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가지 이유와 한 가지 이유
치유기제 강의를 듣고 난 후 후배와 점심을 먹었다. 숙대 후문 근처의 아주 작은 분식집이었다. 우리가 치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손님들은 모두 떠났고 주인 할머니가 옆에 앉아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후배는 그동안 여러 테라피를 전전했다. 자신에게 맞는 혹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테라피를 찾기 위한 추구였던 것이다. 다년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한 상태에 있었다. 무언가 적절한 것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도 어렵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권한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것이었다. 온전히 삼십 분 만이라도 자신을 들여다보았는가. 그간 배웠던 테라피 중 나를 가장 표현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사실 그것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나도 물론 그러하다.
우리가 일어서자 주인 할머니가 그릇을 가져가면서 한마디 했다. "공부를 많이 한 모양이요.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사실 할머니가 귀를 기울여 온통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으므로 그 멘트가 놀랍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불교도라고 했다. 수행과 명상이 얼마나 쉬운지, 그저 설거지하면서도 할 수 있다고 했으나 당연히 할머니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만트라를 외우라고 알려주었다. 아주 흔하고 쉬운,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할머니의 답은 자신은 영리하지 못해서 나이 먹어서 너무 잘 잊어버려서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났다. 명상도 수행도 너무 어려웠던 것을.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음을 알지도 못했고 누군가 말하더라도 귀에 와닿지도 않았다. 편견, 잘못된 시각은 그런 것이다.
그 시각이 우리의 성숙을 막고 그 자리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할머니가 가장 치유를 필요로 하는 이가 아니었을까. 두려움, 불가능하다는 생각, 그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났다. 하지 않을 이유는 수만 가지지만 해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수만 가지를 택한 이는 평생토록 방황하지만 한 가지를 택한 이유는 고통스러워도 마음이 편하다. 자신을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