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짜리 보따리장사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며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우리 한국어강사들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여초가 심한 이 작은 세계에서 질투와 눈치, 그리고 끝없는 경쟁은 일상이 되었다. 어디 학교 출신인지, 누구의 제자인지 딱 세다리만 건너면 그 강사의 신상이 훤히 드러나는 좁은 바닥에서, 우리는 때로는 여우가 되고 때로는 곰이 되어 살아간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순둥순둥한 곰돌이푸우 같은 A강사의 목소리에는 깊은 상처가 배어 있었다.
"선생님, 이번 학기 같이 팀티칭하는 선생님은 상여우, 불여시예요. 학생들에게 착한 척만 하고요. 학생들 앞에서 저를 돌려까는 것 같아요. 제 실수를 사무실에다 흘려말한 것 같아요."
매번 당하고 와서 속상하다고 연락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는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더욱 솔직해졌다. "사실은 그 선생님에게 질투했어요. 그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예쁘고 인기도 많고요. 아이돌도 많이 알아서 학생들하고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도 많이 해요. 저는 아이돌도 모르고요. 수업만 하니까요."
자책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나 또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생님을 질투했었다. 예쁘고 다정하고 착하고 외국어도 잘하고 센스 있는 한국어강사들을 보면 의기소침해진다. 거기다 시험문제 출제도 잘하고 채점도 잘하고 논문도 잘 쓰는 학구열 넘치는 강사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어강사들은 진정 팔방미녀에 슈퍼우먼이다. 언제든 뭐든 척척 잘한다. 열악한 환경인 무에서도 유를 척척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날 나는 A강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이렇게 솔직하고 꾸밈없어 좋아요. 용기 있어 좋고요." 내 말에 귀여운 곰돌이 A강사는 코끝을 찡긋했다. "제가 그 맛에 선생님한테 수다 떨러 옵니다."
강사 A의 말처럼, 우리는 아이돌 이름 하나 모르지만 수업 하나는 진심으로 준비한다. 화려한 말솜씨보다는 진심 어린 눈맞춤으로 학생을 대하고, 유창한 영어 한 마디보다는 고운 한국어 한 문장을 전하기 위해 오늘도 교재에 밑줄을 긋는다. 한국어 강사는 결국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다.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삶과 문화를 전하고, 그 속에 우리의 이야기를 담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 뼘씩 성장해가는 우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빛난다. 잘 웃고, 잘 먹고, 잘 듣는 우리들. 수다 한 바가지를 풀고 나서, 떡볶이에 김밥까지 배터지게 먹고 나면 또다시 수업으로 돌아간다. 웃으며 칠판 앞에 서고, 조용히 학생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우리는 다시 선생님이 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다다익선이라고.
질투도, 실수도, 수다도, 웃음도, 밥 한 그릇도, 그리고 한국어 강사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렇게 서로 다른 강사들이 함께 모여, 이 언어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교육의 모습 아닐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많아질수록, 한국어 강사도 많아진다. 다양한 개성, 각자의 방식, 다른 언어의 온도로 가르치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진심을 전하고, 언어를 나누고, 문화를 잇는 사람들.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우리, 한국어 강사다.
그래서 다다익선이다.
우리는 함께일 때, 더 강해진다.
그리고, 더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