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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Apr 24. 2024

각자가 감당해야 할 슬픔의 무게를 안고.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보고,

  아파트 샤워 시설을 수리하고 막힌 변기를 뚫고, 쌓인 눈을 치우는 리의 일상은 관성적으로 흘러간다. 자의적으로 시시프스와 같은 형벌을 반복하는 듯한 리에게 고향,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푸르른 바다 풍경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리에게 새로움이나 미래는 방과 방 사이의 낮은 문턱처럼 바닥에 고집스럽게 고정되어 있다. 


 형의 죽음 이후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이라는 사실은 자신을 가혹하리만큼 아웃사이더로 몰아대는 형벌에 충돌을 일으킨다. 끔찍한 실수로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리는 패트릭과 조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나눠 가질 수 없다. 리와 패트릭은 고통의 문턱 앞에 놓인 갈림길에서 평행선을 걷는다. 패트릭은 남은 사람들에게 기대 의지하고 냉동고 속 닭에 우연히 아빠를 떠올리며 울부짖는 고통에 본인을 내맡긴다. 반면 리는 소리 낼 수 없는 아픔 앞에 자기 파괴 속으로 숨어 버린다. 


 끝내 리는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지 않기로 한다. 맨체스터 곁에 잔잔히 요동치는 바다처럼 그곳에는 목적 없이 던져진 상실과 슬픔이 늘 존재한다. 슬픔과 상실 앞에서 문턱을 넘어 발걸음을 내디딜 것인지, 물 위를 항해하는 배에 몸을 맡길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끝내 ‘못 버티겠어’라고 소리 내는 리 앞에 치유의 서사를 남겨두는 것도 영화는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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