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중 아빠가 제주대학교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2022년 6월 17일, 엄마 아빠와의 제주도 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비행기 이륙 2시간을 조금 남겨두고 공항에 모인 세 사람은 모처럼의 외출에 각자의 설렘을 남 모르게 품었다. 조금의 투닥거림은 있었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여행이니 모든 걸 준비했던 내 계획들은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 후 저녁을 먹고 해안도로를 산책 한 뒤 제주시 연동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생각보다 방은 조금 작았지만 하루 묶기엔 부족하지 않았고 TV에서 방송되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다가 우리 가족은 사이 좋게 잠들었다. 다음 날 일찍이 체크아웃을 하고 예약을 해두었던 조천읍 거문오름으로 향했다. 예약 시간을 앞두고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가이드 분의 설명을 듣고 코스길을 따라 오름을 올랐다. 십분 정도가 흘렀을까. 중간 전망대에 도달해서야 뒤쳐진 아빠를 발견했다. 얼마나 흘렸을 지 짐작도 안되는 땀으로 범벅이 된 아빠 모습은 조금은 이상하게 그리고 꽤나 위험해 보였다.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한 엄마의 결단으로 우리는 중간지점까지 겨우 내려와 119를 불렀고 제주대학교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119에는 보호자 1명만 탈 수 있다고 하여 나는 렌트카로 뒤따라 제주대학교 병원으로 향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팔 다리와 심장을 부여잡고 겨우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오름을 오르기 전까지 일상과 여행 사이를 평화롭게 오가던 시간이 한 순간에 멈췄다. 온 세상이 멈췄다. 그 곳이 제주도였는지 내 고향이었는지 현실감이 없었다. 아빠의 뇌졸중이 다시 재발했고 상태가 호전되기 전까진 비행기 탑승은 무리인 거 같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그렇게 아빠는 제주대학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가족 여행은 일 순간에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게 했고 COVID-19, 아빠의 상태 등 여러가지 사항으로 보호자 1인인 엄마는 무조건 병원에 상주해야 했다. 본격적인 여행을 앞둔 둘째 날 부터 나의 일정은 숙소-병원-숙소가 되었고 혼자 남겨진 시간 동안만 우울과 슬픔을 허락했다. 내가 괜히 제주도를 오자고 한 걸까, 오름을 오르는 동안 왜 아빠를 챙기지 못했을까, 와 같은 못난 생각마저 나를 주제넘게 괴롭혔다. 각종 검사를 통해 아빠의 뇌졸중의 원인을 찾아냈고 그 동안 나는 원래의 일정대로 우선은 집에 돌아왔고 며칠 뒤 다시 연차를 내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제주대학교 병원으로 갔다. 정말 다행히도 일주일이 되던 날부터 아빠는 눈에 띄게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고 며칠 뒤 퇴원해도 좋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본가로 돌아온 지 한달이 다 되어간다. 제주도에 다녀온 일이 당시에는 억겹의 시간과도 같았는데 집에 와보니 마치 전생 처럼 느껴진다.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시간 속에서도 당시를 복기해보면 어쩐지 미소가 지어지는 일들이 떠오른다. 약 10일간의 시간동안 엄마 아빠와 나는 ‘늘 거기, 우리 자리’라며 우리만의 스팟을 만들기도 했고 사람이 없는 주말엔 병원을 공원 삼아 산책타임을 가지기도 했다. 웃어야 할 상황은 아니지만 어쩐지 미소가 번졌고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고난, 내 현실이 간단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 모두 함께 받아들여야 할 변화와 노력해야 할 과제가 하나씩 생겼다. 적어도 나는 지금 모든 것이 감사하고 1분 1초 천천히 일상을 음미하고 누리고 싶다. 출근 후 점심 시간이 되면 엄마와 통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졌고 우리 모두 조금씩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또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불안감은 각자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지고 살아간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지만 그러기에 이제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 또한 새삼스럽다. 모두가 힘든 발걸음을 떼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온전히 현재만 포착하고 가족들과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일상적인 습관을 배울 것이다. 오름에서 만났던 전망대는 관광객들에게는 쉼표이고, 우리 가족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그널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걱정보단 긍정이라는 것도 잘 알기에.
얼른 오늘도 푹 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