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다른 세계에 접속합니다

마리오 편

by 그린버드

퇴근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아직 학생이니까. 하지만 요즘 나는 학교를 '출근'이라고 생각하고, 집에 돌아오는 걸 '퇴근'이라고 부른다. 농담 같지만, 꽤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교복을 입고, 똑같은 길을 걸어 학교에 가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고, 저녁 6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이게 출퇴근이 아니면 뭘까.

그리고 진짜 퇴근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신발을 벗고, 가방을 던지고, 교복을 벗어던지고, 거실이 아닌 내 방으로 직행한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빨간 콘솔을 켠다.

닌텐도 스위치.

그 작은 기계가 켜지는 순간, 나는 비로소 '퇴근'한다. 학생이라는 역할에서, 수험생이라는 무게에서,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기대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다른 세계로 접속한다.


마리오의 세계로


스위치를 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임이 있다.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 이미 엔딩을 본 게임이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이 게임을 켠다. 왜냐하면 마리오의 세계는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기 때문이다.

마리오는 배관공이다. 현실의 직업으로 따지면 그리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일을 하는 사람. 하지만 게임 속 마리오는 다르다. 그는 왕국을 구하고, 공주를 구출하고, 세계를 여행한다. 점프 하나로 세상을 바꾼다. 빨간 모자를 쓴 작은 사람이지만, 그 누구보다 용감하고 씩씩하다.

처음 이 게임을 시작했을 때, 나는 그저 재미있는 게임이라고만 생각했다. 화려한 그래픽, 경쾌한 음악, 다양한 월드. 그런데 게임을 하면 할수록, 마리오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마리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오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적에게 맞아서 죽어도, 절벽에서 떨어져도, 용암에 빠져도, 그는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똑같은 구간을 다시 시도한다. 좌절하지 않는다. 화내지 않는다. 그저 다시 점프할 뿐이다.

나는 그게 부러웠다. 현실에서 나는 한 번 실패하면 오래 끌고 간다. 시험을 망치면 며칠 동안 우울하고, 친구와 다투면 몇 주 동안 신경 쓰이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자책한다. 하지만 마리오는 다르다. 그는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다시 시도할 기회'로 받아들일 뿐이다.


버섯 왕국의 첫날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는 모자의 왕국에서 시작된다. 마리오의 모자가 살아 움직이는 캐피라는 생명체로 변하고, 마리오는 캐피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목적은 하나. 쿠파에게 납치된 피치 공주를 구하는 것.

처음에는 그저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공주 구하기. 클리셰 중의 클리셰. 하지만 게임을 하다 보니, 공주를 구하는 게 목적이라기보다는, 여행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리오는 여러 왕국을 돌아다니며 파워문을 모은다. 각 왕국마다 특색이 있고, 퀘스트가 있고, 숨겨진 비밀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왕국은 뉴 동크 시티다. 현대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스테이지인데, 빌딩 사이를 뛰어다니고, 택시 위를 점프하고, 전신주를 타고 올라가는 게 묘하게 신나다. 특히 페스티벌 장면에서 'Jump Up, Super Star!' 노래가 나올 때는 소름이 돋았다. 마리오가 단순한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하나의 '영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마리오에게도 일상이 있을까? 배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쉬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날들. 하지만 그런 일상을 살다가도, 공주가 납치되면 그는 주저 없이 모험을 떠난다. 평범함과 비범함이 공존하는 삶.

나는 그게 부러웠다. 나도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언젠가 나만의 모험을 떠날 수 있을까? 뉴 동크 시티처럼 화려하지 않더라도,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올까?


점프의 의미


마리오 게임의 핵심은 '점프'다. A버튼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된다. 장애물을 넘고, 적을 밟고, 높은 곳에 도달한다. 간단하지만, 그 타이밍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너무 일찍 누르면 떨어지고, 너무 늦게 누르면 부딪힌다.

어느 날, 나는 특히 어려운 스테이지에 막혀 있었다. 움직이는 발판 위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점프해야 하는 구간이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실패했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짜증이 났다. "이거 왜 이렇게 어려워?"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계속 시도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게 인생이구나.

