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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선 Sep 03. 2024

시명상/산산조각/정호승


산산조각/정호승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2004)




시의 첫 구절에 나오는 '룸비니'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동산의 이름입니다. 네팔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지요. 이곳은 불교의 4대 성지에 속합니다. 화자는 이곳에 가서 흙으로 만든 부처상을 사 옵니다. 왜 하필 흙이었을까요? 다른 재료로 만든 부처상도 많을 텐데요.  흔히 보는 부처상은 나무나 혹은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지요. 


흙으로 만든 부처상은 다른 부처상에 비해 보잘것없을 겁니다. 만드는 이도 이 조각상이 쉽게 부서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부처상에 색칠이 되어 있었는지의 여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흙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부처님이 태어난 곳이니 그 의미를 흙에 두지 않았을까요.


룸비니 정문 앞에 한 노파가 가마니를 깔아놓고 흙으로 만든 못생긴 부처상을 팔고 있었다고 하지요. ‘석가모니 고행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부처상을 자신의 책상 위에 놓았다고 합니다. 그 부처상은 세상에 단 하나뿐입니다. 룸비니까지 가서 사 왔으니까요.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계속 그 부처상을 팔고 있을지라도 시인의 손에 들어왔으니까요. 세상의 모든 것이 나와 관계를 맺으면 소중해집니다. 매일 바라보고 의미를 더하면 값어치를 느끼게 되지요. 불심이 깊다면 더욱 소중해질 테지요. 


그런데 어쩌다, 부처상이 손끝에 걸려 혹은 소맷자락에 걸려 혹은 몸을 움직이다가 특 치는 바람에 마룻바닥에 떨어집니다. 흙 부처상은 산산조각 납니다. 두어 조각으로 부서진 것이 아니라 팔은 팔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몸은 몸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그야말로 산산조각 납니다. 놀란 화자는 얼른 서랍 속에 넣어둔 순간접착제를 꺼냅니다. 원상 복구하고 싶었을 겁니다.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리고 싶었겠지요.  자책하면서 이어 붙이려고 노력합니다. '조금만 더 조심할 것을. 왜 하필 그쪽으로 손이 갔을까. 왜 하필!' 


누구나 그러합니다. 시간과 돈, 그리고 땀, 소유하기까지의 생각, 망설임. 그리고 소유한 이후에 매일 바라보면서 들은 정. 그런 것을 한 순간에 잃는다면 어떻게 건 되돌리고 싶어 합니다.  단지 부처상뿐일까요. 우리가 가진 많은 것들 또한 그러합니다. 이미 그 효용을 다한 것이라고 해도 나와 더불어 했던 것들이기에 그 추억이 소중해서라도 그것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은 것이 착각이라는 겁니다. 그 단계에서의 평온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착각입니다. 사실 이 단계에서의 온전함이란 다음 단계에서의 출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학년을 다 채우면 올라가야 하지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대학교로 오르듯이 인생에서도 어린 시절에서 사춘기로 또 청년기로 그리고 성인기로 나아가는 것이 삶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안온한 이 상태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상급학교로 오르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계단을 하나 오르면 그다음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깨어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건 인지상정이지요. 화자가 깨어진 조각들을 어떻게든 붙여보려는 순간, 부처님이 말씀하십니다.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내가 지닌 관념을 송두리째 깨는 충격입니다. 그렇지요. 산산조각이 난 그대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산산조각의 눈이 실상일지도 모르지요.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세상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수많은 조각들이 세상을 이루고 있다고. 사실은 우리 모두가 조각이라고. 


너무도 유명한 구절을 가져옵니다. "아프락사스는 알에서 태어난다" (헤세 『데미안』 중에서). 껍질이 깨어지지 않으면 아프락사스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알 속의 세계는 완전하고 평화롭지만 그 안에서 자랄 만큼 자랐다면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지요. 부처님과 더불어 했던 순간들이 평온하고 향기로웠다면 그런 만큼 성숙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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