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여름은 유난히도 덥다. 모질게 뜨거운
태양(日) 아래, 가림막 하나 없이 노출된 채
일하는 자(者)가 가장 힘들 것이다.(暑)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삼복더위 앞에서는
누구도 버티기 어렵다.
호박잎은 축 늘어지고, 온갖 짐승들도 그늘로
숨어든다. 사람(人)도 개(犬)도 마찬가지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 사람도 개도 자연 앞에
납작 엎드려 항복(降伏)한다. 그것이 복(伏) 날?
복날 보양식 목록에서 보신탕이 지워진 지 오래다. 이제 개는 복날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요즘은 개팔자가 상팔자다.
혹한이나 혹서는 많은 이에게 위기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혹한과 폭설은 자동차정비공장이나 방한용품 제조자에게 기회이고, 혹서는 제빙공장이나 빙과류 공장에 기회다.
돈벌이만의 기회가 아니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일을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문득, *우산장사 아들과 나막신장사 아들의 엄
마 이야기*가 떠 오르기도 한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월사금(月謝金) 석 달
치가 밀렸다.
아버지의 일터는 마산어시장. 지게를 받쳐놓고
마냥 기다리다 부름이 있으면 지게로 짐을 나르고
품삯을 받는 지게꾼이셨다.
그 벌이로 매달 내 월사금을 마련하기란 벅찼을
것이다.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집에 가서 부모님을 모셔오너라.*
퇴학 직전의 절차였다. 며칠을 결석하며 기다려도
월사금은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무작정 큰 도시로 나가서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겠다고.
북마산역에서 부산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반 친구의 고자질(?)로 담임선생님이 직접
오셨다. 그분의 손에 뒷덜미가 잡히는 순간, 가출은 허무하게 끝났다.
아버지께서는 난생처음으로 남에게서 돈을 빌리셨고, 나는 새벽마다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중학교2학년 여름방학.
대부분의 친구들에게는 즐겁게 놀 수 있는 기회였고, 내게는 돈을 벌 기회였다.
처음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채장수로 시작했다. 하지만 번화한 직행정류장은 이미 선배들의 자리였다. 나는 구석진 시골행 완행정류장에서 하루 종일 겨우 몇 개를 팔 뿐이었고, 마산역 대기실로 옮겨 봐도 허탕.
벌이가 시원치 않아 업종(?)을 바꿨다.
이번엔 막대기에 꽂은 얼음과자, 아이스께끼다.
아이스께끼를 담은 양철통을 나무상자에 넣고,
그 사이에다 얼음조각을 채워 보냉(保冷)했다.
그 무거운 통을 멜빵으로 어깨에 메고, 골목골목
다니며 웨쳤다. *아이스께끼~!*
무거운 통보다 힘든 건, 아는 사람을 피하는 일이었다. 목소리는 점점 기어 들어갔다.
더러는 제법 팔리는 날도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어느 날, 지독히도 덥던 날이었다.
목이 쉬도록 웨쳐도 팔리지 않았다.
통을 열어보니 얼음은 모두 녹고, 아이스께끼도
물이 되어 있었다.
며칠 동안 번 돈을 몽땅 잃었다.
나는 아이스께끼통 위에 앉아 펑펑 울었다.
서럽게 울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날 던진 하늘에 대한 분노
였을까, 가난한 부모님을 향한 원망이었을까,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질책이었을까!
나는, 지혜로워야 함을 깨달았다.
_ 한낮의 뜨거운 시간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_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구마산역 근처의 여관골목길을 다니며, 조그만 목소리로 여관창문에다 대고, *아이스께끼~*.
화투놀이하던 사람들에게 왕창 팔기도 한다.
장사는 점점 나아졌다.
그 해 여름의 더위는, 내게 재앙이 아닌 기회였다.
올여름의 끝 모를 더위를 견디며, 그 시절의 추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 추억은 내 삶의 밑거름이 되었고,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게 한다.
# 잘 팔리면 좋아 웃고
안 팔리면 슬퍼 울던
아련한 그 추억에
복(伏) 날은 가안다. #
♡백설희. 봄날은 간다. 마지막 구절의 변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