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읽으면 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물론 그 글이 묘사하고자 하는 바에 관해 떠올리지요. 그 이미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수도 있고 존재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글 내용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한 바 없다면 이해하는 데 곤란을 겪지요.
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Tower of Babylon) 이라는 단편 소설을 여럿이 함께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단편소설은 바빌론 사람들이 수백년에 걸쳐 하늘끝에 닿는 탑을 쌓아올리는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쌓은 결국 하늘에 닿습니다. 주인공 힐라룸은 엘람(이집트)의 광부로 하늘을 뚫기 위해 고용되었지요.
그들은 단단한 하늘을 파내 일종의 동굴을 만듭니다. 하늘은 위에 있습니다. 위로 뚫고 올라가는 것이지요. 이 일만 해도 상상이 어려운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하늘을 뚫다가 하늘 저수지가 터져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늘 저수지가 있을것이라고 예견헀고(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를 생각해보세요) 그에 대해 대비를 해두었습니다. 물이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내리더라도 방 하나만 피해를 입게 구조화한 것이지요. 문이 자동적으로 닫히게 만든 겁니다. 그 방에 있던 사람은 죽는 것이지요. 물이 위에서 쏟아져내려오니까요.
어려웠지만 어쨌든 여기까지는 상상하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힐라룸은 물살에 휩쓸립니다. 정신없이 떠내려가다가 어느 장소에서 간신히 일어섭니다. 여기저기 까지기는 했지만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지요. 정신이 들자 자신이 어디 있는지 살핍니다.
놀랍게도 그는 땅위에 서 있었습니다. 모래 사막에 와 있었고 멀리 캐러밴이 보였습니다. 그가 익히 아는 풍경이었지요. 한동안 의아해한 끝에 그는 깨닫습니다.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선상에 있다는 것을요.
넉달 반에 걸쳐 탑을 올라갔는데 그래서 하늘에 닿아 하늘을 파내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하늘과 땅이 동일선상에 있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묘사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 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지요. 영어를 몰라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모르니까 영어가 이해되지 않은 것이라고요.
저자인 테드 창이 그려낸 세계구조는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도무지 그 소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겁니다. 다행히 누군가, 아마 우리들과 똑같은 어려움에 부딪힌 사람, 그리고 테드 창의 소설을 좋아한 누군가가 이 소설의 세계 구조를 그림으로 그려놓았습니다. 우리는 그 그림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그건 아마 우리가 머리가 굳은 어른이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경험한 게 많아서 혹은 우리의 사고에 젖어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상상력입니다. 말을 뛰어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상상력의 힘이지요. 우리에게는 그 상상력이 부족했던 겁니다. 상상력은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해내는 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미지에 둘러 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딜 가나 이미지가 넘치지요. 생각할 틈조차 없이 답이 내 앞에 놓입니다.
시각적 이미지가 넘치면 우리 뇌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힘을 잃습니다. 이미지들은 상상력을 잃게 만들지요.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으면 기억의 조각들은 매몰되고 맙니다. 상상력은 뇌의 힘이지요. 뇌신경이 작동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한나 아렌트는 '생각 없음(thoughlessness)'의 무서움을 지적했습니다.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없이 주어진 것을 따른다는 것이지요. 그녀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예를 들면서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악의 평범함'이라고 불렀던 이 일은 일상생활에서 무수히 일어납니다. 우리는 삶의 가지 기준과 정서에 대해 생각할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상상력을 발동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으니까요.
시를 읽는 일은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일입니다. 어디 시뿐일까요. 소설, 기사, 에세이, 글의 형태로 된 온갖 것이 상상력을 키워주지요. 고급 리터러시 능력을 키우는 일이지요.
여기에 명상을 더하면 한결 더 상상력을 잘 발동시킬 수 있게 됩니다. 명상은 일상에서 흔히 지나치는 일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고 순간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만들지요. 명상은 온갖 산란함에서 벗어나 주의력을 집중하거나 혹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도록 하지요.
제가 시명상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