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신어 강의를 듣다

동서지행 옛적길의 속신어 강의

by 이강선



속신어 강의를 듣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옛적 길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간 사정이 안 되어 모임에 참여하지 못했었지요. 어제 강의는 강북구청앞 카페 로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작고 아담한 카페에는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손님들은 주문해서 음료를 받아 나갔습니다. 강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였을까요. 장소를 제공해주신 로담 사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물론 저는 모든 혜택을 누리기만 한 사람이라 주최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강의를 해주신 분은 속신어 사전을 내신, 어쩌면 한국 구비문학 집대성자의 한 분이신 최래옥 교수님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슴 뛰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한 학자의 일생이 담겨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학자가 내놓은 결과물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밀접해 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 민족의 삶, 구전 문학, 민속, 샤머니즘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는 속어들인지라 의식의 밑바닥에 가 닿은 느낌이 들었던 겁니다. 칼 융이라면 그가 내놓은 결과물을 보고 집단 무의식의 보고라고 할 겁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 속신어 사전에 대해 들은 바 있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그 의의를 이미 알아채고 속신어 사전을 구입했고요. 한편으로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어제는 교수님의 자서전격인 학문 인생을 듣는 것으로 그쳤지만 사실 학문 인생이란 그 학문의 의의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한 사람이 어떤 학문에 평생을 바친다면 그건 그 학문의 매력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 학문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학문은 없는 것을 연구하는 게 아닙니다. 학문은 이미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 언어로 체계적으로 구체화하는 일이지요. 그러므로 누군가의 삶을 듣는다는 것은 그의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아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교수님의 책 증정으로 시작된 강의, 그리고 말띠는 왜 팔자가 사납다고 하는지로 시작한 그 강의의 중간과정을 어떻게 말할까요. 강의를 들으면서 그렇지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의 연속? 영문학을 전공한지라 저는 전생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스님과 이와 멧돼지가 등장하는 전생 이야기였습니다.



잘 나가는 재상의 부인이 어느 날 재상을 떠났다지요. 재상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신의 부인이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뒤진 끝에 한 섬에서 부인을 찾아내었습니다. 부이은 주막에서 주모 노릇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더랍니다. 놀라고 속상한 재상은 부인에게 돌아가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지금이 행복하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재상은 아무리 해도 알 수 없어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사정을 털어놓고 어찌된 연유인지를 물었습니다. 스님은 재상에게 전생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전생에 재상은 스님이었고 부인은 이였으며 주막 주인은 멧돼지였다고 합니다. 이는 스님의 피를 먹고 살아갔는데 어느날 스님이 너무 더워 이를 내려놓았다지요. 이는 멧돼지에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스님은 재상, 이는 부인, 멧돼지는 주막주인이라는 것이었지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하늘을 떠다니는 섬, 라퓨타이야기입니다. 라퓨타에 나오는 한 재상 이야기는 저 이야기와 정확히 같았습니다. 물론 전생 이야기만 빼고요. 동양이나 서양, 어디에나 있는 일이라는 의미지요. 부자 남편과 부인, 그리고 비천한 평민. 저는 저 전생 이야기에는 의구심이 갑니다만 여성이 찾는 행복은 돈과 지위가 아닌 진실됨이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러한 여성의 이야기를 재상과 부인, 그리고 주막주인으로 혹은 노예로 만들었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는 그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조상의 지혜가 반영된 “밤에 산길을 갈 때는 가슴을 열어야 한다” 와 같은 속신어들을 들었습니다. 왜 그런 속신어가 나왔는지에 대한 분석과정을 들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한 두 개가 아닌 사만 삼천개라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은 속신어 형성 과정을 생활, 생존, 도덕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셨습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는 속신어가 탄생한 배경은 생활이요, 그 속신어의 존속 과정은 생존이요, 그것이 우리의 도덕에 맞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가치관을 보존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였지요.



여기서 저는 얼마 전 번역한 『더 리얼 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리얼리즘은 보통 사람의 생활에 밀착해 있지요. 리얼리즘 작가들이 그려낸 것들이 도덕적인 사실들을 그려내고 있을 때 그 작품은 오래도록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는데요. 생활, 생존, 도덕이라는 키워드에 들어맞는다고 여겨졌습니다.

자리를 옮겨서 교수님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지역명이 주를 이루었지요. 서울의 지형과 그에 맞는 지명, 강과 연관된 지형이야기, 조건 입지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큰 주제가 민족과 역사에까지 이르른 것이었지요. 어쩌면 불교의 교리와 그다지도 동일한지요. 조건이 그 사람의 삶을 만든다는 것, 옆에 앉은 선생님은 그것이 주역이라고 하더군요. 삶앎은 사람이라고 정리하셨는데. 저 역시 앎이 생을 바꾼다는 데 동의하는 터라 연방 고개가 주억여졌습니다..



문득 깨달은 바 있었습니다. 아니 새삼 실감한 것이지요. 말과 이야기는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 말은 생기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돋우어 준다는 사실이지요. 우리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의 힘은 내게도 생기를 줍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래서 타인에게도 듣기 좋고 유쾌한 것이지요. 물론 내가 나를 사랑해서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유의미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다. 삶의 의의는 거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나를 사랑해서 하는 이야기가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그리하여 후대에게 사람과 삶앎을 전하는.
#속신어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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