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명상/자두/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by 이강선

때로 짧은 시 한구절이 그날 하루를 달래주는 힘이 됩니다. 위안을 주는 동시에 긴장을 풀어주지요. 피로에 지쳤던 마음이 혹은 긴장했던 마음이 원기를 되찾는 것이지요.



자두/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trans. 이강선


내가 먹어 버렸다오

냉장고 안에 있던

그 자두를

아마도

당신이 아침에 먹으려고

남겨둔 거겠지

미안하오

정말 맛있었소

아주 달고

차가웠거든


재미있는 시입니다. 늦은 저녁 냉장고를 열어보니 자두가 눈에 띕니다. 화자는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넘어가 그 자줏빛 과일을 한 입 깨뭅니다. 시원하고 단 과즙이 입안에 가득 차고 정신을 차려보니 다 먹어버린 뒤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 자두는 아마도 당신이 아침에 먹으려고 남겨둔 것 같습니다. 멋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한마디 씁니다. 자두를 먹어버렸노라고 미안하다고.


이 시는 자두를 먹어버리고 미안함을 느낀 남편이 탁자 위나 냉장고에 붙여둔 쪽지 같습니다. 읽어가면서 이미지가 선연하게 그려지고 절로 미소가 떠오르지요. 이런 것도 시일까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ams)의 이 시는 일상의 사소한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줍니다. 먹어버리고 그저 넘어갈 수 있었는데 굳이 미안하다고 쓰는 거지요.


이 쪽지를 읽은 아내/ 혹은 자두를 남겨둔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피식하고 웃지 않았을까요. 아주 달고 시원했다는 표현을 읽고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겠지요. 사람의 마음은 대단히 미묘합니다. 관계 또한 대단히 복잡하지요. 사실 관계는 이러한 사소한 일로 이루어집니다. 누군가 아침에 먹으려고 남겨둔 자두를 먹어버림으로써 가벼운 죄의식을 느끼는 일, 그래서 미안하다고 쓰는 일, 이렇게 관계가 이어져 가는 것이지요.


아마 자두가 아닌 다른 음식이었다 해도 동일할 겁니다. 그러나 자두라는 특정한 과일을 통해 그 맛이 전달되어 오는 것이지요. 먹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니까요. 일상의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그저 넘어갈 것이 아닙니다. 일상은 인간의 모든 것, 그 안에서 생기는 일은 모두 관계와 감정과 생각을 추구할 수 있는 주제가 되는 것이지요.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이 시의 원제는 '그냥 하는 말이오' 입니다. This is just to say입니다. 어렵지 않은, 그러나 인식의 영역을 넓혀주는 시이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쓰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