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감히 감내해가며 써내려간 무언가.
영화 <시>는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학생의 자살이라는 큰 사건이 중심에 자리한다. 가해자 중 한명인 손자와 그런 손자를 혼자 돌보는 할머니, 양미자. 그럼에도 영화는 감정적 동요를 요구하거나 격양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 미자는 시를 쓰고 싶어한다. 어릴 적 선생님께 ‘미자야 넌 나중에 커서 시인이 되겠다.’라는 말을 들었던 미자는 조금은 순수하지만 때로는 엉뚱하다. 경기도에 위치한 작은 도시, 간병일을 하러 갈 때도 시 수업을 들으러 갈 때도 그녀는 늘 깔끔하고 예쁘게 치장을 한다. 아름다운 것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그녀지만 시는 생각만큼 쓰이지 않아 고민이다. 손자의 범죄 사실을 두고 가해자들의 부모님과 향후 해결을 논의하는 중에도 미자는 혼자 꽃을 보며 시상을 떠올리는 다소 어이없는 행동을 한다.
미자가 그토록 시를 쓰고 싶어했던 이유는 무엇 일까? 영화 초반, 미자는 종종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는다며 정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리지만 후반에서야 그 이유가 미자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기 때문임이 밝혀진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강사님의 말씀처럼 잃어가는 아름다움을 기록해두고 싶은 미자의 욕망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끝나기 십분 전 미자는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를 완성한다. <아네스의 노래>는 미자의 목소리로 낭독되다가 죽은 여학생, 희진의 목소리로 낭독되어 끝이 나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난간에 서 있는 희진의 모습으로 영화도 끝이 난다. 시 <아네스의 노래>의 시상은 아름답지 않다. 미자의 삶도 아름답지 않다. 어쩌면 지금이 미자의 인생에서 제일 고독하고 비릿한 순간 일지도 모른다. 미자는 잃어가는 명사와 문장 속에서 마침내 삶을 감내해내고 시를 써내려 간다. 미자의 시는 마치 산고의 고통과도 같이 배출된 무언가다. 영화 <시>는 미자의 삶과 시를 씀이라는 행위가 여학생의 자살이라는 사건을 포함하는 더 큰 원소로 위치하게 설정했다. 미자는 손자의 범죄 행위를 들은 후에도 종욱에게 똑같이 밥을 해주고, 발톱을 깎아주고, 같이 배드민턴을 친다. 희진을 추모하는 교회에서는 어떤 동기로 몰래 희진의 사진을 훔쳐 온다. 혼자 학교 과학실에도 가보고 희진이 자살했다는 다리 위 난간에서 아래를 바라보기도 해 본다. 그렇게 미자는 삶의 모든 비극과 희극을 소화해내고 나서야 시를 완성하고 영화에서 퇴장한다. 그녀가 그토록 시를 쓸 수 없었던 이유와 그제야 시를 완성할 수 있었던 용기를 이제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