점프는 타이밍이다. 너무 일찍 뛰어도 안 되고, 너무 늦게 뛰어도 안 된다. 그 순간을 놓치면 떨어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떨어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 마리오는 다시 일어나고, 다시 뛴다. 그리고 결국에는 성공한다.

현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아직 내 인생의 타이밍을 잘 모른다. 언제 도전해야 하고,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 하지만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 마리오처럼.

결국 나는 그 구간을 통과했다. 몇 번째 시도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의 그 기분은 또렷하다. 짜릿했고, 후련했고, 뿌듯했다. 게임일 뿐이지만, 그 성취감은 진짜였다.


학교라는 피치 성


학교는 내게 피치 성 같은 곳이다. 구해야 할 무언가가 있는, 하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곳. 마리오가 여러 스테이지를 거쳐 피치 성에 도달하듯, 나도 여러 시험과 과제를 거쳐 졸업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마리오는 모험이 즐겁지만, 나는 학교가 즐겁지 않다는 것. 마리오는 각 스테이지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나는 매일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수업을, 똑같은 선생님에게 듣는다.

아침 8시 10분에 1교시가 시작되고, 오후 4시쯤 7교시가 끝난다. 그 사이에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가 반복된다. 가끔 체육이나 음악이 끼어 있으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지만, 대부분의 날은 비슷하다.

수학 시간이 가장 힘들다. 선생님이 칠판에 쓰는 공식들이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미분, 적분, 삼각함수.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나는 교과서를 펴놓고 있지만, 사실 절반은 딴생각을 한다. '집에 가면 마리오 해야지.' '오늘은 어느 왕국 갈까.' '파워문 몇 개 모았더라.'

선생님은 내가 딴생각하는 걸 모르신다. 아니, 알아도 모른 척하시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앉아 있는 학생. 마리오 게임으로 치면 배경에 있는 NPC 같은 존재.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다르다. 나는 주인공이다. 마리오가 되어, 세계를 탐험하고, 적을 물리치고, 목표를 달성한다.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들을 게임에서 한다. 그게 내가 게임을 하는 이유다.


캡챠, 그리고 변신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의 가장 독특한 기능은 '캡챠(Capture)'다. 마리오가 캐피를 던져서 적이나 사물에 씌우면, 그것으로 변신할 수 있다. 개구리가 되어 높이 점프하고, 탱크가 되어 포를 쏘고, 티라노사우르스가 되어 포효한다.

처음 이 기능을 봤을 때는 그저 신기했다. '와, 마리오가 공룡이 되네!' 하는 정도. 하지만 게임을 하면 할수록, 캡챠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관점의 전환'이었다.

마리오는 자기 자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물속에서 오래 숨을 쉴 수 없고, 전기 장벽을 통과할 수 없고, 먼 거리를 날 수 없다. 하지만 캡챠를 통해 다른 존재가 되면, 그 존재의 능력을 쓸 수 있다. 물고기가 되면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전기 생명체가 되면 전기 장벽을 통과하고, 글라이드가 되면 하늘을 난다.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나도 캡챠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학 시험 볼 때는 수학 천재로 변신하고, 체육 시간에는 운동선수로 변신하고, 발표 시간에는 말 잘하는 사람으로 변신한다. 그러면 학교생활이 훨씬 쉬워질 텐데.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나일뿐이다. 수학을 못 하면 못하는 대로, 운동을 못하면 못하는 대로, 말을 못하면 못하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 변신할 수 없다. 능력을 빌려올 수 없다.

그런데 게임을 하다가 또 깨달았다. 마리오가 캐피처를 할 수 있는 건, 그가 유연하기 때문이라는 것. 마리오는 자신이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존재의 도움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다.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못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대신, 도움을 요청하고, 다른 방법을 찾고, 협력하는 것.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용기가 아닐까.


파워문을 모으는 이유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에는 총 999개의 파워문이 있다.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일부만 모으면 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모든 파워문을 모으려고 한다. 나도 그중 하나다.

