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명상/유리창 1 / 정지용

by 이강선


유리창 1 / 정지용 (鄭芝溶, 1902-1950)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상실의 고통을 끌어안는 법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 1」은 유리창에 낀 성에를 두고 죽은 아이를 떠올리면서 슬픔과 다정함을 동시에 떠올리는 시입니다. 이 오래된 시는 교과서에도 실렸던 적이 있지요. 열없다거나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거나 하는 어휘는 다소 낯설지만 ‘물먹은 별’이라거나 ‘보석’등은 화자가 죽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려주는 한편의 그림과도 같은 시입니다.


제게도 성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제가 청주 요양원에 있을 때 이야깁니다. 암 환자들을 위한 그 요양원에 입소한 것은 한겨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두려움에 질려 있을 뿐이었던 환우들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친해졌지요. 모두가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들을 급속히 친해지게 만든 원인이었을 겁니다.


여러 사람과 친했지만 유독 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방암이 재발한 그녀는 오른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그러하듯 림프부종이었던 겁니다. 제 방은 언덕에 면하고 있어서 소나무만 보였지만 그녀의 방 창문 밖에는 장애물이 없었습니다. 저녁이면 우리는 붉은 해가 서산으로 내려가는 광경을 함께 지켜보곤 했습니다. 노을은 거의 숨 멎을 정도로 장엄했지요. 노을을 지켜보는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녀가 아픈 속내를 털어놓은 것도 그때였습니다. 가정 폭력 때문에 이혼했다가 재혼했고, 그래서 자신은 나쁜 여자라고 하는 그 떨리던 음성, 눈물 고인 눈, 아마 그런 아픔이 그녀 안에서 자라 암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느 아침, 그녀가 숨이 차서 제 방에 들어왔습니다. “강선아, 어서 나와봐. 이걸 좀 봐.”


그녀는 저를 현관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현관은 양쪽 모두가 통유리창이었는데 그 유리창 가득 성에가 피어 있었습니다. 날개 같기도 하고 불꽃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지요. 그녀는 제게 그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새벽에 성당에 다녀오느라 그 성에 그림을 이미 본 상태였습니다. 아까 보았다고 했더니 그녀의 표정에는 실망이 어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후회스럽지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암이 뇌로 전이되었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는데 결국 죽음이 찾아왔던 겁니다.


지금도 성에만 보면 그녀가 떠오릅니다. 가슴이 시리지요.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요. 제게 보여주고 싶어서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왔을 그녀, 어린아이처럼 빛나던 눈동자, 참으로 열없습니다. 유리창의 성에를 생각하면 외롭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녀 때문이지요. 저를 그토록 좋아하던 그녀.


그녀는 제 의식 속에서 또 다른 산새가 되어 저를 보고 있는 셈이지요.


14년이 흘러 완치 판정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저는 아직도 암 환자에게 유독 마음이 쓰입니다. 그녀에 대한 제 회한 때문일까요? 유리창 밖의 그녀, 여기 따스하게 살아 있는 저. 그런 경험 때문에 시명상을 전파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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