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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연 Dec 30. 2021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들 in 제주 - 1일차

사소한 것에 감탄하는 순간들이 많은 여행

출발하기 전, 남편과 각자 핸드폰을 덜 보는 여행을 하자고 다짐했다. 사진찍고, 지도보다보면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열어 게임을 하거나 sns하는 것을 줄여보기로 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한적한 전망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막간을 즐겼다.



여차저차 제주에 도착해 로컬 주민들이 드나들 것 같은 보말칼국수집에 왔다. 동네 사람들도 오가는 식당을 찾은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물론 유명 맛집이 평타를 치긴 하겠지만, 꼭 유명하다고해서 내 입맛에 100% 맞는건 아니더라. sns 인증보다는 내가 맛있고 행복한게 중요한 여행을 하려 노력중이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선물할 와인을 구매하기 위해 ‘슈퍼보틀’에 들렀다. 선물받을 친구에게 기분좋은 순간을 선사하기 위해 고민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내추럴와인을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차린 가게라고 하시던데 충분히 의도에 부합할만한 인테리어, 서비스, 제품들이었다.. (와알못은 설명해주어도 잘 모르긴했지만 말이다..)

와인을 사고 빨리 제주 시내를 벗어나고 싶었다. 생각보다 도로에 차도, 사람도 많고 딱히 서울 도심과 다를게 없는 느낌때문인지 여행이 실감나지 않았다. 제주의 자연을 느끼기 위해 1100고지를 경유해 미술관으로 가기로했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 산중턱으로 올라가니 공기와 온도가 달라졌다. 그래 이게 제주지! 위로 갈수록 지난주 내린 눈이 아직 그대로 쌓여있었고, 원래 나무가 하얀색이었던 것처럼 아름다운 눈꽃나무가 즐비해있었다.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의 설경은 산수화의 한 장면처럼 예술같았다. 가끔씩 이런 풍경을 보면, 이 공간의 여름 풍경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여름에도 겨울이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제주의 자연을 잠시 만끽하고 서귀포 도심으로 내려왔다. 숙소와 정반대에 있는 곳이긴 했지만 ‘이중섭 미술관’에 가보고 싶어 먼거리를 달려왔다. 삼성가에서 이중섭의 제주도 생활당시 작품을 기증했다하여 많은 관심을 모았었다고 한다. 생각했던것 보다 미술관 규모는 작았지만 구성은 알찼다. ‘이중섭’이라는 작가와 작품을 잘 알리고 싶은 진심이 녹아있는 공간이었다. 솔직히 미술에 문외한인 나는 ‘이중섭 = 황소’ 밖에 몰랐다. 하지만, 이 작가는 짧은 생애였지만, 살아가는 동안 ‘내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소재를 많이 사용했다는걸 알 수 있었다. 가족을 향한 그림편지는 특히나 뭉클했다. 그리고, 연애시절 받은 그림편지를 공개한 이남덕 여사님의 말은 진짜 사랑하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구나 싶었다..

잠깐의 서귀포 여행을 마치고 숙소인 제주시로 돌아왔다. 먼거리 돌아오느라 고생했다고 토닥여주듯, 우리가 묵을 숙소는 외관부터가 안락하고 포근했다. 작은 방이었지만, 작은 소품 하나에도 주인 부부의 취향과 개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공간이었다. 유명 호텔들의 다양한 서비스, 편안함과는 다른 매력의 숙소라 돌아가서도 한참 생각날 듯 싶다.


tv가 없어서 남편과 나는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세월에 흔적이 묻어나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잔잔한 음악이 이 공간에 더 어울렸다. tv를 두시지 않은 이유를 알겠더라. 테이블위에 놓인 방명록에서 내가 즐겨들었던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한 사람을 만났을때의 내적 친밀감이란.. 모르는 사람이지만 왠지 친근한 그런 느낌.


첫째날 저녁은 동네 이자카야에서 훌륭한 로컬재료 사용 요리로 마무리. 여행에서 제일 설레는 순간 중 하나는 첫째날 일정 마무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에 술한잔 하며, 아직 여행일정이 충분히 남아있는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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