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세요!” 모두가 와그르르 웃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모두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열중하고 있었지요. 시각 명상 시간이었습니다. 나주 국립박물관이 만든 영상을 활용하고 있었지요. 그 영상은 옹기고분실에 있는 것이었고 매력을 만끽했던 터라 분명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했던 겁니다. 저 역시 숨도 안 쉬고 보았으니까요. 몇 번이고 보았으니까요.
처음에는 영상을 그냥 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보았는지를 물었지요. 산발적인 답변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는 무엇을 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먼저 그걸 따져본 다음이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그 색채들과 사물들이 등장하는 순서가 모두 정리되어 있었지요. 탄생을 말하는 비, 구름, 달, 해, 사계절, 강과 산, 그리고 비로소 등장하는 고분들.
그러는 동안 연분홍 벚나무, 노랗게 물들어가는 억새, 황혼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감이 풀리듯이. 달은 오른쪽에서 등장했고 태양은 왼쪽에서 떠올랐으며 태양 빛이 오른쪽으로 번져갔지요. 그리고 바람, 비, 후반부에 가서 작은 동산과 같은 고분이 나타났고 이윽고 겨울이 되어 눈이 내렸으며 거기서 끝이 났습니다.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 그리고 영상은 겨울에서 끝이 납니다. 고분 위에 눈이 쌓이면서. 죽은 이들의 정적.
세 번을 보았습니다. 창문은 블라인드로 가렸습니다. 빛나는 것은 앞에 놓인 만다라 촛불뿐. 환풍기와 에어컨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그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직 시각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 다른 모든 것을 차단한 것이지요.
0829 만다라
이 영상이 좋은 것은 무채색으로 시작하고 그리고 서서히 번져가면서 색상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색상은 조금 더 화려해지지만 형태가 단순하기에 현란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그려낸 이미지는 늘 마음이 편하지요. 아무리 복잡해도 우리는 이미 자연이란 것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기에 믿는 겁니다. 끝날 때도 단순하게 끝납니다. 시작과 끝 사이, 중간이 복잡하더라도 마음이 고요한 건 자연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처음에 이 영상이 말하는 바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평소의 습관 때문입니다. 이미지가 등장할 때마다 그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면 기억하기 쉽지요. 그러나 그저 보면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이 영상에는 사람도 동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미지만으로 알아차려야 하니까요. 그러나 무엇인지 자신에게 그 이름을 되뇌면서 보면 한결 기억하기 유리합니다. 이것과 저것의 연관은 무엇이지. 이런저런 것들 왜 흘러가고 왜 변하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것들이니 알아차리기 쉽습니다. 흐름을 알아차려 이야기를 만들면 그것이 하나의 스토리가 됩니다. 이 영상은 고분이 생겨나기 이전과 생겨난 이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니 그것을 찾아내면 되는 겁니다.
자극적인 장면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달이 뜨고 해가 뜨며 강물이 흐릅니다. 그러나 감동은 배가합니다.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리고 있으니까요. 감동, 때로는 장엄하기까지 한 이 장면들로 인한 감동은 우리가 개인을 뛰어넘는 경험이 되어줍니다. 소리 하나만으로 우리는 감동할 수 있지요. 영상 하나만으로 우리는 자신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 신과 만나는 존재, 신을 내 안에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감동을 이해하면 스토리가 되면 그 사건은 쉬이 잊히지 않습니다.
오늘 처음 보는 영상이 아니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동일한 영상을 활용했지요. 그때는 청각명상이었습니다. 소리가 시작되고 그리고 높낮이, 그리고 리듬. 마지막에 소리가 사라지는 과정을 알아차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도 다들 숨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들에게는 기대하는 바가 있었지요. 그것은 믿음입니다. 이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전달해주려 한다는. 저 영상에는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기꺼이 감동하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우리 영혼의 현은 울리고 그 울림에 스스로 놀라며 감격합니다.
이 경험은 모두에게 새로운 세계일 것입니다. 새로운 체험이고 경험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은 자신의 과거 위에 있다는 놀라운 자각. 그렇기에 지금 여기서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살아오는 동안 좋은 일이 나쁜 일보다 더 많았다는 자각. 나쁜 일은 나로 하여금 배우도록 만든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이 모두로 하여금 이 영상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보도록 하는가 하는 의아심을 품게 했고 기대를 갖고 보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온전히 새로운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고백하건대 저 역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동료, 도반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인 겁니다. 시각과 청각을 통해서 그리고 시와 소설을 통해서 마음이라는 거대한 숲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신비로 가득한 숲을.
여행/잘랄루딘 루미
여행은 힘과 사랑을
그대에게 돌려준다. 어디든 갈 곳이 없다면
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가 보라.
그 길은 빛이 쏟아지는 통로처럼
걸음마다 변화하는 세계,
그곳을 여행할 때 그대는 변화하리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열림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