폰 요금고지서를 들고, 때로는 공과금 고지서를, 어떤 날은 쓰레기 분리수거 위반 벌금 통지서를 들고 나타났다. 민원의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처음에는 한국어 교사 특유의 친절함을 무장한 채 기꺼이 도와주었다. 한국 생활이 서툰 외국인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민원들이 점점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수업에는 집중하지 않으면서 개인적인 일만 해달라고 하는 것이 불편했다.
나는 점점 그의 민원을 피하기 시작했다. "다음 시간에 복사할 게 있어서..." "다른 학생이 질문이 있대서..." 온갖 핑계를 대며 그의 부탁을 소홀히 했다. 내 안에 쌓인 불만이 작은 거짓말들로 표출되고 있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다른 반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동료 교사들이 나에게 "왜 네 반 학생을 내가 도와줘야 하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점점 더 난처해졌다. 그리고 그 학생이 점점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그 학생은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나는 수업을 진행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자고 있네. 학비가 아깝지도 않나?' 그때 갑자기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것도 아주 큰 소리로.
다른 학생들이 놀라서 쳐다보는 가운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19년 동안 쌓인 인내심이 그 순간 바닥났다.
"전화는 나가서 받으세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날카로웠다. 교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학생은 놀란 듯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교실을 뛰쳐나갔다. 나는 당황했지만 수업을 계속 진행해야 했다. 그 학생은 그날 수업에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후,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전화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얼마나 성급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그 학생을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제야 알게 된 그 학생의 진짜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 학생은 집안의 장녀였다. 한국에 유학 온 것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생활비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어 수업은 그나마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 억지로라도 나오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지각과 결석이 잦은 이유도, 숙제를 해오지 못하는 이유도, 수업 시간에 졸 수밖에 없는 이유도 모두 명확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서 몇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학교에 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표면적인 것만 보고 판단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학생이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내 안에 학생을 깔보고 무시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년의 경험이 만들어낸 편견이었다.
교사로서 나는 학생들의 학습 태도만을 보고 그들을 평가했다. 하지만 그 태도 뒤에 숨어있는 각자의 사연과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모든 학생이 같은 환경에서 같은 조건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 일 이후, 그 학생은 여전히 예전과 같다. 여전히 지각과 결석이 잦고, 숙제를 해오지 않는다. 여전히 수업 시간에 졸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학생이 그리 밉지 않다. 대신 나는 그 학생의 맑고 고운 눈을 믿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에 오려면 얼마나 많은 의지가 필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밤을 새우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교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에 와서 비록 배우는 것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고자 하는 마음 하나만은 진실하다고 믿는다. 그 마음이야말로 진짜 배움의 시작이 아닐까?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사람이 가진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금쪽이 학생이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모든 학생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어떤 학생은 부모의 기대를 안고 왔을 것이고, 어떤 학생은 자신의 꿈을 위해 왔을 것이며, 또 어떤 학생은 나의 금쪽이처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왔을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진짜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금쪽이학생과 금쪽이교사는 오늘도 요란시끌벅적하게 같이 가치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