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떼
사십년지기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직업은 너무도 다르고 상황도 아주 다르지만 예나제나 어쩌면 그리 한결같은지 놀라웠습니다. 문득 왜 그토록 한결같은지에 대해 생각이 미쳤습니다. 왜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낯익음만을 보는 것일까요? 그 의문에서 다음과 같은 답을 얻었습니다. 정체성이라는 건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정체성은 늘 한결같은 제 화두입니다. 이십여년 전 이 블로그를 시작할때 제목은 내 삶의 의미를 찾는 그날까지였지요. 프랑클에게서 얻어온 그 문구는 정체성에 대한 답이기도 했던 겁니다. 죽는 날에야 비로소 내 삶의 의미는 완성된다는 것. 그것은 나의 소명이라는 것. 여전히 그 화두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군요. 아래처럼.
내 안의 신이 그대 안의 신을 만나는 순간: 나마스떼(0704)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사장님을 불러 주문하는 것이 아닌
아이패드로 주문하는 식당에서
삼십년 만에 독일에서 영구귀국하는 동창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십년 지기 동창들의 얼굴에서
낯익음만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그 긴 세월동안 각자가
추구하던 소명에서 한치도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그 연유 아닐까.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으로 더욱 다가갔다는,
어떤 고통이 있어도 그 소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업장이 모두 타버리는 절망 속에서도
삼기 암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목표를 내려놓지 않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닌지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더욱 더 자신다워졌다는 것은
늘
새로 태어나는 삶에서
한 번도 자신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증명일 것이다
낯선 영역에서 손을 내미는
그들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한다
나마스떼.
내 안에 있는 신과 그대 안의 신이 만나는 순간이므로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