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치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신이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치료라고 할 때 그 치료는 무언가 의료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의사와 환자라는 엄청난 간격이 생긴다. 의사는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배운 지식에 의거해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는 의사를 알지 못하지만 그가 내리는 처방과 수술로 생명을 건지거나 그대로 유지하거나 상처를 치료하거나 한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채로, 주권을 의사에게 넘긴 채로 진행되는 이 과정이 치료고 의술이고 인술이다. 이 치료에서 환자는 그저 따를 뿐이다. 분명 내 생명인데 의사에게 나를 맡기는 것이다.
치유는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나를 이끌어가며 내가 나를 책임진다. 단 의료적 지식이 없으므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 분야는 아건강 상태에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중 하나가 스트레스에 관한 이론이자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스트레스를 인정한다.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단어, 스트레스가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수많은 분야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라고 말하면 그 주체가 어른의 것이라고 생각될 것이고 트라우마 혹은 정신적 상처라고 말하면 어른과 아이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부모, 가정환경이라고 논하면 그 상처를 입은 주체는 어린아이로 상처는 아이의 것이 된다. 아이는 어린 시절 다양한 이유로 상처인 줄 모르고 상처받는다. 그것이 가난인 줄 모르고 자라지만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무의식 속에서 굳어지고 고착된다. 그러므로 이미 굳어버린 이 상태를 나의 것이 되어 나의 일상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 상처들을 돌아볼 수 있는 이는 나밖에 없다.
나 아닌 누군가가 나의 상처를 알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그 상처를 아주 훌륭하게 숨긴다. 그런 것들로 인한 영향이 밖으로 드러나도 필사적으로 숨긴다. 나의 온 삶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시는 문학적 기억을 통해 나를 돌아보도록 하는 매체이다.
오늘 시명상 6번째 수업을 했다. 이 수업은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이고 모두가 말하는 수업이며 모두가 쓰는 수업이다. 단 하나의 시만 이야기하므로 시간이 넉넉할 것 같지만 매번 2시간이 부족하다. 오늘 역시 8분 넘어서 끝났다. 그나마 하나는 빼먹고 숙제로 넘겼다.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강사의 능력이라면 나는 매번 그 능력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로 진입하기까지의 시간이 길다. 명상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의도를 세운다. 복습으로 매번 이 강의의 목적을 말하고 이 강의가 어떤 의의인지 말하며 지나온 주에 읽었던 시들을 다시 거론하면서 오늘 어떤 부분을 이야기할 것인지를 말한다. 이렇게 거쳐와서 오늘은 어떤 부분인가를 다시 따라가도록 하는 것이다. 필요 없는 것 같은 이 도입부는 기실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들 각자는 아주 바쁜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며 지금 어떤 맥락에서 이 시를 읽는지 돌이키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 우리는 지금 생애 주기를 따라가며 돌아보고 있는 중이므로. 한편으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차리고 있는 중이므로.
나는 알아차림의 주체가 아니다. 참여자들이 알아차림의 주체이며 한편으로 변화의 주체이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분들이 매번 놀라워하는 것은 큰 소득이다. 관악구 측이 제공한 이 공간에 들어서면 문밖의 자신과 너무도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도 큰 소득이다. 그러나 이 알아차림은 그분들이 솔직하게 꾸려가기 때문이지 결코 내 힘이 아니다. 나는 단지 조력자일 뿐이다.
이렇게 길게 서두를 말한 것은 시의 힘에 새삼 놀라고 있어서이다. 수업을 위해서 나 자신이 무척이나 감명받은 시를 선택한 것은 사실이다. 시들을 고르고 골라서 생애 주기에 맞게 배열했지만 그 주기는 사실 상관없다. 어느 때건 우리는 시의 힘을 빌려서 그 시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기에. 한편으로 어느 때건 시의 힘을 빌려 그 어휘와 연관된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기에.
오늘 다룬 시는 엘렌 바스의 "중요한 것은"이었다. 오늘 시를 읽고 나서 찾아보도록 부탁한 것은, 아니 사실은 시를 읽고 삶과 연결시키도록 부탁한 것은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내 삶에서 있었던 어려움을 겪어내도록 했는가'였다. 저자인 엘렌 바스는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썼다. 그러므로 삶을 사랑하도록 해준 것은 무엇인가라고 해도 상관없다. 아는 것은 모르는 것과 다르다. 어떤 것이 내 안에 있음을 아는 것은 그것이 있음을 모르는 것과는 정말 다르다.
어떤 것이 내 안에 있음을 안 다음, 그것을 그대로 두는 것과 꺼내어 설명하는 것도 다르다. 엄청나게 다르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치유되었겠는가. 꺼내어 이름을 붙이고 설명함으로써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이든 간에) 해결 방안을 찾거나 혹은 다른 수많은 이들이 나처럼 고민했거나 고통받았음을 알게 된다.
시는 그 고통을 표현한 것이고 그런 시를 읽음으로써 나는 연대의식을 느끼며 위안을 받는다.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엘렌 바스는 미국에서 상당히 알려진 시인이다. 그녀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글을 써왔고 자신의 치유를 위한 글을 쓰는 워크숍을 30년 이상 지도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는 매번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고통에서 일어서도록 한 그것은 나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었을 터다. 매력적이지도 잘나지도 않는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었을 터다. 나를 들여다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그처럼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단지 시를 읽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 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