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아침을 먹었습니다. 노오란 단호박과 시금치나물이었지요. 시금치나물을 씹고 있노라니 아삭아삭 소리가 납니다. 소리뿐일까요. 잎사귀 섬유가 씹히면서 촉감이 이빨에서 느껴집니다. 우리의 감각은 대단히 예민해서 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촉감도 더불어 느낍니다. 단단한지 부드러운지 혹은 미끌미끌한지.
그 모든 것은 내가 경험을 했기 때문이지요. 오감은 기억을 잘할 수 있도록 돕지만 또한 오감은 그 기억을 다시 경험하도록 해줍니다. 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고 어휘로 뇌 속에 기록해두는 것이지요. 그 소리를 어휘로 분류하는 것이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시금치를 씹는 소리가 아삭아삭하고 난다고 기록해두지만 실제의 소리는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휘로 분류함으로써 아삭아삭에는 시금치 씹는 소리가 소속되게 되고 훗날 시금치와 더불어 기억날 수 있게 됩니다. 시금치의 생김새, 색깔, 맛, 소리, 촉감이 더불어 저장되니까요.
시를 읽을 때 어휘는 그 어휘와 더불어 기억한 것들을 불러오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불러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시는 읽는 것이 아닌 경험하는 것이 됩니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 자두와 노파는 노파가 자두를 먹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단지 묘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시를 읽는 이는 그 광경을 머릿속에 그릴 뿐 아니라 소리와 맛을 함께 느낍니다. 더불어 잘 익은 자두의 달콤함을 기억해 내고 위로를 받습니다.
가난한 노파에게/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거리에서
손에 종이봉투를 들고
아작아작 자두를 씹는 노파
맛있어
맛있어
맛있어
손에 쥔 자두 반쪽을
빨아먹는 모습으로
그걸 알 수 있어
잘 익은 자두가
주는 위로가
대기를 가득 채우는 듯 해
그녀에게 자두는 맛있어
화자가 가난한 노파라고 쓴 것은 그녀의 행색이 초라해 보여서였을 겁니다. 가난한 노파가 자두 한 봉지를 샀습니다. 왜 길거리에서 자두를 먹고 있을까요? 배가 많이 고파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익은 자두의 달콤한 향에 먹고 싶은 유혹을 참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파는 가다 말고 자두를 꺼냅니다. 한입 깨물어 보니 즙이 화악 터지고 입안에 향이 가득해집니다. 아작아작 소리가 납니다. 소리가 나니 더 맛있어지는 것이지요.
화자는 무려 세 번이나 되풀이합니다. 맛있어 맛있어 맛있어. 이 짧은 시에서 세 번이나 되풀이한다는 것은 그만큼 맛있게 먹고 있어서입니다.
노파는 그 달콤함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잊습니다. 거리라는 것도, 가야 한다는 것도 잊고 손안에 쥔 자두의 즙을 빨아먹습니다. 이미 절반을 먹어버렸지요.
집중하는 그 순간은 작은 위안입니다. 순간에의 충일함이지요. 자두 맛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먹는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 그 맛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달콤하고 충만합니다. 삶 또한 동일하지 않을까요?
시명상 적용
이 시를 읽고 다음을 떠올려 보세요.
최근에 당신을 순수하게 행복하게 만든 작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단순한 것에서 충만함을 느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나요?
지금 이 순간, 내가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작은 기쁨은 무엇일까?