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졌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여전히 계절은 언제 왔는지 모르겠다. 발끝이 시리고 손가락이 시릴뿐. 여행지에서 찍어온 사진을 고르려고 자세를 잡았다. 무언가 불편했던가 보다. 편하게 앉으려는데 무심코 한쪽 다리를 올리는 나를 발견했다. 마음 놓고 앉으려 했는데, 집중하려고 했는데 왜 오른쪽 다리를 올리는 것일까?
습관이다. 무의식 깊숙이 파고든 습관이 반사적 행동을 한 것이다. 의도 없이, 자각 없이 오랫동안 익어온 행동을 했을 뿐이다. 이 습관이 언제 생겼을까. 알 수 없다. 언제부터 이 자세가 편하다고 느꼈을까. 알 수 없다. 이 자세가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는 것은 이 환경에 적응했다는 의미다. 이 환경, 책상 위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바둑판, 그 옆에 독서대, 마우스는 오른쪽에. 눈은 중앙의 모니터를 향하지만 간혹 책을 보아야 한다. 마우스를 잡느라 오른쪽 손을 늘 사용한다. 그 자세 어디에선가 팔이 혹은 몸통이 틀어졌을 것이고 그 틀어짐을 교정하기 위해 한 오른쪽 다리를 올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왼쪽 다리가 아닌 오른쪽 다리를 올려 무의식 중에 균형을 잡았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몸이 하는 일이다. 어쩌다가 몸을 돌아볼 때 느끼는 일이다. 아니 평생 깨닫지 못하고 갈 수도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몸을 들여다보고 있는가. 몸에 쌓인 흔적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
내 몸이 틀어져 있음을 깨닫는 그 일은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과 같다. 간혹 우리가 산에 오르는 것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기 위함이 아니다. 풍경과 기운과 자연을 느끼려 함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안 몸은 제 역할을 하고 몸 에너지의 균형을 찾는다. 굽이를 돌고 바위를 지나고 계곡을 내려다보거나 비탈을 오른다. 그리하여 마침내 정상에 다다랐을 때 혹은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다다랐을 때 움직임을 멈춘 몸은 휴식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 시선은 문득 저 아래를 향한다.
저런 곳을 지나왔던가. 헉헉거리며 오른 곳이 바로 저런 광경을 갖고 있었던가? 겹겹이 겹친 능선을 나는 알지 못한다. 지나왔지만 그곳이 어떤 모습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옆에 저런 산들이 펼쳐져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지나온 길은 좁았을 따름인데 그 길은 산, 그토록 장대한 육지의 일부였던 것이다.
사진 속리산, 조영훈
그 능선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놓여 있을까. 그것은 바로 삶인데 시간과 육체와 감정에 잡힌 우리는 어쩔 수 없지 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산은 경전이 될 수밖에 없다. 11월이 되어 12월로 넘어가는 길목에 선 이가 읽어내는 경전이다.
이 순간은 틀어졌다고 느끼지 못하는 틀어진 몸의 자세를 문득 깨닫는 순간이다. 내 몸에 새겨진 능선 또한 그러하다. 언제나 지녀왔지만, 깃들어 살아왔지만 내 몸의 능선을 얼마나 자주 보아왔는가. 틀어짐을 깨닫지 못하고 얼마나 오랜 세월을 지나왔던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삶과 사랑이 얼마나 많이 비뚤어져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지나왔지만 지금은 11월, 깨달음을 얻을 시간이다. 아직 들과 산에는 나무들이 풀들이 찬연하지만 곧 얼어붙을 터이므로. 12월이 멀지 않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