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명상/지하철 역에서/에즈라 파운드

by 이강선

지하철역에서/에즈라 파운드



군중 속에 나타난 이 유령 같은 얼굴들:

젖어 있는 어두운 가지 위의 꽃잎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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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아주 짧습니다. 일본의 하이쿠를 연상시키지요. 한편으로는 선시를 연상할 정도로 극도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강렬합니다. 이 시를 읽을 때의 충격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수업 중에 꼼짝을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어두운 지하철 역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선연히 떠올랐으니까요. 아니 얼굴이 꽃잎처럼 떠올랐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 이미지에 사로잡혔던 것이지요.


에즈라 파운드는 파리의 지하철 정거장에서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1912년 파리는 벨 에포크 시대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역사와 문화가 아름다움의 절정기에 있던 시대에 기계가 도시를 누비고 다닙니다. 지하철은 동굴을 연상시킵니다. 실제로 그러합니다. 지하철이 다니는 길은 저 아래 지하에 뚫린 동굴이지요. 플랫폼 가장 앞이나 뒤에서 보면 컴컴한 동굴이 보입니다. 그러니 지하철은 바로 그 동굴을 지나다니는 기계고 그 기계를 타고 다니는 우리들, 사람들 역시 기계처럼 표정이 없습니다.


표정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누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물결처럼 흘러갑니다. 지나던 누군가, 내게 다가온다면 그 사람은 단순히 지나가려 했을 뿐이지만 갑자기 그 얼굴은 생기를 되찾습니다. 다가오는 동안 눈이 보이고 코가 보이고 얼굴 전체가 보이면서 환하게 밝아지는 그 모습은 비에 젖어 있는 나뭇가지에 핀 꽃잎 같습니다. 비를 맞은 나뭇가지는 평상시보다 색깔이 어둡습니다. 그러니 이 두 번째 줄은 앞에서 이야기한 군중속에 나타난 유령같은 얼굴을 다시 한번 꽃잎으로 비유하는 것이지요.


독자는 이 이미지를 겹쳐서 봅니다. 내게 다가온 유령같은 얼굴이 바로 꽃잎인양 착각하게되지요. 사실 얼굴이 꽃잎이라는 이 비유는 지극히 적절합니다. 특히 그 대상이 여성인 경우에는요. 혹은 어린아이라도 그러합니다. 물론 남성이라고 해서 꽃잎으로 여겨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화자가 본 것은 구체적인 인간이라기보다는 선명해진 생명의 아름다움이니까요.


즉 화자는 인간 생명의 유한함을 꽃잎에 겹쳐서 그려낸 것이지요. 꽃잎처럼 활짝 피었다가 덧없이 지는 꽃, 제가 이 시를 읽고 벚꽃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겁니다. 추운 날 피어나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꽃, 그러나 그 생명은 짧아 속절없이 져버리지요.


파리의 지하쳘 역이라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시인이 뉴욕에 있었다면 꽃잎이 떠올랐을까요? 인간성의 도시, 시의 도시, 예술의 도시, 그렇기에 시인은 꽃잎을 떠올렸다고 추측합니다만. 오래 된 도시는 그 도시만의 분위기를 갖고 있어 정체성이 선명합니다. 화자에게 시인에게 파리는 인간적 면모가 선명했던 것이고 그 역사가 인간 삶의 신기루 같은 개인의 삶을 떠올리게 했을 겁니다. 사실 생명은 어느 장소에 가더라도 덧없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인연 또한 그러합니다, 아름답다가도 스러지는 것이 바로 인연이지요. 이미지가 선명하다고 해서 이 시는 이미지즘의 대표작이라고 여겨집니다. 시를 읽으면 이미지가 그려진다는 것, 어떤 현학적인 현란함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생명의 아름다움과 유한함에 관한 단상 그 자체가 이미 훌륭한 철학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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