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이란 무엇일까요. 명언은 유명한 말이지만 유명한 말은 많고도 많습니다. 그보다는 명언은 사리에 들어맞는 말입니다. 이름 명이기에 이름값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명언은 진실을 깨닫게 하지요. 어떤 때는 알고는 있으되 미처 보지 못한 이면을 보게 만듭니다. 그런 때는 빛이 비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지요. 어떤 명언은 반대편을 보게 하고 배경을 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인식의 전환이 오는 것이지요.
반대편을 내 앎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배경 또한 보게 된다면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깨달음은 일파만파로 번져가 나의 삶을 바꾸기도 합니다. 과거를 들여다보는 시각을 바꾸기도 하고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앞으로의 삶이 바뀌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요.
시 또한 그렇습니다. 많은 시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지만 또 다른 많은 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면모를 보여줍니다.
루미 1207~1273
루미는 13세기에 살았던 인물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이라고 여겨지는 페르시아 문화권의 호라산 발흐에서 태어났습니다. 셰익스피어에 비견할만한 시인으로 이슬람 세계에서 코란만큼 영향력이 큰 시를 남긴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법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만드는 사고로, 삶으로, 그 표현으로 서양인들 역시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그가 남긴 말 중의 하나에 상처에 관한 구절이 있습니다.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다.
처음 이 구절을 만났을 때 그야말로 빛이 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루미는 상처에 관한 비밀을 이야기하니까요. 아니 상처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상처를 정 반대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갖는 상처에 관한 인식은 아픔입니다. 몸에 상처를 입었을 때 혹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그것은 부상으로 인식되지요. 그 이전까지 온전하던 곳에 어떤 틈이 생기는 겁니다. 갈라지거나 찢어지는 것이지요. 틈은 끊어진 곳이기도 하고 간격이기도 하며, 한편으로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피가 흘러나오니까요.
틈이 생기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지요. 그러나 그 갈라진 곳이 없으면 세상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또한 그러합니다. 부부는 서로 상처를 입고 입히면서 더욱 돈독해지거나 아예 갈라서거나 하지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또한 그러합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부모는 아이에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친구, 지인, 그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때로 상처를 받습니다. 틈이 있어서 빛이 들어오듯,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상대를 알게 되고 상대 또한 나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나의 온전한 껍질에 난 상처는 그 안을 보여줍니다. 그 안으로 빛이 들어가게 하지요. 너라는 빛이, 삶이라는 빛이 틈을 통과해 들어오는 것이지요. 나의 의식에 빛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은 그 틈 덕분입니다. 어린아이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는지요. 상처를 딛고 일어선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주변에서 혹은 멀리서,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위인에 이르기까지 흉터를 새로운 디딤돌 삼아 성장하고 성숙한 인물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굳이 그 일을 나에게 적응하려 들지 않을 뿐입니다.
상처에 관한 루미의 이 표현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점을 깨닫게 합니다. 인식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안이 아닌 밖에서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시야를 한결 넓혀줍니다. 진정한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명언이지요. 명언은 세월이 가도 빛이 바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지요. 삶의 겉모습은 변하지만 인간이 삶에 대해 생각하는 바는 변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