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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연 Apr 15. 2024

다시, 피아노

꾸준히 한마디 한마디 늘려가는 재미

어렸을 때 꽤 오랫동안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바이엘부터 시작해 체르니 30-50, 하농, 베토벤, 쇼팽 교향곡까지 접해봤었다. 꽤 고난도까지 진도를 뺐지만 그때는 ‘학원 다니기’의 개념이라 크게 즐긴 기억이 없었던 것 같다. 숙제처럼 다녀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

거의 20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다. ‘음미체가 있는 삶‘을 즐기자는 주의라, 듣고 즐기는 음악 말고 스스로 다룰 수 있는 악기를 하나쯤은 배우고 싶었다. 이왕이면, 가장 지루한 기초단계에서 포기하지 않을 법한 악기를 골라야 했다. 자발적으로 시작했다는 건, 그만큼 자발적으로 그만둘 확률도 높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피아노는 음계, 주법, 기본적인 악보보기 정도는 가능했으니 오랜만에 접하더라도 빨리 기초체력 쌓기 -> 재미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동네 상가의 작은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듣기만해도 여름의 녹음과 파란하늘이 떠오르는 summer

듣기만 했지, 처음 연주해 보는 히사이시조의 summer. 신기하게도 손이 피아노를 기억했다. 악보를 보고 까마득했지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한마디 한마디 거북이걸음 기듯 건반을 눌렀다. 음원으로 듣던 멜로디가 내 손으로 연주된다니. 물론 음이 3,4단이 되고 플랫(b)과 샵(#)이 붙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한곡 완성하는데 왠지 6개월은 걸릴 것 같은 기분. 일단 여차저차 첫 번째 레슨을 끝냈다.


홀로연습하며..

한주 뒤 레슨까지 연습이 없으면 다음 레슨은 똑같은 거북이걸음의 반복일 것이 뻔했다. 스스로 창피할 것 같아서, 등록한 첫 주엔 거의 매일 피아노 학원에 들러 연습을 했다. 하루에 딱 4마디씩만 마스터한다는 마음으로 한마디,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범위를 늘려나갔다. 어설펐지만, 순수한 재미의 목적으로 몰입하다 보니 늘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요새 들어 숏폼에 중독되어 집중력이 저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하나에 제대로 몰입한 기분도 꽤 상쾌했다.


피아노 5개월 차. 어느덧 히사이시조의 summer & spring 시리즈를 넘어 쇼팽의 교향곡, 인생의 회전목마까지 벌써 4곡째 연주 중이다. 첫 연습에서 ‘이걸 내가 어떻게 치지’라고 생각했던 곡도, 자주 치다 보면 한곡이 분명 완성은 된다. 그저 재밌으려고 하는 게 취미니까, 너무 완벽한 결과물에 집착하기보단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게 피아노처럼 그저 내가 재밌어서 하는 일들을 차곡차곡해나가다 보면 일상은 점점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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