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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명상/나를 위로하는 말/이해인

by 이강선


새해가 밝은 지 열흘 남짓 되어갑니다. 아마도 새해를 맞으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셨을 겁니다. 일과 공부, 그리고 건강에 관해서. 저 또한 세웠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그 계획들을 잘 실천하고 계실 겁니다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을 겁니다. 계획을 물샐틈없이 세웠다면 더 실천이 힘들지요. 이런 경우에 하는 말은 작심삼일이지요. 작심삼일이라는 표현은 결국 나에 대한 비난과 다름없습니다. 그처럼 단호하게 결심해놓고 사흘도 못 간단 말이야 하고 자책하는 것이지요.


사실 내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지요. 때로는 자신에 대한 실망이 혐오에 이르기도 합니다. 결심이 굳었을 때 혹은 그 결심이 여러 번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이 자기혐오는 다른 사람에게 듣는 가혹한 말과는 달리 더욱 힘든데 타인의 말은 그 장소, 그 시간만 지나가면 잊힐 수 있지만 자신을 향한 엄격함은 24시간 내내 지속되고 언제 어디서나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복의 기준은 나이고 성공의 기준도 나이며 실패의 기준도 나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행복은 나에게 달려 있지요. 결국 나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은 나입니다. 나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요.


이해인 수녀님의 「내가 나를 위로하는 날」은 나에 대한 위로를 담고 있습니다. 큰일이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울 때, 사실 그 허물과 약점들은 남은 알지 못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문을 닫고 숨어버리고 싶어지지요. 그런 때 우리는 나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남은 알지 못하니까요. 그런 때 우리는 내 안에 숨은 위안의 날개를 펼쳐야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산다는 게 별거 있나요. 우리의 삶이 영원에 비하면 눈 하나 깜빡할 정도의 시간도 안 되는 것처럼 우리의 행동도 삶 전체에 비하면 먼지만큼도 안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몇 번을 실망해도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존 카밧진은 말하지요. 살아 있는 한 잘못된 것보다 잘 된 것이 훨씬 더 많다고(『온정신의 회복』). 그 말은 잘한 행동이 훨씬 더 많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겁니다. 그러니 내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행동 하나를 찾아 하면서 스스로 달래주세요. 혹은 나를 위로하는 날을 정해서 해도 좋을 겁니다. 아니 오늘 당장 거울을 보면서 나를 껴안아주세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얼굴에 미소가 깃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은 누구나 함께 하고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온화합니다.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서 시작하니까요.






나를 위로하는 날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외딴 마을의 빈 집이 되고 싶다』 열림원 2002



수녀님의 시는 쉽고 편안합니다. 어디 한군데 걸리는 것 없이 읽을 수 있지요. 사실 쉬운 시가 어려운 시입니다. 쉽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방어벽을 세우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이 시를 읽어가노라면 맨발로 부드러운 백사장을 걷는 느낌이 듭니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와 맨발을 간질이고 물러가는 것처럼 부드럽습니다. 간지러운 느낌도 들지요. 한참을 걷고 나면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마치 그 파도가 나의 슬픔을 모두 가지고 물러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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