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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Mar 13. 2022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인생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 책에 대해 이야기 해야 될까. 며칠 동안 늦은 새벽까지 깨어있게끔 한 책이다.


책을 다 읽고서도 계속해서 책에 머물고 싶어 몇 번이나 마음에 남은 구절을 반복해서 읽었다.


조용한 고어(그리스어, 라틴어, 헤브라이어)를 사랑하고 교육하는 스위스의 중년 남성, 그레고리우스.


그가 스위스를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포르투칼로 떠난 그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처럼 보였다. 출근 길에 우연히 강으로 뛰어 내리고자 하는 포르투칼 여성을 구하게 된 그레고리우스. 이후 마치 연쇄 작용처럼 일어난 서점 방문, ‘아마데우 드 프라두’라는 포르투칼 의사의 책을 발견한 것 등등..


그렇게 그레고리우스는 정말 별안간, 무작정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반응하여 포르투칼행 기차에 오른다. ​


이후 그는 부족한 포르투칼어 실력으로 프라두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번역해 읽어 나가고 프라두의 족적을 찾아 나선다.

(**스포)


프라두는 평생 스스로를 설명하고 해명해야만 했다.

독재정권의 포르투칼에서 생전을 보내야 했던 프라두. 그는 등이 굽은 판사 아버지를 두고 있었고 어릴 적 독재정권 하에 부당한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재단했다. 이후 그는 의사가 되었고 그의 병원엔 세심하고 친절한 그로 인해 늘 사람이 많았다. 그런 그의 인생을 한 순간에 나락으로 잡아 끌고갈 사건이 발생한다. 독재정권하에 악명 높은 비밀경찰를 살려 준 것. 더 정확히 표현하면 죽게 내버려 두지 않고 응급처치를 해준 것이다. 그는 의사이니깐.

이 사건으로 그는 ‘성공한 의사’라는 수식어와는 영원히 작별하게 된다. 비밀경찰을 살려준 것에 대해 스스로 의심은 하지 않았다고 난 생각한다. 다만 평생 자신에게 따라다니는 검은 그림자가 무서웠고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속죄하는 마냥 그는 독재정권 저항운동의 길을 택한다.

그레고리우스는 이런 프라두의 책을 읽고 또 읽고 그가 포르투칼에서 감내해야만 했던 인생을 돌아본다. 소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실재하는 나라는 존재와 경험을 통해 변화하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건가?’ 책에 등장하는 구절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관통하는 큰 메세지이다.


치열하게 자신과 아버지, 친구,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사색했던 프리두. 그를 멀리 떨어져서 보게 되면서도 이런 과정은 그레고리우스와 독자인 나에게도 스스로의 내면에 더 다가가게끔 만들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게 만들었다.

다시 스위스, 베른에 돌아온 그레고리우스는 여행을 떠나기 전과 같은 인생을 살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고어를 가르치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고.. 그렇다고 그가 그 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무나 인상적인 구절이 많았다. 특히 프라두와 아버지가 나누지 못한 편지 문구들은 몇번이고 다시 읽게 되었다. 평생에 걸쳐 인생의 의미를 찾고 고민하고, 또 글을 썼던 프라두.

1.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2. 이제 막 역을 출발하는 기차가 뒤에 남겨놓은 것은, 그레고리우스 자신의 한 부분이었다.​


3. 그레고리우스는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용한 고어들을 그 무엇보다도 더 숭배하며 사랑하는 소년이 아니라, 그 때 돈 상자에서 돈을 꺼냈던 그 소년이 자기 인생을 결정했더라면 그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4.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5. 프라두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 그대로였던 때는 자기 인생에서 단 일 분도 없다고 확신했다.

6.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스치며 지나가는 밤의 만남처럼 언제나 서로에게서 벗어나고, 추측과 생각의 단상과 날조된 특성들만 우리에게 남겨두는 건 아닌지. 만나는 게 사실은 사람들이 아니라, 상상이 던지는 그림자들은 아닌지.

7. 자기 삶과는 완전히 달랐고 자기와는 다른 논리를 지녔던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까. 이게 가능할까. 자기 시간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자각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은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8. 현재에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부여하는 것은 죽음이다. 시간은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 있는 시간이 된다.

9. 실망이라는 향유. 실망은 불행이라고 간주되지만, 이는 분별없는 선입견일 뿐이다. 실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원했는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으랴? 또한 이런 발견없이 자기 인식의 근본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러니 실망이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함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랴? 그러므로 우리는 실망을, 없으면 우리 인생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한숨을 지으며 할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취급해서는 안 된다. 우린 실망을 찾고 추적하며 수집해야 한다.​

10. 원래 호칭은 ‘존경하는 아버지’였지만 나중에는 ‘존경하는, 그러나 두려운 아버지’로 바뀌었고, 다시 ‘사랑하는 아빠’가 되었다가 결국은 ‘남모르게 사랑하는 아빠’로 변했다.

11. (아버지가 프라두에게 쓴 편지중) 널 법정에서 보았을 때, 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그 때 여자 절도범에게 판결을 내리고, 그녀를 감옥으로 보내야 했다. 법이 그걸 요구하니까. 넌 왜 재판석에 앉은 나를 마치 고문기술자 보듯 했을까? 네 눈빛이 날 마비시켰고, 난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12. (아버지가 프라두에게 쓴 편지중) 부치지 못한 편지를 너에게만 무수히 많이 쓴 게 아니다. 법무부에도 계속 썼고, 한 번은 그 편지 가운데 한 통을 중앙우체국에 가서 부쳤다. 그냥 두었더라면 법무부로 배달됐을텐데.. 난 나중에 그 편지를 배달하는 집배원을 거리에서 붙들었다. 그는 불쾌해하며 자루를 몽땅 뒤졌고, 날 정신 나간 사람 보듯이 경멸 섞인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난 다른 편지들과 마찬가지로 그 편지도 강에 던졌다. 모반의 잉크가 지워지도록. 이제 이해하겠니?

13. 판사가 죽기 하루 전 날이었다. ‘싸움은 이제 끝났다. 내 아들아, 이제 작별을 맞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넌 나 때문에 의사가 되었지. 네가 내 고통의 그림자 속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에게 빚이 많구나. 내 고통이 여전하고, 내 저항이 이제 무너지는 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 열쇠를 사무실에 두고 왔다. 그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고통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 실패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낯설 테니까. 내가 죽으면 넌 날 용서하겠니?’

13.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 알지 못해요. 그게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예요. 그러다가 그게 나타나면 단 한순간에 확실해지지요.

14. 그레고리우스는 사진을 다시 훑어보고, 또 한 번 보았다. 과거가 그의 시선 아래에서 얼어붙기 시작했다. 기억은 과거를 고르고, 조절하고, 수정하고 속일 것이다. 기억 말고는 다른 근거가 없으므로, 누락과 비틀기와 거짓을 나중에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이 소름 끼쳤다.

15.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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