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명상
때로 우리는 삶의 의미에 관한 물음에 시달립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물음일 겁니다. 빅토르 프랑클이 말했듯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니까요. 그것은 나의 존재가 가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존재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까요? 혹은 무엇에서 찾을까요?
2021년 미국의 여론 조사 퓨리서치 센터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17개국 선진국 성인 만 구천명에 물어본 결과 그 순위는 가족(38%), 직업(25%), 물질적 풍요(19%)였다고 하지요. 한국만 달랐다고 하는데요. 물질적 풍요(19%), 건강(17%), 가족(16%)이었다고 하는군요. 한국인에게서 그 중요도의 차이가 근소하기 때문에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보입니다만 그럼에도 충격을 안겼습니다.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가족에게 가장 큰 의미를 두었을까요? 가족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나를 이루는 것이되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한편으로 평생토록 내게 영향을 끼치는 관계입니다. 죽어서건 살아서건 그 영향은 막대하지요. 부모님은 돌아가셨더라도 나의 평생을 앞서가면서 영향을 끼칩니다. 형제는 태어나서부터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영향을 줍니다. 나의 아이들은 늘 나의 뒤를 따르면서 영향을 줍니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지요.
물론 가족이 반드시 혈연 관계로 이어진 가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사는 이라면, 함께 하는 이라면 가족이라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가족같은 회사라는 표현이 한 예입니다. 오늘날 그 의미가 부정적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일터에서 만나 서로를 든든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집단을 중요시하는 동양이 아니라 개인을 중요시 하는 서양이라 할지라도.
막스 램버그의 이 시ㅡ 는 얼핏 보면 허망해 보입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으리라가 제목이니까요.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으리라는 삶의 의욕을 꺾는 말입니다. 물론 극히 예외인 누군가들은 이 말에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보통 사람인 우리는,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단어 앞에 서면 수그러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영원앞에서 우리는 하나의 점도 되지 못하니까요.
실제로 그러합니다. 우리는 인류에게 아주 커다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최초로 부싯돌을 만들어 불을 켠 사람도 옷감을 짠 여자도 씨를 심은 여자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요. 이토록 중요한 일을 한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보통 사람인 우리야 오죽할까요. 영원과 무의미에 허물어지려던 우리는 '그러나'라는 반격 앞에서 문득 정신이 듭니다. 그러나,로 시작하는 이 반격은 무엇을 말할까요.
시인은 말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나는 결코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고. 왜냐하면 내가 한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 세상의 한 부분이 되니까요. 세상의 한 부분이 되면 그건 파괴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 부분이 되면 파괴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지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니까요. 그것이 바록 한 마디 말이더라도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면 그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이에게 그 영향을 끼치게 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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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어떤 발견,
어떤 말, 심지어는
스쳐 지나가는 말이라도..
또한 관대한 행위 한 가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 영원한 것이 되리라.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류시화 엮음. 49-49쪽
사람들은 그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죽하면 여섯 사람만 거치면 모르는 이가 없다고들 할까요. 나는 나의 가족에게 영향을 주고, 나의 가족은 내게 영향을 줍니다. 나 그리고 나의 가족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줍니다. 친구에게 혹은 상사나 부하에게 동료에게, 그리고 제자에게 영향을 줍니다. 말은 돌고 돌지요. 어디 말 뿐일까요. 내가 해온 일이나 책, 어떤 발견, 그 모든 것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매발톱 씨방(2024.05.24 06:40)
보통 사람의 의미는 여기서 생겨납니다. 나와 가까운 이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말 한마디에서. 그러므로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혹은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이라는 면에서요.
인간은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함께 가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존재지요. 인간이 살아남은 이유가 바로 기대어 살기 때문입니다. 영향을 주며 살기 때문이지요. 말이건 책이건 행위건. 특히 관대한 행위는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때로는 살아갈 힘마저 줍니다. 아무리 작은 행위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흔하고 흔한 말이 우리를 영원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정말로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