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피우는 만큼 붉다

시명상/나무들은 때로 불꽃입술로 말한다/이기철

by 이강선

생은 피우는 만큼 붉다


꽃들은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존재일 겁니다. 아무런 껍질이 없으니까요. 아무런 가식이 없이 자신의 내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니까요. 생명의 중심인 암술과 수술을 있는 힘껏 내어놓되 바람에 꽃가루가 날려가지 않을 정도만 내어놓지요. 그렇게 해야 벌을 만나고 나비를 만나 종족을 보존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요.


사람에게 꽃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면, 사람마다 다른 꽃의 이름을 가지게 한다면 벌이 있어서 꽃이 있음을 절절하게 깨닫지 않을까요. 꽃은 자신의 환경을 정할 수 없습니다. 꽃은 주어진 곳에서 온도에 따라 토양의 성질에 따라 다소 변화할 수 있을 따름이지요. 차가움과 뜨거움을 모두 견뎌야 꽃이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만 언제나 활짝 핀 아름다움만을 보려 하지요. 나에게 유익한 그것만을 즐기려 하지요.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길들여진 것은 장미가 자신을 갉아먹는 벌레를 견뎠기 때문일 겁니다. 생이라는 이름으로.


오늘 아침 동네 빌라 화단에서 만난 장미는 서로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쪽에서 보는 꽃과 저쪽에서 보는 꽃이 다르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단지 각도의 차이요 빛의 작용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평생 소박하게 사셨던 나의 어머니가 화단에 붉은 장미를 가꾸셨던 것은, 이 꽃이 고통도 번뇌도 껴안기 때문이 아니었을런지요.



-중략-


생은 결코 수사가 아니다

고통도 번뇌도 힘껏 껴안는 것이 생이다

나무들은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생은 피우는 만큼 붉게 핀다고


(이기철, 나무들은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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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30분 화곡동 어느 빌라 화단에서 만난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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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30분 화곡동 빌라 귀퉁이에서 만난 장미






이 장미 사진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좁디좁은 화단에서 장미가 견뎌낸 척박함이 그대로 묻어 있는 듯했거든요. 얼마나 한껏 피워올렸는지 그 애씀이 절절하게 와닿았습니다. 생은 고통도 번뇌도 한껏 껴안는다는 표현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는 아니 그 반대가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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