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주 Aug 02. 2022

영원히 당신의 미결사건으로 남겠어요.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영화 <헤어질 결심>은 마치 하나의 문학작품과도 같은, 적어도 내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화였다.

 산에서 시체가 발견됐고 장해준(박해일)과 송서래(탕웨이)는 사건 담당 형사와 사망자의 아내로 만나게 된다. 그녀를 의심함과 동시에 잉크가 번지듯이 서래에게 빠져드는 해준. 영화는 예상대로 해준과 서래의 위험한 관계를 중심에 두고 극을 전개해 간다. 해준이 서래에게 서서히 스며들게 되듯이 영화 또한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극에 스며들게 만든다.


 중국인인 서래는 미숙한 한국말을 구사한다고 스스로 표현하지만 그녀가 극 초반부터 발화하는 단어, 대사들은 영화의 톤앤매너를 그대로 보여준다. ‘마침내’, ‘공교롭게도’, ‘단일한’… 등과 같은 애매한 표현들은 다시 해준의 입을 통해 나지막히 반복되고 영화를 다 본 관객들에게도 깊은 잔상을 남긴다. ‘마침내’ ‘헤어질 결심’ . 서래의 남편 기도수의 사망사건이 종결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해준과 서래는 해준의 본가인 이포(영화속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에서 재회한다. 새로운 남자의 아내가 된 서래. 왜 이포에 돌아왔냐는 말에, 왜 그런 남자와 결혼했냐는 해준의 물음에 서래는 당신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 한 결혼이라고 대답한다. 얼마나 모순적인가.


 이 둘은 공식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이렇다할 육체적인 관계도 나누지 않았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 절절하게 사랑을 고백했다. 기도수(송서래의 첫번째 남편)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서래를 처음 본 순간부터 해준은 이미 사랑에 빠졌다. 수사를 명분으로 해준은 서래를 관찰했고 그녀의 일상을 탐미했다. 사건현장을 촬영하고 사진들을 모아 두는 수사 패턴을 가진 해준은 역시나 서래의 사진들이 자신의 공간을 침범하도록 허락했다. 입 밖으로는 모호한 단어들을 내뱉고 고백은 깊이 삼켜 버리지만 둘은 누구보다 서로의 삶에 서서히 또 깊숙히 번지고 있었다. 이렇게 영화는 느와르와 로맨스의 장르를 변주하고, 또 동시에 결합시키고 그리고 철저히 분리한다. 영화는 주인공 박해일과 탕웨이를 기준으로 다양한 조연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로맨스와 느와르, 각 장르의 역할을 극대화 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제일 느와르적인 옷을 입은 홍산오(박정민)는 로맨스의 장르를 충실히 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홍산오를 잡기 위한 해준의 대사들은 다시 느와르와 로맨스를 변주한다. 더불어 해준의 ‘붕괴’사건을 기점으로 영화는 전환되는데 해준 후임으로 등장하는 고경표와 김신영 배우가 각 챕터에 등장하며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이러한 편집 혹은 연출 방식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 <아가씨>에서도 등장한적 있는데 <헤어질 결심>에서도 두 인물의 헤어질 결심이 무색하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모호해지고 밀물처럼 해수면을 다 덮어버릴 정도가 되버린다.  


 서래가 살던 집의 벽지, 서래의 감정변화와 결을 함께 하는 환복, 극단적인 숏, 스마트기기의 활용법 등 이 영화에 관해 할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나머지는 다 생략하고자 한다. 사랑한다고 발화한 적 없지만 사랑을 주고 받았던 이들처럼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 또한 했기 때문이다. 서래는 해준 앞에서는 죽은 남편의 아내, 과부, 불쌍한 여자가 아닌 사랑을 받고 유일하게 그를 재울 수 있는 여자였다. (극 중 해준은 심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본인으로 인해 ‘붕괴’된 해준 앞에 서래는 헤어질 결심을 깨트리고 영원한 미결사건으로 남고자 택한다. 이토록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가 ‘마침내’ 나에게 왔고 ‘공교롭게도’ 가까운 몇 년 동안은 만나지 못할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운 핏빛 동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