파워문을 모으는 건 쉽지 않다. 어떤 건 숨겨져 있고, 어떤 건 어려운 퀘스트를 완료해야 하고, 어떤 건 정말 난이도 높은 점프를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파워문을 하나 얻을 때마다, 그 짜릿한 음악과 함께 "you Get a moon!" 하는 문구가 뜨면, 기분이 좋다.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너 그거 다 모아서 뭐해? 엔딩은 이미 봤잖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엔딩은 이미 봤고, 파워문을 다 모은다고 특별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게임이 100%가 될 뿐이다.

하지만 그날 밤, 혼자 생각하면서 답을 찾았다. 나는 파워문을 모으는 게 아니라, '완수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거였다.

현실에서 나는 뭔가를 끝까지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작심삼일이 일상이다. 독서를 하겠다고 다짐하면 한 권도 못 읽고, 운동을 시작하면 일주일 만에 그만둔다. 시작은 하지만 끝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다르다. 파워문을 모으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인내가 필요하고, 때로는 좌절스럽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씩, 천천히, 꾸준히 모은다. 그리고 결국에는 목표에 도달한다.

어쩌면 게임은 내게 '끝까지 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장은 게임 안에서만 가능하지만, 언젠가는 이 경험이 현실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달성하고, 끝까지 완수하는 것. 마리오가 파워문을 모으듯, 나도 내 인생의 '파워문'을 하나씩 모을 수 있을 거라고.


보스전, 그리고 실패의 반복


게임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보스전이다. 마리오가 쿠파를 상대하는 장면들은 언제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거대한 쿠파가 포효하고, 불을 뿜고, 공격해 온다. 마리오는 작고 약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는다.

나는 보스전을 할 때마다 떨린다. 게임인 걸 알면서도, 심장이 빨리 뛴다.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까?' '저 공격은 어떻게 피하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는 첫 번째 시도에서 진다. 보스의 패턴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타이밍을 놓쳤거나, 실수를 했거나.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과는 같다. Game Over.

하지만 마리오는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도전한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보스의 패턴을 조금씩 파악하고, 공격을 피하는 법을 배우고, 반격할 타이밍을 익힌다. 그리고 결국, 승리한다.

승리의 순간은 언제나 달콤하다. 보스가 쓰러지고, 승리 음악이 울려 퍼지고, 마리오가 이겼다. 나는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숨을 크게 쉰다. '해냈다.'

학교에도 보스가 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그 시험들은 마치 보스전 같다. 어렵고, 무섭고, 때로는 압도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는 첫 번째 시도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마리오가 가르쳐준 게 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는 것.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 패턴을 파악하고, 전략을 세우고, 다시 시도하면 된다는 것.

다음 시험에서는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리오처럼.


달나라에서 느낀 것


게임의 클라이맥스는 달나라에서 펼쳐진다. 마리오는 드디어 쿠파를 물리치고, 피치 공주를 구한다. 그런데 엔딩은 내가 예상한 것과 달랐다. 피치 공주는 마리오와 쿠파 둘 다를 거절하고, 혼자 우주선을 타고 떠난다. 그리고 마리오는 멍하니 서 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웃었다. 평범한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마리오는 공주를 구했지만, 공주를 얻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마리오는 후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여행을 즐겼고, 모험을 경험했고, 성장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진부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마리오를 보면서 조금은 이해가 됐다. 마리오에게 중요한 건 공주를 얻는 게 아니라, 공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지금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게 전부일까? 어쩌면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하는가가 아닐까.


다시 켜는 이유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는 이미 엔딩을 봤고, 파워문도 거의 다 모았다. 이제 할 게 별로 없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이 게임을 켠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리오의 세계가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실패해도 괜찮고, 천천히 가도 괜찮고, 나만의 속도로 살아도 괜찮다. 누구도 나를 재촉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학원에서 어려운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이끌고 내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스위치를 켠다. 마리오가 뉴 동크 시티의 빌딩 위에서 점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조금씩 회복된다.

오늘도 나는 '퇴근'한다. 학생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마리오의 세계로 접속한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숨을 쉰다. 그리고 내일을 준비한다.

게임은 도피처가 아니다. 충전소다. 마리오는 내게 용기를 준다. 다시 일어나는 법을, 포기하지 않는 법을, 즐기면서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

빨간 모자를 쓴 작은 배관공이, 고2 학생에게 희망을 준다.

그게 내가 매일 다른 세계에 접속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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