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탓에 정기구독하고 있는 '한국수필' 3월호를 4월이 끝날 무렵에서야 나머지 부분을 겨우 읽었다. 신인 당선작으로 뽑힌 '엄마의 눈'의 한 구절이 나를 묶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약한 술버릇은, 나와 동생들을 무척 힘들게 하였다.... 술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아버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자식들에 대한 잔소리와 훈계가 반복하여 이어진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이건 분명 내 딸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애들이 자라고 내가 나이가 들고서야 후회한다. '칭찬을 많이 했어야 했는데' '애들의 말을 들을 생각은 않고, 듣지도 않을 뻔한 내 말만 길게 했을까!'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움에는 2년이 걸리고, 침묵을 배움에는 60년이 걸린다는 속담이 있다는데, 그래서 나는 80년이 넘은 지금에야 깨치고 후회하게 되나 보다.
나는 은퇴 후에 초등학생들에게 기초한자교육의 기회를 얻어 행복했던 적이 있다.
''오늘은 선생님이 효도하는 방법을 일러 줄게. 어르신들은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서운해하신단다.(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할머니, 옛날얘기 해 주세요.' 하면, '이 녀석이 할미를 또 귀찮게 하는구나.' 하시고는, 무궁무진한 얘기보따리를 끄 르실거야. 그냥 듣고만 있으면 안 돼. 중간중간에 '어머나. 그래서요?, 진짜요?' 하며 추임새를 넣고, 웃고 손뼉 치면 더욱 신이 나신단다.'' 남의 말을 들을 때는 경청하고, 맞장구를 치며 호응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힘주어 가르쳤다. 말 잘하기 못지않게, 귀 기울여 잘 듣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친구 서너 명이 자리를 같이할라치면, 다른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줄곧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은 남이 얘기할 땐 자라모가지를 하고선 핸드폰으로 작난질한다.
국가의 사무를 집행하는 국가기관인 廳(관청 청)字(글자자)는, 엄호부수에 聽(들을 청)이 합해져 있다. 관청은 명령이나 지시를 하는 곳이 아니라,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聽) 집(집)이어야 한다. 한옥에서 몸채의 방과 방사이에 있는 대청(大廳) 마루도 듣는 곳이다.
아무 말 없이 연꽃을 들어 보이기만 하신 부처님이나, 그 참뜻을 깨닫고 미소 지은 가섭존자(염화시중의 미소)는 종교차원의 설화이고, 우리 같은 범인에겐 해당되질 않는다. 필요할 때는 말을 해야한다.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 말을 들음을 강조한 속담일 것이다. 때와 장소에 맞는 말, 가슴에 전해지는 따뜻한 말, 절제된 말은 다이야몬드일 수도 있다.
조물주는 우리에게 많이 보고 많이 들으라고 눈과 귀를 둘씩이나 주고, 적게 먹고 적게 말하라고 입은 하나씩만 주신게 아니겠는가?
다만 사격할 때와 윙크할 때만은 한쪽눈을 감아도 되고, 듣기 고약한 말은 한쪽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도 좋다
말 잘하는 정치인보다 잘 듣는 점치인!!!
聖(성인성)字도 입(口)보다 귀(耳)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