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첫 만남...그리고 현재
우리 집 처치곤란 인테리어 소품은 다름 아닌 웨딩 액자이다. 결혼식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물건이긴 하나 부피가 커서 어디 두기가 참 곤란하다. 남편 친구 동생 지인의 지인이 결혼식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usb 바이러스 이슈로 결혼식 사진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래서 그 액자를 처리하는 걸 주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남편과 액자의 처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우리 딸이 물었다.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이런 원론적인 질문이 너무 오랜만이라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당황스러웠다.
“아빠가 잘생겨서”(남편은 나의 이상형 조건(덧니,덩치,새치) 중 2가지를 갖춘 남자다.)
“에이~ 그건 아니다. 아빠는 왜 엄마랑 결혼했어?”
‘대답 잘해라.’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남편의 동공은 흔들렸고, 나를 한번 쓰윽 보고는..
“웃겨서.....”
그와 나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나에게 갑자기 소개팅을 하란다.
“난 소개팅 안해. 자만추를 선호해.”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내가 가장 힘들다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고 있으니 답답한 모양이다. 그의 설득은 끈질겼다.
소개팅 당일. 6시가 점점 다가오자 급히 옷과 구두를 대충 끼워 넣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한발 내딛었는데 신발이 벗겨졌다. 구두가 커졌는지, 내가 살이 빠졌는지 자꾸만 구두가 벗겨지면서 걷기가 힘들었다. 우선은 1층 카페 화장실에 갔다.
그래도 첫 만남인데 구두를 질질 끌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구두의 밑창을 뜯고 그 안에 휴지를 구겨 넣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휴지를 구겨 넣고 있는 이 상황이 웃겨 자꾸만 웃음이 났다.
‘어차피 더는 안볼 사람이니깐. 대충 밥이나 먹고 헤어지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2층으로 향했다. '뉴욕뉴욕'. 꽤나 유명한 소개팅 성지라 나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로 붐볐다. 나의 소개팅 남자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중 까만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기......”
빙고! 상대를 단번에 알아본 내가 기특한 나머지 자화자찬의 박수를 여러 번 치면서 자리에 앉았다.(그 남자는 이런 내 모습이 해맑아 보여 좋았다나 뭐라나!)
우리는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나는 스파게티를 해치워야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먹는데만 집중했고, 상대는 말을 하느라 거의 먹지 못했다. 그의 접시에는 불어터진 면만, 나의 접시에는 크림만 남아있었다.
순간, 그 불어터진 면이 안쓰러웠는지 내 접시에 있는 크림을 숟가락 가득 퍼서 그 남자의 접시에 담아주었다.
“식사 하셔요! 면이 다 불었네요. 제 크림이라도....”
지금 생각해보면 푼수! 푼수! 그런 푼수 같은 행동이 없다.(그 남자는 그런 내 모습이 세심해보였다나 뭐라나!)
나는 그 남자의 덧니, 새치, 미소가 좋아 네 번째 만남부터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는 만나면 만날수록 취향, 말투, 개그 코드 등 서로 닮은 부분이 많았다. 좋아하는 음악취향이 비슷하여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고, 공연도 함께 다녔다. 둘 다 활동적인 성향이다 보니 산책과 운동을 좋아하고, 서로를 향한 말투는 늘 다정했다. 개그 코드도 잘 맞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서로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지금도 서로 이야기 하겠다고 손을 들 정도이니깐.)
하지만 우리도 다른 별에서 온 남자와 여자였다.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삐걱대는 날도 많았다.
나는 리액션도 크고 성격도 급하고 호불호가 강한 성격이라면, 그는 느긋하고 차분했다. 그래서 그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생일 선물을 받았다면 나는 고마운 마음을 격하게 표현하는 반면, 그는 한켠에 생일 선물을 두고 집에 가서 혼자 뜯어봤다. 그런 그의 반응이 서운했다. 말다툼을 한 날에 나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화해를 하고 헤어지길 원했고, 그 남자는 마음이 풀릴 때까지 시간을 더 갖기를 바랐다.
여행을 가서도 나는 구글 지도를 켜서 빠른 시간 내에 목적지로 이동하길 바랐고, 그는 종이 지도를 펴서 길을 찾아가는 모험을 즐겼다. 나는 그 지역의 유명 장소는 다 가보기를 원했고, 그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여유롭게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비슷한 점에 이끌려 시작하였으나 점차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서 여느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이별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름을 인정하고 균형을 맞춰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우리는 2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잔잔바리 싸움의 연속이긴 하지만 이제는 서로를 다룰 줄 안다. 상대를 능숙하게 조련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드라마 『에스콰이어』에서 ‘사랑은 무지개빛으로 수많은 감정들이 빛난다고 한다. 빨강은 열정, 주황은 따스함, 노랑은 기쁨, 초록은 평안함, 파랑은 신뢰, 남색은 깊이, 보라는 신비로움. 사랑의 시작은 빨강이었을 것이나 세월과 함께 다른 색이 되어 간다고, 빨강에서 서로의 온기와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주황이 되고 또 점차 다른 색을 품으며 풍성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이 대사를 듣고 있노라니 나의 사랑은 어떤 색일까? 초록과 파랑의 그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각자의 색을 지니고 살아오다 서로에게 물들어 가면서 무지개빛 어느 언저리에 있다.
빛바랜 사랑일지라도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