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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Nov 11. 2022

현재의 나를 바꿀 수 없다는 확신에서 오는 안도감.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를 보고,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우리 선택의 결과값이다. 그리고 여기 '에블린'이라는 결과값의 주인공이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중국인이다. 영화는 세무조사로 영수증 더미 속에서 고군분투중인 그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 날은 유난히 그녀에게 더 시끄럽기만 하다. 아버지의 환영 파티도 준비해야 하고 세탁소는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으며 다정한 남편은 답답한 모습으로 그녀를 힘들게 한다. 세무조사도 끝내야 하는 데 하나뿐인 딸은 하필 그 날 할아버지께 여자친구를 소개하겠다고 한다. 모든 것이 그녀를 지치고, 또 지치게만 한다. TV에 나오는 근사한 궁궐 속 남녀 주인공의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가다가도 금새 현생으로 복귀 해 모든 일들을 쳐내야 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런 에블린의 삶과 본인의 삶을 교환하자고 하면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 대부분이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반대로 에블린에게 다른 누군가와 본인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그녀는 과연 어떻게 답할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이하 에에올)은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통해 이러한 질문을 에블린과 우리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영화는 극한의 현실주의에서 판타지로 장르를 전환하다. 또 다른 멀티버스에서 온 그녀의 남편은 고통받는 세탁소 주인 에블린이 지금 위기에 쳐한 세상을 구할 구세주라고 한다. 그 이유는 전 멀티버스를 통 틀어 그녀가 최악의 버전이므로 다른 멀티버스의 존재하는 그녀의 모든 능력을 빌어와 빌런과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삶을 겪고 나서 포기할 수 있을까?


 에블린과 대적하는 영화의 빌런은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딸, 조이다. 조이는 에블린이 고군분투하는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고 극단적 허무주의로 중무장한다. 그녀는 일찍이 어디서든 모든것이 한꺼번에 가능한 멀티버스의 세계관을 경험해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우습고 무의미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라는 역설의 가치를 말하기로 택한다. 극 중 멀티버스 간 접속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 괴상해 보이는 우연의 근거한 행동(예를 들면 신발을 좌우 바꿔 신거나, 립스틱을 먹는다거나 등)이 조건이 되어야 한다. 에블린은 어딘가에 자신보다 조금 근사한 본인의 능력을 빌려오기 위해 우연과 무작위에 목숨을 건다. 이런 일련의 황당하고 사소한 행동은 버스점프에 성공하기도 혹은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다른 누군가의 삶으로 다른 조직으로 혹은 알지 못했던 내 모습으로 접속하는 순간 또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사소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에블린도 마찬가지이다. 셀 수 없는 멀티버스 속 본인이 최악의 버전이길 원했던 건 절대 아니였을 테니깐. 그저 매순간에 진심을 다했던 모든 에블린이 모든 곳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영화 초반 에블린이 자신을 거쳐간 수 많은 선택들, 사람들, 상황들을 파노라마처럼 마주한 장면부터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여정을 시작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가정을 지키려고 했을 뿐인데. 에블린이 너무 애틋했다. 동시에 나 또한 너무 애틋했다. 그리고 이런 나를 질책하며 어느 멀티버스에서건 나를 구하러 올 엄마가 떠올랐다. 본인 엄마 또한 극단적 허무주의나 베이글(극 중 조이는 베이글이라는 본인만의 블랙홀을 만들어 자멸하려고 한다)같은 소리는 집어 치우라고 내 등짝을 때려 줄 것만 같다. 결국 극 중 에블린이 생각해낸 치트키는 '무조건적인 다정함'이었다. 극단적 허무주의인 조이 앞에 '무조건적인 다정함'으로 중무장해 그녀를 붙잡는다. 이제 그녀에게는 세상을 구한다는 전우주적 가치보다 조이를 지금 이 곳으로 데리고 오는 게 더 중요하다. 수 많은 우주에 존재하는 슈퍼히어로같은 에블린의 능력이 아니라 하찮고 우스워 보이는 선의로 말이다. 


 이 모든 멀티버스 세계관은 돌고 돌아 엄마 에블린과 딸 조이, 모녀관계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모든 근사한 삶을 뒤로하고 에블린은 다시 최악의 나로 돌아오기를 '택'한다.


p.s 과연 양자경의 멀티버스같은 컨셉이었다..! 역시 와호장룡 액션 짬바.. 눈알 스티커를 붙이고 쿵푸를 하는 배우 양자경에게 리스펙을!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동시에' 가능한 멀티버스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 이 글을 쓰는 본인보다 더 근사해 보이는 삶이 있더라도, 나를 끊임없이 구해줄 그녀가 있기에 나 또한 실패해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런 영화를 추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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