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명상/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시킨

by 이강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괴로운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간 이발소에서 액자 속 시 한 편을 만났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이 시는 당시 이발소뿐 아니라 여러 공간에 걸려 있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지요. 짧고 쉬운 구절, 리듬감 덕분에 쉽게 외웠습니다. 아마 이 시를 외우는 게 유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현재는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라는 구절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시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첫 구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좀처럼 진전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삶이 우리를 속이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세운 기대치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서 오는 좌절감이 '속임'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노력에 비례하는 보상, 즉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라는 암묵적인 기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는 비단 저만의 기준이 아닌, 많은 이가 공유하는 신념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삶에서 그 기준이 충족되는 때는 많지 않았을 겁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살아가니 저마다 다른 그 기준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성장하면서 더 큰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내 세계가 넓어질수록 더 많은 사람과 더 큰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그러므로 나 자신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때 와닿는 구절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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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1799-1837)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이 구절들이 아닐까요?지나가는 것은 시간이고, 내가 살아낸 삶입니다. 현재는 비록 슬프지만 견디다 보면 기쁨의 날이 오리라고 한 것은 푸시킨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통찰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조상, 할아버지는 흑인이었습니다. 가족 중 그만이 할아버지를 닮아 외모가 독특했다고 하지요.


흑인 조상으로 인한 사회적 편견과 그의 외모(키가 작고 볼품없었다고 전해지는)에 대한 평가는 그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뛰어난 재능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능이 오히려 황제의 미움을 사 작품 검열을 받기도 했습니다. 낭만주의 시인답게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아름다운 아내를 맞았지만, 아내로 인한 비극적인 결투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개인적인 고난과 사회적 압박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역경 속에서 빚어낸 이 시는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그의 시는 '삶은 슬프고 현재는 우울하지만, 순간적인 모든 것은 지나가면 소중하게 된다'는 만고의 진리를 담고 있으며, 이는 시인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시인의 생애는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이 시는 시대를 초월합니다. 고통스러운 순간조차도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라는 그의 메시지는 아직도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이 구절은 현재는 순간이지만 그 현재가 지나간 과거는 소중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이 구절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현재를 수용하고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을 수용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도록 할 겁니다.


이 구절이야말로 자신만의 시각에서 깨어나 온전한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런지요. 모든 것이 온전하다는, 모든 일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시각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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