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3)
12월 31일. 우리 가족 송년의 밤 행사가 있는 날이다. 1년 동안 함께한 추억들을 떠올려보고,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기대를 서로 나누기 위해서 마련한 자리다. 주최자인 나는 며칠 전부터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먼저 행사포스터를 만든다. 컴퓨터 작업에 익숙지 못한 나는 행사 포스터를 만드는 것부터가 난관이지만 “Yu family awards”라는 타이틀로 식탁에 붙일만한 크기의 포스터를 제작한다. 포스터만 보면 청룡영화제 남부럽지 않다.(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포스터를 완성하고 나면 상장 제작에 들어간다. 이번 어워즈의 상은 ‘기특해상’과 수고했상‘이다. 상장을 만들고 상품을 준비한다. 상품은 현금 만원과 아무 때나 쿠폰 3장(숙제 및 잔소리 해방권, 안마 쿠폰, 소원 1가지 쿠폰)이다. 딸에게는 보너스 상품이 있다. 일년 동안 쓴 나의 육아일기장이다. 우리는 그 일기장을 보면서 한해를 되짚어본다. 상장과 상품을 정성스럽게 포장하는 것으로 사전 행사 준비를 완료한다.
행사 당일, 식탁에 만들어 놓은 포스터를 붙이고 집에 있는 온갖 디저트 그릇은 다 꺼내서 다과를 차려놓는다. 상장과 상품을 한 켠에 두고, 남편과 딸을 초대한다.
“자, Yu family awards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자리에 앉아주세요.”
나는 시상식을 시작할 때 주로 나오는 익숙한 음악을 틀고 한껏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말한다.
“자, 시상식에 와주신 내빈들 감사합니다. 먼저 케익 커팅식이 있겠습니다.” 서로 올 한해 잘 살아온 것을 자축하면서 케익에 초를 불고 박수를 친다.
“다음은 시상을 하겠습니다. 호명 하는 사람 앞으로 나와 주세요”
“기특해상. 어린이는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고, 엄마 아빠에게 무한한 행복과 사랑을 주었기에 이를 칭찬하며 이 상을 수여합니다.”
상장을 건네고 상품이 들어있는 봉투를 준다. 아이는 상장을 뒤로 하고 봉투부터 열어본다. 돈 만원에는 관심이 없고, 쿠폰의 내용에 신이 났다. 소원도 필요 없다! 숙제 해방권을 본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이에게는 제일 좋은 선물인 모양이다.
다음은 남편에게 ‘수고했상’을 수여한다. 남편 또한 상장은 뒤로 하고, 봉투를 열어본다. 쿠폰에는 관심이 없고, 자꾸만 봉투를 재차 확인한다. 그리고 나에게 만원 한 장뿐이냐는 눈빛을 보낸다. 나는 아무말 없이 잔소리 해방권 쿠폰을 다시 슬쩍 건넨다. 곧이어 올해 어워드의 대상을 나에게 수여한다. 모두 동의하는 눈치다.
셀프 수상이라 다소 민망하여 따로 상장은 없지만 나를 위한 상품은 있다.
마지막으로 행사의 피날레는 나의 육아일기장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아이는 가장 기대했던 순간이 왔다는 듯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이어리를 가슴에 꼭 품는다.
개봉박두!
우리 가족이 함께한 계절의 모습, 여행, 공연 등 보통의 일상을 담은 글, 딸이 엄마 에게,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진이 담겨있다.
다꾸에는 소질이 없지만 꾸준히 쓰여진 매일의 기록들을 살펴보며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곰곰 반추한다.
“우리 식빵 만들러 간 날 기억나? 그때 엄마 회사 이모들 다 만났잖아. 그리고 파티쉐 선생님이 나 잘 만든다고 했어.”
앞니가 빠져서 입안이 휑한 모습, 처음 노래방 가서 아빠보다 낮은 점수 나왔다고 짜증부리는 모습, 캠핑 가서 우연히 학원 친구 만나서 신나게 노는 모습의 사진을 보며 우리는 추억들을 꺼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우리가 5월에 어버이날이라고 포항할머니 댁에 갔잖아.”
5월에는 가정의 달이라 그런지 일기장에 내용이 빼곡하다.
“엄마. 잠시만.”하며 딸은 레고를 둔 테이블로 간다.
“아직 덜 살펴봤는데....얼른 와.”“알겠어. 5분만....”
“자기야. 나도 잠시만” 하며 남편은 화장실에 간다.
순식간에 나는 혼자 덩그러니 시상식장에 남아있다.
“육아 일기 아직 남았어. 다시 얼른 와.”
하지만 끝내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홀로 남아 아까 받은 상품이 담긴 봉투를 열어본다.
-상금 2만원과 집안일 해방 쿠폰 1장-
‘요건 몰랐지? 대상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하니깐!’
누가 뭐래도 내가 제일 애썼다. 셀프 칭찬도 필수!
나는 우리 가족의 이벤트 메이커이다. 전해주고 선물이 있으면 보물찾기 이벤트를 한다던가, 아이의 필통 안에 마음을 담은 쪽지를 넣어 두고 볶음밥 위의 케첩 하트를 그려주는 등 나는 소소한 이벤트를 가족들에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루할 수도 있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벤트는 나에게 설렘을 주고, 가족들이 감동과 재미를 느끼는 모습을 보면 힘을 얻는다.
나의 이런 이벤트를 본 지인들은 ‘왜 굳이 그렇게 까지 해?’라고 말하기도 하고, 가끔은 나도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위한 그들의 이벤트를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도 한다.
올해는 가족이 함께 송년의 밤을 준비하려고 한다. 가족회의를 열어 행사를 기획하고, 가족 모두가 힘을 모아 행사 준비도 함께 하다보면 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과연 12월 31일의 우리 가족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더욱 기대된다.
-번외편-
“엄마! 나 오늘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엄마 육아일기 가지고 갔어”
“뭐라고? 그걸 왜 가지고 갔어! 너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갔어야지, 그건 책이 아니잖아”
“나는 엄마 육아일기장을 소개하고 싶었어.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했어! 엄마 고마워.”
‘나도 고마워. 엄마와 함께한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줘서....’
그렇게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육아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