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으로 칭송받는 5월을 그냥 보낼 수는 없어, 끝자락에서나마 인사를 나누어야겠다.
맑고 푸른 하늘아래 기흥호수 둘레길 나들이에 나선다.
세상만사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하던 교만한 내가, 산수(傘壽)를 넘기고서야 겨우 철이 드는 건지, 모르는 게 많아진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아낌없이 주는 자연으로부터 받기만 했다. 그들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이름도 모르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쳐버린 부끄러운 지난날이 미안하다. 오늘은 이들과 통성명도 하고, 정도 나누어 보련다.
하얗게 피어 곱디고왔던 아카시아꽃은, 어느새 제가 할 일을 끝내고는 누르스름하게 바닥에 깔렸다. 이들이 이제는 제 몸을 썩혀서 거름이 되고자 하는 그 모습은 결코 초라하지 않다.
아카시아는 높다랗게 자라서 그 아래 다른 식물이 자랄 공간을 마련해 주고, 수양버들은 호수 쪽으로 쑤욱 들어가서 방해되지 않는다. 이들의 공생공영하는 착한 모습.
연한 연분홍 꽃잎의 키가 나지막한 꽃들이 제법 모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빛깔이 야하지도 않고 꽃잎이 두텁지도 않아, 청순한 한국의 중년여인과 아주 닮았다. 핸드폰에게 그 꽃이름을 물으니, 낮달맞이꽃이라 일러준다. 낮달맞이라니? 달을 만나려면 밤에 피어야지. '낮에 나오는 하얀 반달'을 맞이하려 기다리는가? 그럼 달맞이꽃은? 밤에 나오는 밝은 달을 맞으려?
이들의 꽃말이 '기다림'이라 한다. 소 키우는 청년(牽牛:끌 견. 소우)과 베 짜는 여인(織女:짤직. 여자녀)의 전설과 같은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있음 직도 한데,..
노란 꽃이 일 원짜리 동전크기만 하고, 나무크기가 일 미터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앙증맞은 녀석들이 옹기종기 모여 순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녀석들의 이름을 알아서 인사를 나누고자 핸드폰카메라를 가져갔으나, 꽃이 흔들려서 잡히지가 않는다. 애를 쓰고 있는데, 지나던 중년여인이 ''꽃이름을 알고 싶으신 거죠?'' 낮달맞이꽃을 쏙 닮은 여인이다.
''네. 이 꽃 이름을 아세요?''
''그 꽃은 애기똥풀꽃입니다.''
''많고 많은 고운 말을 다 두고, 하필이면.,..''
''가지나 잎을 꺾어 보세요. 애기똥색을 닮은 노란 즙이 나옵니다. 그래서...''
얘한테 미안하지만, 가지하나를 꺾어보니 하얀 즙이 아닌 샛노란 즙이 뚝뚝 떨어진다. 냄새를 맡아보니 애기 젖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
''맞네. 이건 향긋한 애기똥이야.''
꽃말도 귀엽게 '몰래 주는 사랑'.'엄마의 사랑'. '희망' 이라네.
오늘 기흥호수 둘레길에서 내가 이름을 알아본 꽃은 종루도 많다. 까치수염. 정향나무. 자줏빛개비. 꽃창포. 짚신나물. 패랭이꽃. 톱풀 등이다.
꽃은 자연이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란다. 산야(山野)에서 절로 나고 자라는 꽃, 야생화는 자연 그대로 있을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자연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닌, 해치지 않아야 할 대상이다. 개발이나 개량의 대상도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들게 꽃도 개량하려 든다. 개량이 야생화에게는, 간섭이요 구속이며 본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따가운 햇살에도, 거센 풍우에도, 매섭게 북풍한설 몰아쳐도, 온갖 병충해의 공격에도ㅡ모다 스스로 이겨내며, 이웃과 더불어 복된 삶을 이어 간다. 각자 때에 맞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씨를 맺는 이 멋쟁이들이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내 눈에도 보인다. 친구가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