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종각역 근처에서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점점 외로워진다는 것'이라는 데, 그래서인지 내게 있어 친구만남은 크나큰 기쁨이다.
내가 살고 있는 기흥호숫가는, 은퇴 독거노인의 거주지로 갖추어야 한다는 몇 가지 요건에 맞지 않는 곳이다. 역세권(지하철역 주변)도 아니고, 도세권(도서관 주변)도 아니며, 복세권(복지관 주변)도 아니다. 여기서 종각역까지 가려면, 마을버스를 거쳐 전철을 세 번 바꿔 타야 하니까 두 시간이 좋게 걸린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호수와 숲과 야생화, 그리고 여러 새들과 함께 사계절의 변화를 함께 즐기는 행복이 있다. 게다가 산책을 즐기는 남녀노소 別의別 사람들과의 대화와 밝은 웃음이 나를 따듯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좋다. 좀 멀긴 해도, 일찍 나서면 될 일이니까.
오늘 우리 만남은 63년 전, 한 솥밥을 먹고 한 지붕아래 잠자며 함께 기초군사훈련을 받던 전우들이다. 몇 번을 만나고 또 만나도 나눌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우리들의 이야기'는 주제도 내용도 조금씩 변천해 간다.
젊었을 때는 만물박사들이었다. 정확히 아는 것은 적으면서, 모르는 것은 없었다. 자기의 주장은 옳기만 하고, 자기와 다른 남의 생각은 죄 다 틀렸다. 자기 자랑만 내세우던 八不出(자기. 배우자. 자식. 학벌. 재산 등의 자기 자랑)의 작전이 바뀐다. 다른 친구와 서로 상대의 자랑을 대신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간접 팔불출이다.
' 우리들의 이야기'는 돌고 돌아, 결국 도돌이표가 붙어 기초군사훈련으로 간다. 힘들었던 이 이야기는 재탕삼탕 우려먹고 또 우려먹어도 그 맛은 구수하다.
훈련 중 단체기합(團體氣合)으로 가장 많이 겪은 선착순 이야기에 이른다.
''뒤로 돌아'' 축구골대까지, 5명 선착순. 뛰어 갓'' 첫 번에 5번 안에 드는 자는 대충 정해져 있다. 나처럼 달리기에 약한 자는 죽을 맛이다. 이건 어쩌면 불평등한 교육이다. 기울어진 경기장에서의 무자비한 경쟁이다. 일열종대로 주욱 늘어서면, ''번호'' ''5번 이하, 뒤로 돌아. 뛰어 갓''
나는 이번에도 5등 안에 들 자신이 없으니까 아예 다음번을 노려 고의로 천천히 꼴찌에 선다. 교관이 ''이번에는, (반대편에 있는) 국기게양대까지, 뛰어 갓'' 나는 폴싹 망했다.
어느 친구가 ''선착순 일등하던 친구가, 인생도 먼저 달려 선착순으로ᆢ.''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 주변에서 먼저 간 친구들을 보면, 유독 승부욕이 강해서 지기를 싫어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아까운 친구들이네. 그러자니 스트레스는 오죽했을까! 경쟁에서 뒤진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도 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