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기구독하고 있는 '한국수필' 6월호에 실린, 서현정 작가의 '고개 너머 종구네'는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 가 뭉클하게 한다. 작가는 햇병어리 교사 적에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던 때의 평범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평범하지 않게 곱게 다듬어 아름다운 글로 써내려 갔다. 우리들의 자랑스럽고 위대했던 지난날이기도 하다.
''그때 어려웠던 보릿고개 시절, 부모들은 졸업할 때까지 입히려고 미리 큼지막한 교복을 마련해 두기 일쑤였다. 눈이 덮일 듯 큰 교모와 헐렁한 옷에 싸여 눈망울이 빛나던 개구쟁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사진처럼 떠 오른다.''라고 추억하고 있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식 때 신입생대표여서 괜찮은 옷을 준비해야 했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미군이 입던 '사지스봉'을 사서 헐렁하게 줄여 검정 물을 들여 입었다. 안으로 접어 올렸던 바지 끝이 흘러 내려서 낭패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담임선생 작가와 제자 종구와의 사제지간, 그리고 학부모의 포근한 이야기가 조용히 이어진다.
''종구는 몸집도 작고 성적도 뛰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남 앞에 나서는 아이도 아니라서'' 처음에는 선생님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급의 힘든 일은 도맡아 하고, 구김살 없이 밝은'' 종구의 모습을 선생님은 보았다.
학교에서 정한 일주일간의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종구네 집은 한나절이나 걸릴 만큼 시내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어 행여나 담임선생님이 오지 않을까 ''조바심치는 종구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종구네 집을 먼저 가기로 하는 선생님!
시골 마을로 들어가는 초만원 시외버스, 논두렁 밭두렁 사이 지름길을 지나 고개 너머 찾아가는 선생님!
''반색을 하며 뛰어나와 손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하며''담임선생님을 반기는 종구 어머니와 삶은 달걀!
''몇 뙈기 안 되는 농사를 어렵사리 지으면서 틈틈이 건어물을 팔러 다니면서'' 종구를 꼭 상급학교에 보내고 싶은 엄마의 간절함!
작가는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지루할까 봐 종구는 온갖 재롱을 다 부렸다....
''곤궁한 형편인데도 씩씩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주위에 위로와 기쁨을 주는 아이.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고 하고, 마지막은 ''그 순박한 종구는 다 어디로 갔을까''로 끝맺는다.
그 당시로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닐 텐데, 지금에 와서는 놀라운 이야기가 되었다.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해도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 변할 수 없는 건 없는가? 예의. 도덕. 윤리 따위는 죄다 버리고 법으로만 해결해야 하는가?
스승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믿어왔던 사도(師道)와, 제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믿어오던 제자도(弟子道)는 사라져야 하는 건가?
예기(禮記)에서 가르치는 제자존사 사애제자(弟子尊師 師愛弟子: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제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용도폐기하여 박물관으로 보내야 하는가?
교권과 학생인권 간의 다툼만 있어야 하는가?
''그 따뜻한 선생님과 그 순박한 종구, 그리고 선생님의 고마움을 아는 그 학부모는 다 어디로 갔는가!!!
2025.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