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명상/당신 안에서/작자 미상

당신의 소명, 당신의 삶 자체가 명상

by 이강선


꽃을 찍기 위하여 걸음을 멈춥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쪼그리고 앉습니다. 꽃을 찍는다는 의도를 세운 후에 갖추는 자세지요. 그런 뒤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때, 꽃이 흔들리지 않는 때를 기다려야 하거든요. 휴대전화를 갖다 대면 어떤 꽃은 찍히기를 거부합니다. 바로 이 닭의장풀처럼요. 이 풀을 보고 몇 주를 기다린 것 같은데 그런데도 쉽게 찍히려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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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인했다가 줌 아웃했다가, 얼마나 여러 번 실패했는지요. 그런데도 기다려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이라고 해도 제대로 담기 위해서는 존경이 필요한 법이지요. 개미가 팔을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기어가도 움직이면 안 됩니다. 명상의 요건 중 하나에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있습니다. 개미를 떨쳐내고 싶지만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꽃을 찍기 위해. 그러기를 몇 차례 되풀이하는지요. 기어이 마음에 드는 한 컷을 건집니다.


누군가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깨달은 이들은 목표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다리는 과정에 진실이 있다고들 하지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마지막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마지막을 향하여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꾸준히 개미처럼 가는 그 과정이 바로 나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지요.



사실 이 모든 일은 시를 읽거나 글을 쓰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일과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시를 읽기 위해 적절한 공간을 찾아야 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고 책을 뒤져야 하고, 이윽고 시에 빨려 들고 천천히 시를 읽어가면서 주변에서 생겨나는 소음과 귀찮은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미루고. 온전히 시에 잠기는 그 일. 그 일은 우리가 삶에서 내 목적, 내 소명을 이루기 위해 혹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기 위해 하는 일과 동일하지요. 그러므로 그 사실을 깨달은 이가 아래와 같은 시를 쓰지 않았을까요.






당신 안에서/작자 미상




모든 사물은 당신의 마음을 통해

신을 발견한다.

하늘의 별이나 땅의 진흙덩이도

당신을 통해 신에게로 향한다

당신이 장미를 보고 칭찬하면

행복한 장미는 땅에서 하늘로 향한다

여름 바다의 파도는 당신이 바라보는 순간

갇혀 있는 상태를 벗어나 당신의 품속으로 밀려온다.

당신이 잠들어 있을 때

밤의 눈은 천국을 그린다

당신이 경외감을 갖고 높은 산을 바라볼 때

산들은 비로소 창조주에게로 가까이 간다.

당신이 작은 호수에 모습을 비출 때

작은 호수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영원으로 향한다.

그리하여 당신 안에서 자연의 순환은

마침내 원을 그리며 완성된다.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47




철학자 최진석은 누군가 해석해 놓은 말을 따라가느냐 의문을 갖고 그 말을 곰곰이 뜯어보느냐에 따라 주체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라진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해놓은 말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나라는 의식이 무엇인지, 그 문안에 들어서지도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사물이 당신으로 인하여 형체를 갖추고 당신 덕분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경이를 발견한다는 이 시를 읽고 정겨웠던 것은 그러한 생각을 저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마저도 타인에게서 얻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왜 우리는 사물을 끌어들여 내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그로 인해 사물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분명 자연은 우리와는 상관없이 존재하는데 말입니다. 왜 우리는 사물이 우리로 인하여 영원으로 향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분명 그 호수는 이미 그곳에 있었고 어쩌면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적 영혼은 모든 사물을 영원한 본성의 측면에서 인식한다고 말합니다. 빛이 생겨날 때부터 이미 있는 밤, 생명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산, 이미 열려 있었던 호수, 이미 있었을 장미, 그 모든 것은 존재라는 속성에 만납니다. 그 모든 것은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시간을 통해 변해가고 나는 물질들의 속성을,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그 원소들로 이루어진 것이니까요.


영화 <제5 원소>에서 이미 모아져 있던 물과 흙과 바람과 불, 그것들을 완성하는 제5 원소는 바로 사랑이었지요. 그 사랑은 우리 생명 안에 있습니다. 생명은 사랑이라는 것,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물들을 마음에 담는 순간, 우리가 인식하는 순간부터 하늘과 땅과 호수와 산과 파도와 밤은 비로소 생기를 띠고 살아나며 한편으로 경이감을 불러일으키지요.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고 있는 그것들은 신으로 가는 방도이기도 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자연을 바람을, 산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순환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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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찍은 닭의장풀입니다. 찍느라 애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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