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앓이

나를 찾는 여정

by Elara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돈다. 코로나 판정을 받은 아이의 열이 이틀째 떨어지지 않는다. 밤새 간호를 하던 나도 서서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안 봐도 비디오, 나의 자가 진단 결과도 코로나 양성 반응이다.

일주일간의 격리. 막막했다.

오한과 발열이 지속되어 아이는 몸을 가누질 못했고,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해열 링거를 맞으셔야 해요. 주사실에서 대기해 주세요.”

주사실로 향하는 나를 의사는 불러 세운다.

“어머님도 같이 맞으세요. 많이 안 좋아 보이세요.”

그렇다. 나도 39도가 넘는 고열이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환자였다. 하지만 온 신경은 아이에게로 향해 있어 나의 몸은 돌볼 여력이 없었다.

아이는 이내 회복했고, 일주일간의 격리기간동안 아이를 돌보느라 내 몸을 회복할 겨를이 없었다.

2주만에 체중이 10kg가 빠졌다. 대여섯군데의 병원을 가보았지만, 몸의 이상이 딱히 발견되지 않자 근육이 급격하게 손실되는 코로나 후유증이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 오는 날, 계단에서 미끄러져 꼬리뼈까지 다치게 되면서 며칠 걷지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다. 체중은 30키로 후반대까지 빠졌고,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나다니는 동네 사람들마저도 나를 걱정했다.

순식간에 일상이 멈춰버렸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7년 동안 늘 가족과 함께였다. 꼬리뼈 통증으로 움직이는 것이 어렵게 되자 자연스럽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 졌다.

처음에는 혼자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채 멍하게 앉아 있었다. 말수도 적어지고 아이를 돌보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몸과 마음이 정지된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니 버텼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몸을 회복하기 위해 찾은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나에게 말하길 “마음이 아프셔서 몸에서 이상 증상이 왔어요. 마음을 먼저 돌보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내가 마음이 아프다고?! 나 괜찮은데.....?!설마 내가?!

그러던 중 자꾸만 살이 빠지는 나를 걱정하며 선배동료가 나에게 말했다.

“너 마흔 앓이 하는거 아니야? 나도 마흔 때쯤에 호되게 아팠어. 마흔 전에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체력으로 살고, 마흔 이후에는 몸이 삐걱댄대~ 다시 잘 굴러가게 몸도 마음도 기름칠을 해줘야 한다던데 이젠 너를 좀 살펴”

나도 마흔 앓이 라는 것을 하는 걸까? 도서관에 가서 마흔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에 눈길이 갔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소재로 쓴 책들이 많았다. 그만큼 이 나이가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시기인가보다.

지금껏 타인에게 시선을 둔 채 앞만 보며 달려왔다. 엄마라면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우리 엄마가 가족에게 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가족에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잠시 멈춰 지난 날을 돌아보고 나를 돌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이 답답함을 어떻게 풀지?’

‘혼자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할까? 사람들은 무엇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각자만의 방법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어떻게 했지?’

생각해보니 딱히 뭘 해서 스트레스를 푼 적이 없다. 아니 풀어야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렇게 마음에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겹겹이 쌓여만 가는 줄 모르며 살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았다.

가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쉬고 싶어 하는 나. 위로받고 싶어 하는 나를.

‘지금까지 버틴 것도 용하네. 아플 만도 했네. 그동안 고생했네.’

‘내가 널 너무 몰라줬구나. 미안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너무 외면했었다. 마흔이 돼서야 그걸 알았다.

나를 헤아려 줄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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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흔들려서 마흔인 걸 알았다』에서 마흔은 홀로서기를 시작할 때라고 한다. 조금 아프지만, 당신에게 꼭 필요했던 바로 그 시간, 나의 이름을 지어낼 시간.

마흔 즈음에 겪는 균열, 두려움과 우울함은 축복이고,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끼워 맞춘 채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아’를 찾을 수 있는 시기라고 한다. 지금 느끼는 이 흔들림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라고 위로해준다.

이제야 나를 귀히 여기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상을 완벽하게 해내려 하기보다 적당하게 내려놓는 연습을 하며 적당주의적 삶을 살고 있다. 무너졌었던 마음의 경계를 다시 세우고, 몸, 감정, 생각들을 스스로 보호하면서 일상 속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흔들려줘서 고마워. 나의 진짜 이름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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